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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ㅣ 창비시선 485
유수연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평점 :
시는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했다. 시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단어를 힘껏 눌러 쓴 것 같다가도, 힘을 빼고 아주 가볍게 쓴 것 같다가도, 아주 눈앞이 깜깜하다가도, 단어 사이의 바람 길이 보이는 것 같다가도 했다. 시집의 시편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면 시인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마음은 현재 진행형은 아니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시인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려는 우리의 조급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매우 천천히 그의 앞선 마음을 따라가고 있다.
감정은 그림자와 같다. 언제나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 때에 따라서 나보다 앞서기도, 나보다 더 그 자리에 오래 남아 있기도 하다. 감정은 늘 예고 없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나는 언제나 걸음이 느리다. 내가 감정보다 앞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감정의 꼬리가 미련처럼 길게 남아서였다. 시인은 “사람이기에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을 슬픔이라 불렀”고, “버리지 못할 슬픔을 사람의 꼬리라고 불렀다” 「도리어」(p.54) 감정의 미련은 아주 길게 남아 있기도 하다. 길어지다 길어지다 흐릿해진다.
감정에게서 나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아예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아주 깊은 어둠 속으로. 나를 깜깜한 곳에 두는 일이다. 조금의 빛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를 숨길 수 없다. 감정의 미련만 길어진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는 감정도 나를 찾을 수 없다. “감자는 깜깜한 곳에 넣어두어야 한다 / 열어보기 전까지는 몰라도 괜찮다” 무엇이 있는지 열어보는 순간, 무엇을 잃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것에 없거나 잃은 것은 생각하기 보다 / 그것을 담은 가방이 어딘가 있다 생각하면 살아가게 된다“ 「감자가 있는 부엌」 (p.27)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무엇보다 슬픔과 미련이라는 감정에 집중했다. 어떤 것도 되지 못한 슬픔과 슬픔을 애써 끊어내다 만들어진 미련. ”청소년에게 한계 없이 꿈을 꾸라 말하지만 사실 한계가 있는 것“ 「보호자」(p.21)이라 말하는 시인은 실은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인연이 끝났다 / 학교 종이 울리듯 깔끔하진 않았다 / 그 끝의 가능성을 치약처럼 / 시험해봤는지 모른다“ 「그림자」(p.68) 하지만 발버둥 쳐도 한계는 있고 미련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슬픔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일까. 「유니폼」 속에서 시인은 “그 일을 하러 가는 중이에요 사람의 일을 말이에요”(p.33)라고 했다. “사람의 일과 동물의 일은 생명의 일로 같”을지라도 “고양이나 강아지의 울음을 따라 해고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었다“「도리어」(p.54) 어쩌면 우리는 슬퍼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웃고 있어도 슬프다고 생각이 드는 건, “집인데 집에 가고 싶”「명절」(p.58)은 것처럼 어쩌면 슬픔은 우리 감정의 기본값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삶의 고통과 상처, 참담한 설움, 슬픔이라 칭할 수밖에 없는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 들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들을 담아내는 텅 빈 용기에 불과하지만, 이따금 제 용도를 스스로 가두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 한발 더 나아가 그렇게 넘치는 슬픔을 자신의 몸에 가둔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곧 "사람의 일"이라는 것._p.109 해설_조대한 문학평론가
하지만 슬픔이 우리의 기본값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묘한 위로를 받는다. 애써 외면하고 부정했던 것들을 더 이상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마음은 편안해진다. 마음이 짊어진 것들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일까. 몸도 마음도 가벼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실제로도 어찌할 수 없던 것이었다는걸, 그래서 어쩌면 더 행복할 수 있다는걸, 우리는 항상 너무 늦게 안다.
앞서 나는 감정에게서 나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이 빛이 하나 없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쩌면 시인도 등단 시에서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애인」(p.95) 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속 마지막에 담긴 시편을 읽었을 때 그의 마음이 조금은 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물론 수록된 순서가 시인의 시간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네가 나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세상" 속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시인은 말한다. "균형아, 나는 너를 안으려 조금 기울었다"「새로운 일상」(p.103)고. 감정에게서 나를 숨기는 것은 감정과 나의 균형을 맞추는 것. 나를 조금 기울여 감정 속으로 들어가는 일. 결국 슬픔을 마주하는 것이 슬픔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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