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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ㅣ 금강인문총서 2
석길암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동아시아는 중국을 위시하여 한국,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를
포함한 지역으로 대승불교, 북방불교로 불린다.
그 중심은 중국이며 불교의 시작은 실크로드를 이용한 역경(譯經)에서 시작하였다.
약 천년 동안 중국에서 번역된 불경은 6,000~7,000권이며 대표 번역자는 약 200명이다.
실크로드는 ‘붓다로드’, ‘다르마로드’라는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하며 대표적인 역경僧으로는 ‘안세고’에서
시작하여 중국불교의 시작이라는 ‘구마라집’, ‘보리류지’, ‘진제’, 그리고 유명한 ‘현장’을 들게 된다.
‘현장’ 이전의 번역을 구역,
현장의 번역을 신역이라 지칭한다.
현장은 인도어를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오종불번(五種不飜)을 주장하여 이의 관철이 오늘 날까지 이르게 되는데, 번역을
하면 오히려 뜻을 손상할 가능성이 큰 경우 원전어의 음사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며, 다라니
곧 진언의 경우나 아뇩다라샴막심보리, 지혜라고 하지 않고 반야로 쓰는 경우이다.
역경을 통한 경전은 특히 대승불교가 경전을 수지하고 유포하는
공덕을 강조하는 만큼 사경을 중시하게 되고, 이 사경은 인쇄문화를 촉발한다. 사찰은 충분히 인쇄소 역할을 하였으며, 소승불교가 동아시아 불교의
주류가 되었더라면 동아시아에서는 인쇄문화가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한다.
여러 경로를 거치고 여러 역경승을 통한 불전은 ‘종리중경목록’이라는 최초의 목록으로 불전의 표준화가 시작되고, ‘개원석교록’을 통해 경론(불전)들의 정형화 곧 표준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표준화에는 각 경론의 한 페이지에 들어갈 경문의 행과
글자 수까지 모두 조사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두 권의 목록이 없었다면 약 900년 후 이루어진 고려의 팔만대장경도 존재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역시
동아시아의 불교는 중국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위경(僞經)은 가짜 경전으로
부모은중경, 우란분경, 천지팔양신주경, 인왕경 등이 있는데, 정법을 흐렸다는 점은 당연하지만 중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접근으로 이해되면서 이런 위경이 큰 거부감 없이 유통되었다는 자체가 곧 동아시아적인 반증이라고 본다.
또한 ‘육조단경(조사어록)’이 ‘경’과 동일시되어
출현하면서 위경은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동아시아 불교전통인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신앙에서의
극락정토는 수행하는데 최상의 조건을 제공해주는 곳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한다는 자체가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비록
타력 구원이라고 하더라도 절대자의 구원에 의지하는 것과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본다.
남전불교에서 북전불교를 비판할 때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신앙을
반박한다.
북전불교는 간다라 지방(오늘
날 파키스탄의 페사와르)으로 당시 그 지역의 정치적 지형이 이후 동아시아 불교의 성격을 상당 부분 결정하였다. 실크로드의 통상규모가 커지는 만큼 그 이권을 향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전쟁의 와중에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면서
민중들은 고난과 굶주림을 겪었다.
석가모니 붓다는 현재하지 않고 미래불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에서 구원의 신앙이 지역의 불교에게 필요했고, 결국 조로아스터교의 신에 대한 관념들이 아미타불의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고 본다.
아미타불 신앙은 암울한 사회현실에 절망한 민중이 자력으로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느꼈을 때 의지했던 타력구원의 신앙이라는 성격이 강렬하였다.
동아시아 불교가 인도불교와 구분되는 점은 승려의 노동문제에도
있다.
대승불교는 수행의 목표를 아라한에 두지 않고 부처에 두었고, 부처가 될 가능성을 출가자에 한정하지 않고 재가자에도 활짝 열어놓았다. 하루
일하지 않는 자는 하루 먹지도 말라는 백장스님의 말씀이 있듯 중생구제의 일념으로부터 동아시아 승려들의 노동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소극적인 입장의 구족계가 아니고 무엇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청규가 동아시아 볼교도의 지침이 된 것이다.
보살상은 방편을 상징화하고 나한상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청나라 말엽 봉안된 운남성 곤명의 공죽사 오백나한에 예수의
모습을 한 상이 봉안된 것이 그렇다.
중국인들이 불보살상의 의복 양식이나 얼굴 모양 등에서 중국적인
모습을 가미했다면 우리나라의 불상 조성은 격식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함이 있다고 저자의 견지이다.
동아시아의 독특한 보살상으로 중국의 포대 화상이 있으며
지장보살상에서는 중국인과 한국인은 현세의 구원자로서 참회의 대상으로 지장보살을 그리는데, 일본에서는
지장보살을 참회의 대상으로 더 깊이 보아 사산 낙태로 인한 아기를 보호하는 지장보살로서 턱받침을 한 지장보살상도 있다고 한다.
과거 동아시아 불교에서 사찰은 불교도의 신앙공간이자 교육의
중심, 번역센터이면서 도서관이었으며, 외국과 문화예술을 교류하면서
재생산하여 공연하는 공연장이기도 했다. 불교사원은 한마디로 첨단 지식문화정보센터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 중국의 사찰의 위상은 기껏 전통문화의 보고 정도로, 불교인구의
성장세가 주춤한 것이 당연한 것이다. 신행공간의 역할보다 전통문화의 보존공간이자 전시관으로서의 기능이
더 강하기도 하다.
여기서 범위를 좁혀 개인적인 견해, 근래 우리나라 사찰은 산중을 떠나 포교원의 이름을 빌어 도심 속으로 자리잡아
<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각종 경전강의를 진행하며 민중 속으로 다르마를 전파하는데, 범 불교종단으로 정도의 일관성과 통일성 있는 교재를 개발하고 구체적인 강의기법 등도 연구하여 전파한다면 현대인에게
제대로 친근하게 다가가는 불교인을 양성하는 것이고, 고상하게는 불국토 건설에 기여하는 것 아닐까?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한자와 더불어 우리와
일본에 전파되어 동아사아 문화권을 형성하여 왔다. 초기 인도불교나 남방불교와는 상이한 대승불교로서 사경, 인쇄문화, 위경, 아미타불
신앙, 승려의 노동, 불보살상 등을 살펴보았다.
오늘 날 대승불교에서 폄하했던 남방불교, 곧 소승불교의 위빠사나 수행법 하나만 보아도 내게 본디 존재한 불성을 일깨우는 무난한 수행법으로 인식한다. 체계적인 불교이론은 우리나 중국보다 일본이 앞선 것이 현실이고, 또한
서양이 우리나 중국보다 앞서기도 하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