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렌털이 되나요
이누준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가족도 렌털이 되나요?"

자동차도, 옷도, 심지어 캠핑 장비도 빌리는 요즘 시대에 가족까지 빌린다는 설정일까요?

제목만 보면 살짝 장난기 어린 질문처럼 들립니다.

이누준 작가의 <가족도 렌털이 되나요>는 한 소녀 배우의 이야기를 통해 무대와 현실, 연기와 진심,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얽힌 감정들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

주인공 스기사키 유나는 한때 유명한 아역배우였습니다.

TV 광고에 등장하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대 위에서 반짝이던 아이였지요.

하지만 지금의 유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극단 하마마쓰에서 조용히 활동하는 단원일 뿐입니다.

유나의 기억 속에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연극 <가족의 풍경>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시절입니다.

관객들은 그녀의 연기를 두고 ‘배역에 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몰입했고, 그만큼 진심이었습니다.

그녀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단순히 박수와 명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대 위에서 연기했던 가족이 너무도 따뜻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가정은 이혼을 고민하는 부모님, 그리고 다시 TV로 돌아가길 바라는 엄마의 잔소리로 채워져 있습니다.

연기였던 가족은 화목했고, 현실의 가족은 균열이 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짜가 더 진짜처럼 느껴졌던 순간이었던 셈입니다.

​

어느 날 유나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옵니다.

극단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렌털 극단원’이 되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유나는 ‘나츠미 카나’라는 인물을 연기하게 됩니다.

카나의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일.

설정만 들어도 묘하게 긴장감이 흐릅니다.

처음에는 철저히 연기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점점 일상의 결을 닮아갑니다.

어색한 식탁, 조심스러운 대화, 어딘가 허전한 공기 속에서 유나는 배우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정체불명의 의뢰인으로부터 날아오는 편지, 극단 동기 타쿠야의 등장, 주변 사람들의 수상한 시선이 더해지며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단순히 따뜻한 이야기로만 진행될 줄 알았던 이야기는, 중반 이후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게 됩니다.

​



​

배우는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죠.

하지만 카나를 연기하면서 유나는 깨닫습니다.

연기라는 것이 단순히 대사를 외우고 감정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카나의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유나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을 연기하고 있는가.

어디까지가 배역이고, 어디부터가 나인가.

그리고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

유나는 어린 시절 무대 위에서 경험했던 ‘이상적인 가족’을 그리워합니다.

하지만 가족은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계속 덧칠하며 만들어가는 풍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이 작품은 유나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장은 거창한 성공이나 화려한 복귀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흔들림과 고민, 망설임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다시 빛나고 싶은 욕망, 부모의 기대에 대한 부담, 지금의 자신이 충분한지에 대한 불안.

이 감정들이 과장 없이,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

<가족도 렌털이 되나요>는 겉보기보다 훨씬 깊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하고, 섬세한 감정선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꿈과 미래를 고민하는 분들,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이 복잡한 분들께 특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무대 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우리 각자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면서, 동시에 자기 인생의 배우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어려운 배역은 언제나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용하지만 깊게 스며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조명이 하나 켜진 듯한 기분이 드실 거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일론 머스크의 소름돋는 미래 예측 50가지
최경수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

일론 머스크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밤하늘을 가르는 로켓? 도로 위를 달리는 전기자동차? 아니면 SNS에서 한밤중에 던지는 돌직구 한 방?

일론 머스크는 워낙 독특한 행적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괴짜’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기자동차 혁신을 이끌었고, 테슬라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스페이스X를 통해 우주 개발의 속도를 눈에 띄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비판과 찬사가 동시에 따라붙는, 참으로 특이한 인물이지요.

그는 X(구 트위터)와 각종 인터뷰, 강연에서 미래에 대한 발언을 쏟아냅니다.

화성 이주, 인공지능, 자율주행, 컴퓨터 인터페이스 등 듣고 있으면 황당하기도 하지만 몇 년 뒤 슬쩍 현실이 되어 있는 장면을 보며 그의 탁월한 식견에 놀라게 됩니다.

최경수의 <일론 머스크의 소름돋는 미래 예측 50가지>는 지난 수년간 머스크가 했던 발언들을 모아,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내용과 아직 진행 중인 예측들을 하나하나 점검해보고 있습니다.

​

머스크의 발언은 얼핏 들으면 예언 같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예언이라기보다 구체적인 데이터와 확실한 계산과 확신에 가득찬 말 들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읽다 보면 너무 나간 거 같은 대목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아무 데이터 없이, 아무 준비 없이 던지는 말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



​

제목처럼 책에는 꽤 소름 돋는 예측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앞으로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

변호사나 회계사처럼 복잡한 규칙과 법전을 다루는 직업들은 AI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완벽하게 대체할 영역이다. 인간이 수천 페이지의 판례를 검토할 때 AI는 단 몇 초 만에 최적의 논리를 구성한다. 규칙을 해석하는 권위는 사라지고 지능은 보편적 공공재가 될 것이다. (2025년 10월,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강연)

→ 로봇이 공장의 육체노동을 대신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일론 머스크는 반대로 AI의 타격을 가장 먼저 받는 직업이 지적 노동을 하는 '화이트칼라'라고 말하고 있네요. 전문직이라고 믿었던 정교한 업무들이 사실은 기계가 더 잘 수행하는 규칙의 조합이라는 점이 이해가 됩니다.

​

미래에는 노동이 선택 사항이 될 것이다. AI와 로봇이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면서 물가는 0에 수렴하고, 인류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기본소득'을 넘어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보편적 고소득'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2024년 5월, 비바 테크놀로지)

기술 혁명이 가져올 극단적인 비용 절감은 화폐 가치 하락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생산성이 폭발하면 인플레이션의 정의 자체가 바뀐다. 물건값이 떨어지는 속도가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보다 빨라질 것이다. (2021년 9월, 코드 컨퍼런스)

→ 글쎄요. 아무리 로봇이 발달하고 모든 공정이 자동화가 되고 노동이 사라진다고 한들, 물건의 가격이 0에 수렴할까요? 결국 재화를 생산하는 로봇을 관리하는 자가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

현재 한국의 출산율 추세를 보면, 한국은 인구 붕괴라는 재앙을 맞이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며, 결국 세계 지도에서 자취를 감출 위험에 처해 있다. (2022년 5월, X 포스팅)

→ 이건 이미 다가온 현실이라 부정을 못하겠네요.

​

우리는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기계가 세상을 운영하고 우리는 결과만을 받아들이는 시대가 온다. 인류는 점차 기술의 내부 작동 원리를 파악할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2023년 12월, 기술 팟캐스트)

​

→ AI를 활용하여 결과물만을 취득하는 세대는 그 원리를 잊어버리고 능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경고는 너무 와 닿습니다. 복잡한 코드 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글쓰기마저 AI에 맞기는 시대에 인간의 뇌는 점점 그 능력이 퇴보될지도 모르겠네요.

​

​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머스크의 사고가 지극히 '공학적’이고 ‘프로세스적’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감정이나 이념으로 보기보다는, 시스템과 구조로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설계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발언들이 나오게 됐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더라구요.

머스크의 발언이 맞느냐 틀리느냐를 떠나, 그는 분명 미래 담론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가 몇 년 전 던져놓은 문장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
지웅배(우주먼지)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

밤 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우주의 경이로움과 인간의 하찮음을 느끼곤 합니다.

반짝이는 별빛 아래 서 있노라면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작아 보입니다.

아니, 작다 못해 거의 먼지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우주먼지요.

그런데 그 우주먼지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천문학자들입니다.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는 지웅배 작가가 천문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과 과학, 그리고 우주에 대한 사색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배경 위에 인간이라는 작은 점을 올려두고, 그 점이 얼마나 웃기고도 사랑스러운지 이야기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책의 첫 에피소드 제목은 도발적입니다.

‘쓸모없음에 대한 자백’.

과연 천문학은 쓸모가 없을까요?

저자는 천문학의 ‘경제적 가치’를 묻는 질문 앞에서 약간은 자조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물리학이나 화학은 당장 산업과 기술에 연결되지만, 천문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망원경으로 별을 본다고 해서 당장 매출이 오르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GPS, 위성통신, 우주 기술의 상당 부분이 천문학과 우주과학 연구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늘 당장 쓸모가 없다고 여겨졌던 연구가 수십 년, 수백 년 뒤 인류 문명을 바꿔 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더 인상 깊었던 대목은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반짝이는 별빛은 이미 오래전에 출발한 과거의 빛이다.”

우리는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별의 흔적을 보고 있습니다.

천문학자는 바로 그 ‘과거의 빛’을 추적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래전에 사라진 존재의 흔적을 잊지 않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니, 천문학은 쓸모없는 학문이 아니라 기억을 보존하는 학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천문학은 가장 거대한 규모의 추모이자, 가장 긴 시간의 기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우리는 은하수를 보면 감탄합니다.

“와, 저게 바로 우주의 강이구나!”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천문학자에게 은하수는 때때로 ‘시야 방해물’입니다.

은하수의 빛이 너무 강해서 그 너머의 우주를 관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아, 또 가려졌네…”라는 한숨의 대상이라니, 세상은 역시 입장 차이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저자의 유머가 빛을 발합니다.

원고 마감일을 어겨가면서까지 책을 쓰지 못해서 두서없이 썼다고 고백하지만, 읽는 내내 이야기는 유려하고 흥미로웠습니다.

​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이것입니다.

매년 생일마다 자신의 나이만큼 ‘광년’ 떨어진 별을 찾아보자는 제안입니다.

나이가 곧 거리라니, 이 얼마나 시적인 발상입니까.

올해 제 나이가 48이니까, 48광년 떨어진 별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약 48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까마귀자리'의 알파(Alchiba)라는 별이 있습니다.

그 별빛은 48년 전에 출발해 지금 제 눈에 도달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태어났을 무렵 그 별에서 출발한 빛이, 제 생일 즈음에 도착했다고 상상해 보면 괜히 마음이 몽글해집니다.

“아, 나와 같은 시간을 건너온 빛이구나.”

이런 상상 하나로도 우주가 훨씬 가까워집니다.

천문학은 숫자와 공식의 학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상의 학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올랐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주가 이렇게 거대하다면, 인간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자는 인간의 하찮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우주의 나이, 크기, 스케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인간은 거의 점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점이 우주를 이해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이야말로 경이롭지 않습니까.

우주는 거대하지만, 그 거대함을 인식하는 존재는 인간입니다.

별빛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밤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고 싶어졌습니다.

한동안 별자리를 찾아본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목을 뒤로 젖혀 보고 싶습니다.

북두칠성도 찾고, 제 나이만큼 떨어진 별도 떠올려 보고, 그 너머의 우주를 상상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유튜브도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활자로 만난 천문학자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들으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

별을 연구하는 사람은 쓸모없어 보일지 몰라도, 별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를 조금 더 넓은 세계로 이끕니다.

그리고 그 넓은 세계를 아는 순간,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덜 조급해집니다.

오늘 밤,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셔도 좋겠습니다.

어쩌면 48년 전, 혹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 출발한 빛이 지금 여러분을 향해 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노 이모션
이서현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의 설렘도 없고, 우정의 따뜻함도 없고,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이 예뻐서 괜히 기분 좋아지는 일도 없겠지요.

세상은 아마도 아주 단정한 회색빛일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슬픔도 없고 분노도 없습니다.

시험 망쳐도 덤덤, 상사에게 혼나도 무덤덤.

감정 기복이 없으니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말도 있듯이 부러움이 있어야 더 잘하고 싶고, 분노가 있어야 바꾸고 싶고, 사랑이 있어야 지키고 싶어질텐데요.

감정이 사라지면, 동력도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닐까요?

이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소설이 바로 이서현 작가의 <노 이모션>입니다.

​

<노 이모션>의 배경은 감정제거술이 일상화된 근미래 사회입니다.

AI에게 위기감을 느낀 과학자들은 인간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을 ‘감정’으로 지목합니다.

감정 뉴런을 제거하는 수술이 성공하고, 세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감정을 가진 사람과 감정을 제거한 사람.

“감정을 제거하고도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작품 내내 묵직하게 울립니다.

그러나 사회는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라는 결론에 손을 들어 줍니다.

참으로 이성적인 결정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요.

이 세계에는 ‘노이모션랜드’라는 최고의 기업이 등장합니다.

이곳은 감정을 제거한 사람만 입사할 수 있습니다.

효율, 성과, 완벽한 판단.

그야말로 감정 없는 엘리트들의 왕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사를 꿈꾸지만, 막상 감정을 없애는 수술 앞에서는 망설입니다.

감정이 귀찮기는 해도, 막상 떼어내자니 왠지 심장이 허전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

이야기의 중심에는 강하리가 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 무소유자로 판정받은 인물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노이모션랜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습니다.

게다가 인류 최초의 감성 제거자이자 회사 설립자인 ‘어스’가 상징적인 인물로 그녀를 주목합니다.

한마디로, 감정 없는 사회가 기다려온 완벽한 인재입니다.

그런데 완벽한 시스템에는 꼭 작은 오류가 생기지요.

강하리에게 발신인 불명의 고백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고백, 이어지는 사건들.

감정이 없다던 그의 마음속 한구석에서 이상한 질문들이 피어오릅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걸까?”

“이건 단순한 호기심일까, 아니면…?”

이 지점에서 독자는 흥미로운 경험을 합니다.

감정이 없다고 설정된 인물에게서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흔들림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제거했다고 믿는 사회 속에서,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기척이 서서히 스며듭니다.

감정은 수술로 깔끔하게 도려낼 수 있는 기관이 아니라, 인간 존재 깊숙한 곳에 얽혀 있는 뿌리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설정이 기발해서가 아닙니다.

감정을 제거하는 사회라는 극단적인 배경을 통해 작가는 오히려 감정의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감정은 때로 우리를 망칩니다.

충동구매를 하게 만들고, 괜히 상처받게 하고, 밤에 이불킥을 하게 하지요.

하지만 동시에 감정은 우리를 움직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고, 억울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집니다.

만약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실수는 덜 하겠지요. 하지만 모험도 덜 하지 않을까요?

상처는 덜 받겠지만, 깊이 사랑할 일도 없지 않을까요?

작가는 이 질문을 독자에게 조용히 건넵니다.

감정은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삶을 앞으로 밀어주는 에너지일지도 모른다고요.

무미건조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신은 오늘 무엇을 느끼셨나요?”라고 묻는 듯합니다.

​

<노 이모션>을 읽으며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조금씩 ‘감정 최소화’의 사회를 향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효율, 데이터,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불편한 요소로 취급하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계산기보다 복잡하고, 알고리즘보다 엉뚱합니다.

그 엉뚱함 속에서 예술이 태어나고, 혁신이 나오고, 사랑이 시작됩니다.

이서현 작가는 차가운 설정 위에 뜨거운 질문을 올려놓았습니다.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 속에서, 과연 인간의 감정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만약 사라진다면, 우리는 여전히 지금의 우리일까요?

​

무채색이 편안해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조금 번지더라도 색이 있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존재가 아닐까요.

무미건조한 시대에 마음껏 감정을 느끼고 또한 재미를 느끼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노 이모션
이서현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정을 억제하는 사회. 우리는 과연 이성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차가운 세계 속에서 인간다움을 묻는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