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가든 - 메타 탐정 손현우
장량 지음 / 제니오(GENIO)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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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좋아하시나요?

저도 추리소설을 무척 좋아해서 코난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 앨리리 퀸 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까지 틈나는대로 작품들을 읽고 있습니다.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 탐정 김전일]도 좋아하는건 말해 무엇이죠 ^^

일본 추리소설이 장르도 다양하고 여러 작가들이 있는 반면 한국 추리소설은 그 시장이 작아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대한민국탐정협회 고문이신 장량 작가의 <다크 가든>은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한국형 추리소설이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1. 포아로와 홈즈가 손을 잡았다면 이런 느낌?

<다크 가든 - 메타 탐정 손현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에르큘 포아로와 셜록 홈즈가 합체했다면 이런 느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장량 작가님은 포아로 특유의 '회색 두뇌'의 논리적 분석과 홈즈 스타일의 날카로운 현장 통찰을 능숙하게 엮어 메타 탐정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손현우는 호신 무술 8단에 검도 5단, 기타 무술까지 합하면 20단이 넘는 무도에, 아가사 크리스티처럼 식물에 대해서도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네요.

더군다나 정원사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어서 일도 잘하는데, 이 정도면 너무 완벽한 캐릭터 아닌가요? ㅎㅎ

2. 캐릭터 맛집 오픈! 네 명이 모이면 못 푸는 사건이 없다

탐정 손현우를 중심으로 뭉친 네 명의 주인공들은 각각 뚜렷한 개성과 역할을 가졌습니다.

국내 굴지의 보험회사 조사 팀장 이보연

자타 공인 셜록 홈즈 전문가인 정도일

현역 경찰 박강진 경정

이른바 '메타 탐정 팀'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요,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아주 인간적이어서,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했습니다.

특히 이 네 명이 하나의 '원팀'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앞으로 시리즈물로 확장될 가능성에 기대를 품게 만듭니다.

"다음 사건은 어떤 조합으로 풀어낼까?" 하고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3. 사회적 메시지, 무거운 질문을 던지다

<다크 가든>의 사건은 일종의 보험사기 사건입니다.

세 번째 남편의 죽음으로, 김나영은 자산이 10억 달러를 넘어선 억만장자, 슈퍼 리치가 되었는데요.

남편들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일본과 북한, 한국을 오가는 사건의 스케일에 탐정 팀은 저마다의 역량을 발휘해 사건을 해결합니다.

김나영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그 뒤에 숨어있는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떠오르는데요.

장량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작품은 소위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4. 대사로만 풀어낸 이야기, 조금은 올드하고 지루하게...

하지만, 솔직한 감상을 더해보자면,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거의 모든 설명과 서사를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풀어냅니다.

이 방식이 신선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전체 두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 중, 초반 1장은 '그린 가든'이라는 손 탐정의 사무실 옥상 정원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요, 아무리 서사가 중요하고 핵심 정보들을 보여주더라도, 대사만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긴 대화는 살짝 버거웠습니다.

요즘 트렌드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부분에서 '조금 올드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느긋하게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며 읽기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전체 2장으로 구성된 목차를 더 잘게 잘라서 템포를 빠르게 했다면 더 좋았을뻔 했습니다.

2부의 '다크 가든'은 현장에서 직접 이뤄지는 이야기라 긴장감이 더해지고 빠르게 진행되어서 좋았습니다.

5. <다크 가든>은 시작일 뿐, 다음이 기대된다

<다크 가든>은 분명 완벽한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첫 걸음이 앞으로의 발걸음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포아로와 홈즈의 장점을 절묘하게 조합한 손현우 탐정, 매력적인 원팀 구성원들,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낸 깊이 있는 이야기는 시리즈가 쌓여갈수록 점점 더 탄탄해질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더 짧고 날렵한 전개, 대사와 서술의 균형 잡힌 구성을 기대해도 되겠지요?

장량 작가님의 다음 한 수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매우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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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을 기획하라 - 지역을 살리는 기적같은 변화의 시작
노동형 지음 / 청년정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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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역 출신입니다. 지금은 수도권에 살고 있지만요.

모든 문화와 경제가 서울에만 쏠려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고향을 생각하면 아쉬운점도 많습니다.

분명 각각의 지역마다 특색있는 문화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잘 살리지 못하는 기획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평소 로컬 축제나 지역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그것이죠.

그러던 차에 <로컬을 기획하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지역을 살리는 기적 같은 변화의 시작'이라는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 첫인상: 로컬 기획의 안내서, 너무 얌전하게

<로컬을 기획하라>는 제목만 들으면 뭔가 생생한 지역의 현장, 축제의 함성, 기획자들의 땀과 눈물이 가득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책을 펼치면 그 기대는 살짝 방향을 틉니다.

마치 대학교 교양 수업의 PPT를 책으로 엮은 듯한 느낌이에요.

깔끔하고 요약이 잘 되어 있어서, ‘로컬 기획이 뭘까?’ 궁금했던 분들에겐 아주 친절한 입문서입니다.

저자 노동형 작가는 로컬이라는 주제를 ‘개념-사례-정리’라는 구조로 간결하게 풀어냅니다.

복잡한 이론은 없고, 어렵거나 무거운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부담 없이 읽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깊이 있는 독서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사례는 많지만, 아쉽게도 겉핥기

책의 표지에는 다양한 지역의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전국 방방곡곡의 로컬 프로젝트, 브랜드, 공간 사례들이 소개돼 있긴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소개’에만 그친다는 점이죠.

“이런 프로젝트가 있어요, 저런 공간도 있었답니다” 하고는 쓱 넘어갑니다.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됐고, 누구의 아이디어였고,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그런 이야기의 맥락과 깊이는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사례들은 줄줄이 스쳐가는 슬라이드처럼 느껴집니다.

‘아, 이런 게 있구나’까진 알겠는데, ‘그래서 이게 왜 중요한 건데?’라는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로컬 축제에 대한 다룸입니다.

지역성과 커뮤니티, 주민 참여가 농축된 로컬 축제야말로 기획의 백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축제는 단 한두 줄의 언급으로 끝나버립니다.

마치 전국 일주를 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만 들른 기분이에요.

저자가 각 지역 축제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기획 과정을 취재해서 담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로컬 기획 바이블’이라 불릴 만한 책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로컬을 기획하라>는 단순히 이름만 훑고 넘어가는 수준이라, 로컬 기획의 온기와 맥락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로컬 기획’이라는 낯선 개념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유용한 나침반이 됩니다.

지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키워드로 접근하면 좋은지에 대한 감은 잡을 수 있죠.

딱 로컬 기획 초보자가 “이 길이 내 길인지” 알아보기 좋은 로드맵 같은 책입니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더 궁금해진 분들은, 다음 단계로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담긴 기록물, 혹은 기획자 인터뷰집 같은 책들을 찾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로컬을 기획하라>는 입구일 뿐, 로컬의 세계는 훨씬 넓고 깊으니까요.

| 덧붙여

비교가 실례일 수도 있지만, 비즈니스적인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사업체나 가게를 소개하는 시티호퍼스의 <퇴사준비생의 OO> 시리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리즈는 실제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 배경, 창업자의 고민, 공간에 담긴 철학까지 깊고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 뿐만아니라 그 지역의 특성과 문화까지 파고들어가는 깊이 있는 취재를 바탕으로 합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나도 이 가게 가보고 싶다", "이런 브랜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자연스럽게 자극하죠.

반면, <로컬을 기획하라>는 그런 디테일과 감정선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었지만 장소의 냄새도, 사람들의 표정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입니다.

그냥 딱 교과서를 읽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만약 노동형 작가님이 다음 책에서는 각 지역의 현장을 직접 누비며 기획자들과 찐하게 인터뷰하고, 축제 뒤편의 고군분투까지 담아낸다면 정말 멋진 ‘로컬 기획 실전편’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아울러 도시 재생과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최유진 교수의 <도시, 다시 살다>도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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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정의 (양장본)
나카무라 히라쿠 지음, 이다인 옮김 / 허밍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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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몇 년 전 대한민국에 '정의' 열풍을 몰고 온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이 유행한데는 그만큼 사회 정의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의롭다는 말, 누군가에게 참 멋진 찬사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정의가 과하거나 자의적으로 정의를 해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카무라 히라쿠의 <무한정의>는 바로 그 무한하고 무거운 정의를 들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충격적인 질문 하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인공 료이치는 경찰입니다.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아이콘이죠.

그런데 그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의 비밀이죠.

딸 카나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고(성폭행을 당할뻔한 상황에서 정당방위이자 우발적으로요), 료이치는 그것을 덮으려 합니다.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경찰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성소자라는 연쇄살인범의 범행으로 위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도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책을 덮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솔직히 말해, 너무 무겁고 무서운 질문입니다.

료이치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수사본부에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인을 한 그 순간부터 그는 경찰과 살인범, 그리고 조직의 내부에서 갈등과 번뇌를 겪게 됩니다.

이쯤에서 익숙한 향기가 납니다.

영화 [무간도] 기억나시죠?

경찰인데 범죄자고, 범죄자인데 또 경찰이고... 서로 속이고 속다가 결국 아무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고뇌하는 이야기.

<무한정의>도 그렇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의를 포기하고, 결국 '누가 진짜 나쁜 놈인가' 하는 질문만 남습니다.

료이치는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무너뜨립니다.

그 선택이 정의로운가?

아니요. 그러나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 책의 무서운 점입니다.

이 작품 속 정의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료이치의 선택은 법적으로는 잘못된 것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참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딸의 인생과 정의 사이,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

그 질문 앞에서 많은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해한다’는 쪽으로 한 발짝 물러서게 될 것 같습니다.

작가는 그점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당신은 끝까지 정의로울 수 있는가.”

제목을 '무한정의'라고 정한 이유가 뭘지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정의를 자신의 신념대로 무제한으로 확장시켜버린다면 그 정의는 폭력이 될겁니다.

료이치가 '딸을 위한 정의'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괴물이 된 것 처럼 말이죠.

그리고 책의 제목을 자세히 보니 '바를 정'자 위에 두 획이 더해져 '아닐 부'라는 글자도 보입니다.

아마 작가는 무한정의는 무한불의와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제목은 그래서 역설적이네요.

연쇄살인범인 성소자를 찾기위한 경찰들의 치밀한 수사와

딸을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 범죄를 덮기 위해 또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료이치의 탈주,

성소자와 모방범을 파헤치려는 또다른 조직폭력 집단의 추리,

내부 감찰관의 집요한 추적 등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장면 구성과 짜임새 있는 구성이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네요.

이 작품도 영화로 만들어지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당신이 료이치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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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에토 지음, 이구름 옮김 / 모모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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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요즘 저는 수영을 배우고 있습니다.

수영장 물속에 들어가면 처음엔 숨쉬기도 어렵고, 몸도 마음도 어색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팔다리가 물과 리듬을 맞추기 시작하면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지고, 동시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합니다.

땀은 나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죠.

‘아, 살아 있구나.’

모리 에토의 <런>을 읽으며 그 느낌이 떠올랐습니다.

이 소설은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살아 있음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다마키는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남은 삶을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버린 채 살아갑니다.

희망도 없고, 관계도 끊긴 채, 그저 숨만 쉬고 있던 삶.

그러다 우연히 받은 자전거를 타고 죽은 자들의 세계, ‘레인’에 닿고, 그곳에서 죽은 가족을 다시 만나죠.

하지만 그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이번엔 자전거도 없이 40km를 ‘뛰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황당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왜 하필 ‘달리기’일까?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됩니다.

달리기는 단순히 다리를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무기력에서 빠져나와 삶을 다시 붙잡는 과정이에요.

그 안에는 고통도 있지만, 동시에 에너지와 방향, 그리고 희망이 있습니다.

저는 이걸 수영과도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물속에 들어갈 때처럼, 삶에 다시 발을 담그는 건 두렵고 버거운 일이죠.

하지만 팔을 휘젓고 발을 차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리듬 속에서 점점 마음이 움직입니다.

물 위를 떠 있는 몸만큼, 가라앉았던 마음도 천천히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혼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마키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녀의 변화는 ‘이지러너즈’라는 러닝팀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팀인데, 그 안엔 웃긴 사람도, 괴짜도, 거리감 있는 사람도, 조금은 까칠한 사람도 있죠.

그런데 이상하게, 함께 뛰다 보면 벽이 허물어지고 서로에게 스며듭니다.

몸이 같이 움직이면, 마음도 같이 움직이게 되는 법이니까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에이코 씨와의 관계입니다.

에이코 씨는 처음엔 다마키에게 꽤 적대적으로 굴고, 흔히 말하는 ‘악역’ 포지션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그녀 역시 마음의 깊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다마키와 에이코는 여러 번 부딪히지만, 그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부딪히며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죠.

두 사람 모두 마음의 벽을 허물고, 상처를 나누고, 서로에게 성장의 디딤돌이 되어줍니다.

어쩌면 진짜 변화는 그 지점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만큼,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변화시킨다는 것.

그건 더 어렵고도 의미 있는 성장입니다.

마침내 다마키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내는 장면은 단순히 ‘달리기 성공’의 순간이 아니라, 삶과 연결된 모든 것, 자신, 가족,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한 상징적 순간으로 다가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멈춰 서는 시기가 있습니다.

숨을 쉬고 있어도 살아 있는 느낌이 나지 않는 그런 순간들요.

그럴 때 <런>은 조용히 말해줍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천천히, 네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움직이면 돼.”

저는 오늘도 수영을 배우러 갑니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면서도,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살아나는 걸 느낍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움직임’이 있기를 바랍니다.

달리든, 수영하든, 혹은 그냥 마음속에서 한 발 내딛는 것이라도요.

우리는 다시 움직일 수 있어요.

그리고, 함께라면 더 멀리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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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에 사는 사람 - 관객과 예술가 사이에서 공연기획자로 산다는 것
이성모 지음 / 오르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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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저는 공연을 참 좋아합니다.

뮤지컬 뿐만아니라 연극, 콘서트 등 무대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저를 감동시킴과 동시에 그 어떤 시간보다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성모 대표의 <무대 뒤에 사는 사람>을 펼치는 순간, 저는 무대 위의 화려한 조명이 아니라 그 빛을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잊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관객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모든 것을 움직이는 수많은 손길과 땀방울입니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대중은 공연을 볼 때 배우와 가수, 그리고 멋진 무대 연출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무대 뒤 조명기사, 음향감독, 무대 감독, 소품팀, 의상팀 등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공연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집니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조명하며 그들의 애환과 열정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겁니다.

이 일은 얼마나 멋지고 낭만적인가!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치열하고 고된가!

<무대 뒤에 사는 사람>은 그 양면을 솔직하게 담아냅니다.

꿈을 좇아 무대로 들어왔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가장 큰 울림이 됩니다.



사실 저도 회사에서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저 자신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모두가 떠난 텅 빈 무대에서 쏟아지는 감정.

리허설 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졌을 때의 긴장감.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밀려오는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과 감동까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그 감정들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같은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아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무대를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통해,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을 만드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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