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릭 게코스키 지음, 차익종 옮김 / 르네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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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과의 인연
 
서재에 있는 책들을 쳐다보면 그 책들과 인연이 하나씩 떠오른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몇년전만 해도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을 들고 서점을 기웃거리며 책을 구입했다. 여러권으로 출간된 책이면 짝을 맞추려고 발품을 팔아 헌책방을 뒤지고 뒤졌던 기억이 난다. 초창기 모은 책 앞장에는 책을 사준 지인들의 글을 담아두었고, 책의 맨 뒷장에는 회독수와 날짜까지 적어 놓았다. 그렇게 내 서재에 꽂힌 책 한권 한권은 나와의 인연을 맺어왔다.
 
그런데 책과의 인연이 사랑으로 변질되고마니, 도통 책으로부터 헤어나올 줄 모르게 되는게 문제다. 서재에 꽂힌 책을 보고만 있어도 좋고, 새로 한권의 책을 구입할 양이면 설레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 서재에는 헌책보다 새책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사실 내가 새책을 좋아했던 계기는 인터넷의 등장이다. 온라인상 서점간의 가격비교를 통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고싶은 책이 계속 늘어나고 책의 욕심은 더해만 가는 것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걱정이다. 
  
2. 또 한권의 책과 인연을 만들며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저자가 그동안 희귀본거래업에서 맺어온 인연깊은 책들의 뒷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내고 있다. 스무권을 소개하고 있지만, 각 장마다 길지 않은 분량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서술되어 있어 독자로서는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한다. 물론 저자의 전공인 19~20세기 영미 문학작품에 한정되고 있지만, 문학적으로 유명한 책들이 잉태되기까지 작가들의 진솔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는 점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도덕적 시비로 출판사마다 거부당하며 '롤리타'의 원고를 들고 낙담해하는 나보코프의 모습, 고집세고 실랄한 '파리대왕'의 저자 윌리엄 골딩, 극도로 외부와 접촉을 피하는 은둔자 샐린저에게 소송을 당할뻔한 일.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돌킨이 새로운 작품구상을 위한 말년의 유유자적한 모습, 헤밍웨이의 아내 해들리가 원고를 분실한 사건, '악마의 시'의 살만 루슈디와 관련된 저자의 테러위협을 느낀 에피소드, 엘리엇의 작품을 섬세하고 세련된 책디자인과 제본을 맡아준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그레이엄 그린의 애정행각이나 로렌스의 위험한 사랑,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 남편의 사랑이 식어버리자 자살을 선택하는 실비아 플라스의 슬픈이야기까지..여기에 작고 앙증맞게 토끼그림을 표현한 비아트릭스의 '피터래빗'을 구입하고자 하는 충동마저 느낀다. (인터넷을 두드려보니, 피터래빗 그림책시리즈는 절판이라고..)
 
이뿐인가, 책속에는 다른 수집벽을 가진 사람들과 달리 책 수집가들이 새책과 다름없는 완벽한 책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순결한 상태로 획득해서 혼자만 희롱한다는 특별한 성적쾌락(p279)이라고 재미있는 해석을 붙이고 있으며, 눈에 들어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소유욕이 발산되어 강렬한 애착을 느끼는 힘, 유혹을 '책의 심리측량학'(p219)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희귀본의 매매과정속에서 흥정하는 모습도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고, 단순히 돈만을 위해 희귀본을 사고 파는 업을 넘어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아 연구하는 전작주의를 강조하는 부분(p198)은 눈여겨 볼 필요 있다. 그리고 로렌스의 책에 대한 명언까지(p214)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소장가치 충분한 책이다...
 
3. 우리네 모습속으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도 고서부터 근대기 서적까지 26년간 10만권을 수집한 화봉문고의 여승구 대표나, 유럽출장중 고서점,벼룩시장을 돌아다니다 서양고서를 집중적으로 구입하며 이제는 서양고서관련 인터넷사이트를 운영하는 김준목씨를 존경한다. 그야말로 책에 미쳐 사는 사람들이다. 탐미주의자-표정훈, 전작주의자-조희봉씨의 책에 대한 애정행각은 부러울 뿐이다. 그들이 있어 책과 사람들이 아름답다.
 
다만, 요즘 가끔 출판사로 부터 신간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경우가 있다. 그 책들은 1쇄,초판본이지만 어떤 경우는 무식하게 책윗면에 증정용이라는 스템프까지 찍어오는 것도 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쾌하다. 오히려 책에 저자의 정감있는 한마디의 말이라도 적어보내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신나는 일이 될런지 출판사측은 모르는 모양이다. 어떤 출판사의 앞서가는 마케팅을 기대하며, 독자들은 훗날 그 책을 잘 보전하면 희귀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유쾌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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