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 펭귄클래식 9
생 텍쥐페리 지음, 윌리엄 리스 해설,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인간의 대지.

 

정원사의 관점이 화두이다.

각각 인간에 내재된, 가능성을 안고 태어난 모짜르트가 죽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생텍쥐베리는 지적한다.  우리가 발 딛고 선 대지와의 도전과 응전이라는 삶 속에 고유의 자신을 발견하고 소명의식으로 주어진 소임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이름하여 인간의 대지라는 것이다.

 

정원사의 관점에 대해 검색해보았으나 모두 인용으로 그치고 만다.

정원사가 귀한 품종의 장미를 정원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따로 옮겨 심어 정성을 들여 가꾸면 더욱 화려하고 싱싱한 꽃이 되는데, 이름없는 들풀도 나름 가꾸면 아름다움이 있거늘 개개 인간도 태어나서부터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라는 자양분을 통해 고결한 인간을 구현할 수 있다는 관점 아닐까. 싸구려 연민이나 미추도 아니고 생과 사도 초월하는 고결한 인간의 대지를 희망하면서, 어쩌면 불교적 으로서 표현하자면 감추어진 佛性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면 염치없는 비약일까?

 

 

 

여느 소설읽기에는 개략적으로 단계가 있다.

서두부분에서는 대체로 장황한 편이다. 처음 조우하는 등장인물과 그의 캐릭터도 엿보아야 하고 주변묘사도 낯선 까닭에 보충설명과 함께 어느 작자라도 초반엔 지루한 여정을 보여주게 마련이다. 필히 독자는 도중하차하지 않는 한 돈독한 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은 별도 서문이 있어 첫 장을 넘기면서는 야 초장부터 거창하게 나가는 폼이 계속 지루하지 않을까?”는 우려도 햇다. 완독 후 다시 서문을 보았을 땐 그야말로 총정리를 잘했구나하는 생각역시 인내하며 시간 투자한 보람이 충분했던 독서였다.

 

 

 

앙투안, 그리고 생텍스로 불렸던 그는 누구라도 어른이 읽는 동화 어린 왕자로 알려져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공군조종사로, 그러다 독일공군기에 의해 격추되어 영원히 실종된 그의 소설중 완숙한 경지에서의 이 소설을 읽어서 좋았다. 그의 유년기에 남성적 역할 모델이 부재했다는 것과 더없이 행복했던 어린 시절과 단절되어 깊은 상처를 받았던 존재라는 점, 조종사 역할을 통해 진한 동료애를 향유했으나 결핍을 느끼면 자기 자신과 세계와 불화하고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천국을 향해 숙명적으로 뒷걸음질 쳤다는 특별함이 있었다.

이것이 1943년 망명지 미국에서 직접 수채 물감으로 삽화를 그려 넣어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프랑스 서적으로 기록되는 어린 왕자를 탄생하게 한 단서가 될 것이다.

 

 

 

메르모즈톨루즈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까지 우편기 비행로를, 사막 산 밤 바다를 개척했던 동료가 남대서양 상공을 날다 실종, 마지막 전근 명령에 따라 그렇게 동료들이 하나 둘 우리들에게서 자신들의 그림자를 빼내어 간다고 묘사한다. 이런 동료들은 오직 물질적인 부를 위해 일함으로써 스스로 감옥을 짓는 것이 결코 아닌, 진정한 의미의란 하나뿐인 인간관계라는 도덕률을 메르모즈 같은 동료들이 일깨워준다고 한다. 인간의 대지인 것이다.

 

기요메안데스산맥을 횡단하다 50시간 동안 실종된다.

설산에서 기진맥진하는 중에도 걷지 않으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라는 생각으로 가족과 동료를 향해 걸으려는 의지, 귀환 후에는 맹세컨데 내가 한 일은 어떤 짐승도 할 수 없었을 일이라네

이는 인간을 인간의 자리에 있게 하고 그를 영예롭게 하는 말이며 고결한 말이다.

 

무어족 노예 바르크항상 내 이름은 모하메드였습니다라고 말하는 납치되어 노예가 된 영감은 자유의 몸으로 고향에 가기를 간청한다. 무어인에게 영감을 사서 비행기에 태워 떠나 보낸다.

감사인사나 동정심이 아니고 한 인간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돌려 주고자 하는 뜻이다.

 

인도차이나로 향하는 비행 도중 이집트 접경지대에 동료 프레보와 함께 추락.

끝장난 거면 별수 없지, ” “내가 우는 게 나 때문인 줄 아나…”

물과 식량도 없이 280킬로를 걷는 동안 신기루와 망상과 싸운다.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자각할 때, 아무리 하찮은 역할일지라도 그 역할을 깨달을 때, 그 때에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때에만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죽음에도 의미를 주니까.”

 

우리에게 터전을 마련해준 대지, 이 터전은 우리들에게 장애물이 되어 이들과 겨룰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 겨루던 각각의 자신은 소명이자 역할이 되고 깨어있는 의식이 된다.

깨어있는 의식으로 본능을 다루고 인간의 존엄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며 갓 태어난 예비 모짜르트가 옆길로 새지 않고 진짜 모짜르트가 되도록 주변을 추스리는 아량도 베풀어야 진정한 인간의 대지에 두 발 내딛고 걸어갈 이웃이 될 것이다. 추상에 치우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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