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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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도 사랑일까, 오해도 사랑일까, 미련도 사랑일까, 안녕도 사랑일까.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감정의 어디까지를 포함하는 것일까. 사랑은 어떠면 특정한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포장지 같은 것이 아닐까. 어떤 감정들의 총합이거나, 하나의 감정의 다른 이름이거나, 정성을 들여 예쁘게 포장하여 이름표를 붙이는 것. 그것의 사랑이 아닐까.


『견딜 수 없는 사랑』 사랑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믿을 수 있을까. 소설 속 등장인물 조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반적으로는 서술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결말을 예상하게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계속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조는 진실을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소설의 초반, 소년을 태운 기구가 하늘로 날아간다. 연인 클래리사와 함께 소풍을 나온 조는 소년을 구하고자 현장에 뛰어든다. 사람들은 연결된 밧줄을 잡아 기구가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 한명이라도 손을 놓는다면 아이를 태운 기구는 더 높이 올라가버리고 말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놓았고, 다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손은 놓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끝까지 붙잡고 있었고, 결국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잊을 수 없는 사고를 맞이하게 된다.


조는 불안하다. 밧줄은 누가 먼저 놓은 것일까. 사람들의 몸무게를 통해 버티면 기구를 붙잡고 있을 수 있었을텐데. 혹시 그게 내가 아닐까. 죄책감이 조를 옭메여 온다. 사람과의 관계에 빈틈에도 이런 것들이 자라는 것이 아닐까. 불안 혹은 죄책감. 조건 없는 사랑이야 없겠지만, 불안은 의심이 되고, 관계의 틈을 점점 더 벌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불안 없는 사랑이 있을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은 말일까. 사랑이 이해를 포함하는 걸까, 이해가 사랑을 포함하는 걸까. 어쩌면 견딜 없게 하는 것은 이해 받지 못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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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창비시선 485
유수연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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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했다. 시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단어를 힘껏 눌러 쓴 것 같다가도, 힘을 빼고 아주 가볍게 쓴 것 같다가도, 아주 눈앞이 깜깜하다가도, 단어 사이의 바람 길이 보이는 것 같다가도 했다. 시집의 시편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면 시인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마음은 현재 진행형은 아니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시인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려는 우리의 조급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매우 천천히 그의 앞선 마음을 따라가고 있다.

감정은 그림자와 같다. 언제나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 때에 따라서 나보다 앞서기도, 나보다 더 그 자리에 오래 남아 있기도 하다. 감정은 늘 예고 없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나는 언제나 걸음이 느리다. 내가 감정보다 앞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감정의 꼬리가 미련처럼 길게 남아서였다. 시인은 “사람이기에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을 슬픔이라 불렀”고, “버리지 못할 슬픔을 사람의 꼬리라고 불렀다” 「도리어」(p.54) 감정의 미련은 아주 길게 남아 있기도 하다. 길어지다 길어지다 흐릿해진다.

감정에게서 나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아예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아주 깊은 어둠 속으로. 나를 깜깜한 곳에 두는 일이다. 조금의 빛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를 숨길 수 없다. 감정의 미련만 길어진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는 감정도 나를 찾을 수 없다. “감자는 깜깜한 곳에 넣어두어야 한다 / 열어보기 전까지는 몰라도 괜찮다” 무엇이 있는지 열어보는 순간, 무엇을 잃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것에 없거나 잃은 것은 생각하기 보다 / 그것을 담은 가방이 어딘가 있다 생각하면 살아가게 된다“ 「감자가 있는 부엌」 (p.27)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무엇보다 슬픔과 미련이라는 감정에 집중했다. 어떤 것도 되지 못한 슬픔과 슬픔을 애써 끊어내다 만들어진 미련. ”청소년에게 한계 없이 꿈을 꾸라 말하지만 사실 한계가 있는 것“ 「보호자」(p.21)이라 말하는 시인은 실은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인연이 끝났다 / 학교 종이 울리듯 깔끔하진 않았다 / 그 끝의 가능성을 치약처럼 / 시험해봤는지 모른다“ 「그림자」(p.68) 하지만 발버둥 쳐도 한계는 있고 미련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슬픔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일까. 「유니폼」 속에서 시인은 “그 일을 하러 가는 중이에요 사람의 일을 말이에요”(p.33)라고 했다. “사람의 일과 동물의 일은 생명의 일로 같”을지라도 “고양이나 강아지의 울음을 따라 해고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었다“「도리어」(p.54) 어쩌면 우리는 슬퍼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웃고 있어도 슬프다고 생각이 드는 건, “집인데 집에 가고 싶”「명절」(p.58)은 것처럼 어쩌면 슬픔은 우리 감정의 기본값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삶의 고통과 상처, 참담한 설움, 슬픔이라 칭할 수밖에 없는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 들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들을 담아내는 텅 빈 용기에 불과하지만, 이따금 제 용도를 스스로 가두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 한발 더 나아가 그렇게 넘치는 슬픔을 자신의 몸에 가둔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곧 "사람의 일"이라는 것._p.109 해설_조대한 문학평론가

하지만 슬픔이 우리의 기본값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묘한 위로를 받는다. 애써 외면하고 부정했던 것들을 더 이상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마음은 편안해진다. 마음이 짊어진 것들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일까. 몸도 마음도 가벼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실제로도 어찌할 수 없던 것이었다는걸, 그래서 어쩌면 더 행복할 수 있다는걸, 우리는 항상 너무 늦게 안다.

앞서 나는 감정에게서 나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이 빛이 하나 없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쩌면 시인도 등단 시에서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애인」(p.95) 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속 마지막에 담긴 시편을 읽었을 때 그의 마음이 조금은 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물론 수록된 순서가 시인의 시간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네가 나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세상" 속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시인은 말한다. "균형아, 나는 너를 안으려 조금 기울었다"「새로운 일상」(p.103)고. 감정에게서 나를 숨기는 것은 감정과 나의 균형을 맞추는 것. 나를 조금 기울여 감정 속으로 들어가는 일. 결국 슬픔을 마주하는 것이 슬픔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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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단경로 -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강희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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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단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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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핸드폰에는 여러 가지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설치 되어있다. 핸드폰의 기본 애플리케이션인 애플 지도. 국내에서 쓰기 좋은 카카오맵과 네이버 지도. 해외에서 여행할 때 좋은 구글 지도. 파리에서 파업을 피하기 위해 설치한 citymapper. 여행에서 동선 파악하기 용이한 트리플. 운전할 때 유용한 카카오내비, T map과 모두의 주차장. 지하철 노선도와 버스 어플은 유사 지도이다. 이렇게 나열해 놓으니 온갖 지도를 모두 쓰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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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대에 있을 때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이었다. 보안상의 문제로 인터넷 PC는 사용이 제한적이었다. 네이버 지도가 서비스되고 있었으나 지금과 같은 정보를 제공할 만큼 발전되어 있지는 않았다. 한 간부가 인터넷 PC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지도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로 지도를 그렇게 보냐고 물어보니, 지도를 보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이상하다 생각했다. 지도를 보는 취미라니. 그는 그것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무엇을 보고 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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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뜩 그가 이해가 되었다. 계기는 없었다.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보는데 그가 생각났다. 어쩌면 그는 그 길을 걷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익숙한 그 거리를, 다시 한번 걷고 있었다. 낯선 그 거리를 처음 걸어보고 있었다. 지도를 보는 일이 어쩌면 그에게는 그곳을 여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나도 가고 싶은 곳의 지도를 가만히 바라본다. 로드뷰를 통해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실제로 여행할 날을 위해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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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들은 목적지까지의 길을 효율적으로 알려준다. 네이비게이션은 차량이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골목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때로는 통행이 어려운 길로 안내해한다. 동두천에서 양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깜깜한 밤에 아무도 다닐 것 같지 않은 산길로 안내했다. 나는 굉장히 난처해졌다. 차량에 전조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어둡고 좁은 길이었다. 서툰 운전 실력으로 그 길을 과연 넘어갈 수 있을까. 과연 그 길이 내게 최선의 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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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지도는 목적지까지 가는 효율적인 수단을 알려 주기도 한다. 올해 12월에 파리로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대중교통 파업으로 인해 이동하는데 많은 고생을 했다. citymapper라는 애플리케이션은 파업 상황을 고려해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만약 그 애플리케이션이 없었다면 여행 내내 우버를 이용하거나 걷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물개 박수를 치며 감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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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도 최단경로가 존재할까. 일단 그럼 목적지부터 설정해야 한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한번뿐인 인생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시간은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빠꾸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행에서도 가끔 길을 잃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순간은 뒤돌아보았을 때 늘 행복했다. 시간에 쫓기고, 다리도 아프고, 비용도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들 수도 있다. 순간은 고생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우연에서 오는 만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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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가끔은 길을 잃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내가 지금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걷더라도 그 다리의 근육이 조금 더 나를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빠르게 가려고만 하면 언젠가 반드시 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 그때 지도가 가라는 대로 갔다는 변명이 통할 수 있을까. '애영'이 조금 돌아가더라도 조금 덜 신경쓰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낸 것처럼, 우리도 조금은 즐기며 길을 걷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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