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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이미선 옮김/ 열림원
책을 소개하는 어떤 글을 보고 아프가니스탄인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이 전개되는 내용이라 호기심에서 책을 들었다. 결론적으로 흡인력 만땅. 이 나이에 눈시울 붉혀가며 새벽까지 읽고 말미가 궁금해 사람 만나러 갔던 도서관에서 찾아 읽기도 했다.
소련 지배하에서 평화를 꿈꾸던 사람들이 탈레반의 등장에 환호하나 소련치하는 세발의 피. 만신창이가 되는 아프간 국민들의 삶을 보면 한 나라의 위정자, 정치인들의 자격과 역할이 중차대함을 본다. 아프간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혼란으로 빠지진 않았을 테다. 무능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위정자가 국가경영은 망각하고 국민들의 평화스런 삶을 위한 비전이나 정책도 안중에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도 지금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부터 후퇴하고 있는듯한 현상이라 보는데 깨어있는 국민들의 의식으로 견제하지 않으면 아프간 꼴 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에게 반했다.
동행하는 남편과 애기가 있음에도 겁탈하려는 소련군에게 저항하는 ‘바바’같은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조국에서의 부귀영화는 물거품이 된 미국에서도 아들을 위한 일편단심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완전무결한 인간은 없듯 그의 명예에 반하는 ‘하산’이 있다지만 ‘바바’의 일생은 세상 모든 아버지의 귀감이다. 장성한 아들 둘을 둔 내가 부끄러워진다.
둘도 없는 ‘바바’ 친구 ‘라힘 칸’의 편지를 통해 작자는 메시지를 전하며, 바로 이 소설의 주제가 된다. “양심이나 선이 없는 사람은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선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속죄일 것이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연날리기. 덤으로 옛 시절이 떠오른다.
부산역이 마주 보이는 달동네. 지금은 흔적도 없고 빌라촌으로 변했다.
사이다 병을 깨어 풀과 함께 개어 몇 명이 길게 늘어서 실에 풀을 먹인다. 대개 까불이 연, 방패 연이 떠서 싸움이 벌어지고 떨어지는 연을 쫓아 애들이 달리고….아이들의 놀이엔 국경이 없다.
‘아미르’의 계략으로 하산 부자가 집을 나서던 때, 가지 말라며 애원하고 생일선물로 언청이 수술까지 행하는 ‘바바’. 어쩐지 과할 정도였는데 역시 ‘하산’의 아버지였다.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소설이다. 그 클라이막스는 ‘소랍’을 구조하기 위해 카불을 찾아가 조우하는 ‘아세프’의 등장이다.
소설의 명성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전혀 아니지만, ‘아세프’를 따돌리고 ‘소랍’과 함께 탈출하는 장면에서 ‘소랍’이 쏜 새총 덕분으로 ‘아세프’를 물리치는 내용은 약간 부자연스럽다.
‘소라야’에게 청혼하던 때, 비밀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직접 말하겠다는 ‘소라야’의 현명함이 빛난다. 그리고 ‘아미르’의 동의를 구하고는 우는 ‘소라야’에게 누가 돌을 던질 것인 가. 신뢰를 구축하고 시작하는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라도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아침을 열쇠로 바꿔서 우물에 던져요.
천천히 가요. 내 사랑하는 달님, 천천히 가요.
아침 해에게 동쪽에서 뜨는 걸 잊게 해줘요.
천천히 가요, 내 사랑하는 달님, 천천히 가요.
흔히 결혼식에서 부른다는 아프간의 노래라는데 민요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첫날밤을 맞이하는 그들에겐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영원히 정지하는 시간을 꿈꾸었겠다.
여러 장면에서 눈물을 훔쳤다. 비교적 성실하게 지내지 못한 근래 생활에서 반성도 하며 번지는 감정에 이 소설을 맴도는 동안이라도 내 마음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카타르시스의 해소!
소련치하에서, 무자비한 탈레반의 폭정에서, 현재도 절대 불안한 치안상태에서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어제 후속작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구입했다. 조만간 읽을 것이다.
‘성장소설’이라고 평하는데 불만이다. 일부 어른들은 성장소설은 청소년의 읽을 거리로 단정하여 손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차라리 청소년보다 어른부터 읽어야 할 소설이다. 절망에 가까운 환경 속에서도 정칙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어른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기 때문에라도.
또 하나.
내가 읽은 책은 열림원에서 출판, 2009년 8월 개정판 105쇄 발행본인데 현재는 옮긴이와 출판사가 다른 책이 판매되고 있다. 저작권 관계에 문제 있었던 건 아닐테고…잘 나가던 번역본이 옷을 갈아입은 뭔 이유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