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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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작가 알베르 카뮈는 오늘날 한국에서라면 도저히 탄생하지 못했을 거 같다.

두 살 때 아버지는 알제리 원주민과 함께 징집되어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 문맹인 어머니는 아들 둘과 가난하게 산다. 다행히 카뮈를 밀어주는 교사 루이 제르맹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장 그르니에를 만나 본격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하게 되는데 마치 개천에서 용이 태어난 격이다. 이모부 집에서 앙드레 지드의 책 지상의 양식을 통해 처음 조우하게도 된다.

한때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했으나 나중엔 탈당하고, 나름대로 정의를 위해 적지 않은 글을 쓰며, 2차 대전 말기에는 프랑스에서 지하신문을 발간하여 나치에 대항하기도 한다.

이방인이나 페스트등 그의 작품은 소위 작가노트를 통하여 치밀하게 구상하고 준비, 자신의 경험을 이입시키기도 하며, 특히 페스트를 위해 허만 멜빌모비딕을 참조한다.

작가는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중등, 고교과정을 통해 좋은 교사를 만났고, 그 교사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좋은 교우관계도 병행하며 마침내 지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노력 파로 보인다.

 

 

무대는 알제리의 오랑이다.

지리적으로 타 지역과 자연스럽게 단절된 도시 오랑에서 죽은 쥐들이 발견되면서 시작된 페스트가 결국 도시 전역으로 확산하게 되고,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본격적으로 페스트에 대항하게 된다. 도시 오랑은 결국 통제되어 도시 내 모든 사람은 귀양살이 신세가 되고 패닉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에 도시의 사제 파늘루신부는 페스트는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벌이라는 것으로 신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종교원리주의자의 전형을 보인다. 종교는 인간에게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하는데 신부는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죽음과 고뇌와 아우성의 길을 통해 우리는 본질적인 침묵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이 광대무변한 위안이다.” “우리 시민들이 매일 겪는 참상과 죽음속에서 그 나머지 일은 신이 하시리라는 것이다나중에 신부 역시 페스트의 희생자가 되는데 치료를 거부하는 듯한 태도로 사망하는데, 그전 판사의 자녀가 개발된 혈청으로 치료받고서도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도한 의사 리유의 절규는 생생하다.

나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고 있어요.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과연 종교가 우리에게 무엇인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대목이다. 의사 리유는 말한다.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성실성이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린 신의 심판에 따르기보다는 주어진 역할과 본분에 충실하여 페스트라는 도전에 응전하는 것이다. 이는 보잘 것 없는 신분의 그랑이나 후반부의 랑베르가 그러며, 또렷한 의식의 타루가 보여주는 것이다.

타루’. 이 사람의 족적이 바람직한 것이다.(물론 리유역시 바람직하기만 하다만.)

사형집행은 곧 페스트인데, 은유적으로 인간 저마다 페스트를 지니고 있어 자신의 잘못으로 남에게 중차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직한 인간이란 누구에게도 병독을 옮기지 않는 사람으로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의 의지와 긴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겸손해야 하며 신은 믿지 않되 성인이 되고자 원하며, 결국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 것이다.

리유타루의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어지고 나서 즉석에서 해변으로 가 원초적인 인간인 양 둘의 야간 수영은 한편 영화 속 장면처럼 연상되었다.

후반부에 그랑을 빗대어 생각하는 리유의 상념은 나에게도 상념을 유발한다.

사랑이 없는 이 세계는 죽은 세계와 다를 바 없으며, 사람에게는 언제고 반드시 감옥이니 용기니 하는 것들에 지친 나머지 한 인간의 얼굴과 애정 어린 황홀한 가슴을 요구하는 때가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고….”소박한 말이지만 이의 원대한 정의는 곧 휴머니즘이겠지.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이 인생에는 인간을 초월해 그 어떤 것을 지향하고자 했던 타루,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성실성으로 종교의 절대성에도 대적하고자 하는 리유’, 추억의 포로가 되어 나약하지만 본분을 다하는 그랑’, 특권을 내려놓고 원칙에 따르는 판사, 당초 개인의 권리에 집착하였으나 현실에 적응하는 랑베르’. 이들이 페스트를 마주하여 제대로 사는 인생들이다.

 

민음사 판 페스트의 역자께 감사를 드린다.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가 이처럼 풍성하게 쓰여진 것은 없었다.

비록 읽는데 추가시간이 소요되지만 까뮈와 소설을 이해하는데 아주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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