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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사전 (리커버) - 작가를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
안젤라 애커만.베카 푸글리시 지음, 임상훈 옮김 / 윌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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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알차고 양장으로 리커버된 건 좋지만 포장 상태가 영 엉망이네요 새책인데도 모서리마다 다 하얗게 찍혀서 왔어요 알라딘은 배송에 신경 좀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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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퀸 : 적혈의 여왕 1 레드 퀸
빅토리아 애비야드 지음, 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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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타. 지배계급인 은혈과 피지배계급인 적혈이 마치 지붕과 기둥처럼 떠받들여지고, 떠받들며 살아가는 곳. 다른 것도 아닌 오직 피의 색만으로 날 때부터의 사회 계 급이 정해지고, 일평생 그러한 ‘삶의 진리’를 따라야 하는 세계다.


메어는 적혈인들의 마을인 스틸츠에서 가족과 살아가는 평범한 십대 소녀로, 몸에 붉은 색의 피가 흐르는 적혈이고, 먹고 살기는 힘들며, 위에서 군림하는 은혈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다. 일정 나이가 되면 전쟁터로 보내져야만 하는 룰대로, 그녀의 소중한 오빠 셋은 모두가 저마다의 목숨을 내걸고 기약없는 지옥에서의 나날을 보내 는 중이다. 전쟁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돌아오신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뛰어난 손재주로 그나마 '쓸모있는 적혈'로 여겨져 생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동생 지사. 이젠 그들이 메어에게 남은 전부와도 같다.


가족 외에 메어에게 남는 이가 있다면 바로 오랜 친구 킬런이다. 가족만큼이나 소중하고 지켜주고 싶은 존재. 킬런은 어부의 제자로 제 가치를 증명한 덕분에 징병에서  제외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를 잃게 되어 전쟁터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그녀의 특기는 도망칠 때 유리한 빠른 발놀림과 소매치기 기술. 자신과 킬런이 징병에서 벗어나 도망갈 수 있게끔 자금을 모으기로 결심한 메어는 동생 지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은혈들이 가득한 도시에서 그 계획을 실천하고자 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전개로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지사는 가장 귀중한 자신의 손을 잃게 되는 비극을 겪는다.


지사의 사고와 비극에 대한 모든 책임감을 느끼는 메어. 어리석은 자신을 책망하며 정처없이 헤매던 그녀 앞에 새로운 인물, 칼이 나타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의 도움으로 왕궁 일을 돕게 되지만, 왕세자의 비를 뽑는 행사 '퀸스트라이얼'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를 겪으며 자신도 모르던 제 안의 능력을 깨닫는다.


불가능한 일이고 허락되지도 않은 일이다. 하우스-가문마다 주어진 각기각색의 초능력은 오직 고귀한 은혈들에게만 주어진 특권과도 같은 것이어서, 별 것 아닌 적혈 소녀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큰 문제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은혈과 적혈의 계급을 나누고, 오랜 시간 동안 그 계급이 유지되도록 가능케 한 힘이 바로 은혈들만의 초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적혈들의 희망을 빼앗고 나머지 은혈들의 의심을 누르기 위해 왕과 왕비는 둘째 왕자인 메이븐과 메어의 결혼을 약속하고, 그녀가 자신의 출신성분을 모두 숨긴 채 사라진 가문의 살아남은 은혈 생존자 '메리어나 타이타노스'로 연기하며 살아가도록 압박한다.


늑대굴에 남겨진 양이 되어 매순간 감시와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메어. 궁중암투와 의심, 배신과 배반이 판치는 그곳에서의 삶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그녀를  숨막히고 지치게 만든다. 그런 생활에 그나마 숨통 틔우는 존재는 칼(왕세자)와 메이븐(왕자). 다행히도 그녀에게 적개심 없이 대해주는 이들이 있어 버틸 힘이 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삶과 운명은 뜻대로만 흐르지 않아 위기가 잇따른다.


진홍의 군대. 은혈들의 부조리한 군림과 그들의 적혈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고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탄생한 모임. 은혈로서의 삶을 겪을수록 그들에 대한 저항심 과 적개심이 더해짐을 느끼던 메어는, 때마침 알게 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계기로 진홍의 군대 일원이 된다. 자신의 목숨과 안위를 걸고 이중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더 큰 그림과 미래를 그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는 여러 번역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레드 퀸' 시리즈 역시 놀라운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25세인 저자의 첫 작품,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와 38개국에 팔린 판권 등. 일개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도 엄청난 기록과 인기를 헐리우드의 전문가들이 놓칠 리가 없다. 때문에 영화화까지 확정되었단다.


위에 소개한 줄거리 내용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실 '레드 퀸-적혈의 여왕'(이하 레드 퀸)의 소재가 아주 신선하거나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동시대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같은 분야의 여러 작품에서도 자주 쓰이는 것들이라 익숙하기까지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중 도드라지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어찌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와 매력이 충분하고 독자의 집중력을 끌어당기는 힘이 대단한, 이야기로서의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엔 사건과 갈등이 줄을 잇고 수많은 캐릭터들의 처절한 분투가 있다. 하지만 결코 부담스럽거나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법한 점이 최대 장점이다. 게다가 적당한 휘발성과 무게감이 동시에 갖춰져서,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에도 알맞고, 그저 여가와 독서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한 대상으로도 훌륭하다.


레드 퀸을 읽고 있노라면 제법 많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며 많은 질타를 받아야 했던 트와일라잇의 벨라가 떠오르기도 하고, 계급사회의 부조리함을 부수고 신세계를 정립하기 위한 도전과 용기가 빛났던 레드라이징과 같은 작품도 마찬가지. 레드 퀸에 등장하는 은혈 귀족(하우스)들마다의 각기 다른 초능력들은 여태 접해왔던 수많은 만화와 이야기와 영화를 떠올리기에 어렵지 않다. 아무래도 많은 작품들 속에서 다뤄졌던 비슷한 소재 때문이리라. 하지만 작가 빅토리아 애비야드는 분명히 고민했고, 열심히 표현한 것 같다. 읽어본 독자로서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레드 퀸과 그 작품들이 예상하기 쉽게 닮은 꼴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 같은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다양한 레시피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 이야기는 재밌고, 제 색을 잘 지켜냈다.


실수하는 미성숙한 소녀. 레드 퀸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 중 하나가 바로 주인공 '메어'다.

자신과 더불어 소중한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같은 계급에 속한 이들(적혈)의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 변화를 꿈꾸는 그녀는, 매번 벽에 부딪치고 거대한 힘 앞에 떨 면서도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다. 목숨을 내놓아야 할 지도 모르고, 이번이 끝일 수도 있지만 굴복하지 않으리라- 하는 그 용기가 어디서 나는지. 새삼 기특하면서도 멋진 캐릭터여서 읽는 내내 그 누구보다도 매력적이었고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백마 탄 기사와 같은 히어로가 나타나 신세계로 데려가주는 식의 이야기는 더 이상 큰 의미도, 흥미도 끌지 못 하는 편이다.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 능동적 으로 이야기 중심에 뛰어드는 여자주인공이라니. 헝거게임과 같은 여러 소설에서도 비슷한 용기를 가진 캐릭터들이 존재하고 하나 둘 새로이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이 주류는 아니다. 때문에 메어는 여전히 가치있고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로맨스 판타지물답게 비현실적인 배경과 요소들 위로 캐릭터들 간의 떨림과 사랑이 있다. 누군가는 판타지 성향이 섞인 로맨스물로, 누군가는 로맨스를 끼얹은 판타지 물로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성장물'로서의 이야기와 주는 메시지가 더 강하다고 평하고 싶다. (앞으로 출간될 시리즈의 2,3권에서의 전개를 접하고 나면 달라 질 수도 있겠지만 1권까지만의 내용으로는 '실수하고 여전히 미성숙한 소녀'의 성장 과정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누구든 누구라도 배신할 수 있다.
메어의 성장에 있어 가장 의미심장하고 중심적인 문장이 아닐까.
치열한 궁중암투와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조력자의 배신까지, 메어는 매번 벽에 부딪치고 열망했던 꿈이 조각나는 과정을 수없이 거친다. 심지어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믿음'에서조차 배신 아닌 배신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동안 자신이 저항하고 투쟁하게끔 만들었던 세계관과 믿음들이 깨지는 과정을 통해서다.
옳다고 판단해 선택했던 일이 불행을 초래하고, 기회라 여겨 뛰어든 일이 발목을 붙잡는다. 또한 자신이 속한 곳이 세상의 가장 밑바닥이며 스틸츠에서의 삶이 가장 고달플 것이라 생각했지만, 눈을 뜨고 나아갈수록 더 많을 것을 보며 깨닫는다. 스틸츠보다 더한, 빛과 하늘을 볼 수조차 없는 지옥같은 도시가 존재하고, 스틸츠의 사람들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지옥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많은 갈등과 사고를 겪었음에도 메어는 여전히 미성숙하고 실수를 반복한다. 너무나도 용감하고 기특해서 잊고 있었던 점, 그녀가 겨우 십대 소녀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쉽게 굴복하지 않고, 더 큰 내일을 위해 목숨 내놓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미래를 위해 가슴 떨리는 애정을 애써 밀어낼 줄도 알지만 '단번에 모든 걸 배울 수는 없고 하룻밤만에 어른이 될 수도 없다.'.


성인인 나도 이야기를 읽으며 메어와 동질감을 느꼈고, 그녀가 처한 위기와 사건 속에서 비슷한 착오와 실수를 경험했다. 몸이 자란다고 해서 마음까지 자라는 게 아니라는 건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까. 나뿐만 아니라 세계의 무수히 많은 다른 독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본인들의 나이와 겪어온 세대에 국한 되지 않고 모두가 메어이며, 모두가 미완성이고, 모두가 성장할 여지가 있는 존재라는 걸. 이토록 레드 퀸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시대에는 노르타와 같은 계급이 없다. 게다가 모두가 붉은 피를 가진, 동일한 '적혈'의 사람들이다. 이토록 다른데 왜 그렇게 메어의 이야기가 와 닿았을까 생각해본다.
결국엔 현실과 소설 속 노르타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거다. 직접적인 신분제도는 없지만 누구나 살아감에 있어 느끼는 현실의 벽이 있을 것이고, 책에서는 그 벽을 '적혈'과 '은혈'로 나뉘는 배경 장치를 통해 명확히 했을 뿐이다. 어느 쪽이 더 나은가에 대해 고민해본다. 상대가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세상인가, 유리벽과 유리천 장으로 가득한 세상인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실로 정말 오랜만에 새벽 늦게까지 읽은 책이 바로 '레드 퀸'이다. 워낙에 읽는 속도가 느린 달팽이 독자인지라 책 한권 돌파하기에도 며칠이 걸리는 타입인데, 이 책은 손에 꼽힐 정도로 몰입해 빠르게 읽었던 기억. 몰입해 빠져드는 독서의 즐거움을 제대로 맛 본 지가 언제였더라. 다 떠나 그 맛을 다시금 경험하게 해준 역할만으로도  레드 퀸에게 박수를.


누군가는 장미를 가장 좋아하고 누군가는 튤립을 제일 사랑한다. 그렇지만 장미와 튤립 둘 모두 저마다의 가치와 미를 가진 아름다운 존재이지 않나.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최고가 될 수도, 누군가에겐 심드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쪼록 많은 독자와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나름의 가치가 분명한 책이니까. 2권 번역본은 언제쯤 나올까 조급한 기다림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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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조지 손더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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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겨울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완연한 봄이다. 깜짝 추위와 비와 맑은 날씨는 종잡을 수없이 이어지지만 어쨌거나, 여름의 입구 쪽으로 바짝 붙어서고 있는 요즘. 날이 풀리니 정신도 풀리고 몸 또한 늘어지니 눈꺼풀이 시도 때도 없이 제멋대로 감겨 고생이다. 몸과 정신의 모든 나사가 풀린 이때, 독서 라이프마저 엉망인지라 책을 붙들고 꾸벅 졸기를 여러번. 주로 장편 소설을 읽는 독서 편식 습관을 누르고 중단편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보다 호흡이 짧은 이야기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책의 탓이 아닌 마음가짐의 헤이함 때문이었으니 당연한 걸까. 어느 하나 고르기도 쉽지 않던 와중에 때마침 이 책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조지 손더스. 국내엔 처음 소개되는 작가지만 이미 자국에선 실력을 인정 받아 ‘작가들의 작가’, ‘슈퍼히어로’라는 타이틀까지 얻으며 문단과 언론의 극찬 속에 우뚝 선 인물이었다. 특히 2013년에 발간된 ‘12월 10일’ 단편집으로 큰 호평을 받았단다. 대체 어떤 글을 썼길래 이렇게 다양한 수식어를 달고 인정받는 거야? 조금은 못된 심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어디 한번 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에서 극찬한 최고의 작품!’ ‘○○주 동안 1위를 석권한 베스트셀러’ 와 같은 홍보 타이틀에 혹해 접했다 실망했던 경험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디 읽고 난 후에 나도 그들과 같이 작가를 찬양할 수 있길!

 

엄청난 호평을 받는 작가의 처음 접하는 작품, 분위기 있는 표지, “12월 10일”이라는 의미와 의도를 알 수 없는 제목까지. 호기심을 동하기엔 충분한 조건들이다. (참고로 “12월 10일”은 책 마지막에 실린 단편과 동명의 타이틀이다) 유달리 읽는 속도가 느린 달팽이 독자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붙어 며칠 만에 다 읽었다. 그리고나서의 감상평은 “조지 손더스 다음 작품은 언제 나와요?”

영화든 책이든 간에 웬만하면 장점을 짚어주려고 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굳이 애써 그럴 필요도 없다. 그냥 그 자체로 재미있고, 흥미롭고, 장점이 가득하니까. 사람마다 호불호야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론 근래 읽은 책 중에서 “12월10일”이 제일 재밌었다. 이 독창적인 독특함이라니. (의식이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듯한 인물들의 생각과 대화말이 종종 등장해 흐름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부분을 잘 씹어 이해해야 한다는 것 정도가 주의할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읽자마자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첫 수록작 ‘승리의 질주’ 부터 마지막 수록작인 ‘12월 10일’까지, 수록된 10편의 단편들은 분량의 적고 많음에 상관없이 제각각의 임팩트와 힘을 잃지 않는 보석같은 작품들이다. ‘막대(sticks)’와 같이 한쪽 반 짧은 분량의 단편 또한 마찬가지.

 

 

 

혹시 기묘한 이야기나 환상특급(twilight zone)이라는 드라마 작품들을 아시는지. 읽는 내내 저들을 보는 기분과 비슷했다. 기묘함과 독특함. 때론 SF공상과학 소설같은 이야기는 판타지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서늘함을 선사한다. 소재와 내용 전개에 있어 한계를 두지 않아 현실적인 면과 비현실적인 면이 뒤섞여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것.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어딘가 이상하거나 부족한 결함이 있는 이들로, 평범과는 거리가 있다. 낯선 이에게 의심없이 문을 여는 순진한 소녀부터 기이한 실험의 연구대상이 되는 범죄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 제 아이를 짐승처럼 나무에 매어 두는 여인, 진정한 죽음의 문앞에서야 삶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암 투병중인 자살 시도자까지, 쉽사리 공감하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그들에게 감정이입이 어렵지 않은데, 결국 그들이 겪는 상황과 감정이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특정 배경이나 사건은 다를지언정 그 안에서 겪는 고민, 고통, 슬픔, 우울, 깨달음 같은 감정들은 우리가 살아가며 매일 겪는 일들이지 않나.

‘기묘하고 공상과학 소설 같기도 한’ 조지 손더스의 작품들이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는 결국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와 그 삶에 대한 이야기다. 부조리한 현실과 삶의 면면들을 냉철하게 표현하지만 읽다보면 의도치않게 종종 웃음을 터뜨리게 되거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조지 손더스 작품의 가장 큰 매력. ‘블랙코미디의 결정판’이라고나 할까. 이런 그의 작품들을 이끄는 힘은 작가의 인간과 삶에 대한 다정하고 세밀한 통찰력 덕분일 거라 생각한다.

 

짧은 이야기를 읽은 후 ‘이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하게 하고, 또 다음 번엔 그 상상을 펼칠 여지조차 없이 그저 ‘멍’하게 만든다. 실로 10편의 글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상상하고 여운에 젖어 멍하기를 수차례. 그 와중에도 변함없이 생각한 바가 있으니, 이 단편집을 선두로 앞으로 꾸준히 그의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그것이다.

다음 작품의 발간 소식을 듣는 동시에 서점으로 달려갈 준비는 이미 첫 수록작 ‘승리의 질주’를 읽은 후부터 끝났다. 이렇게 설레는 기다림이 얼마만이던지! 아주 간만에 강렬하고 뒷맛 또한 깔끔한 맛있는 글을 삼킨 기분. 이 맛난 단편들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즐겁게 기다릴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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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뼈의 딸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
레이니 테일러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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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처럼 물결치는 파란 머리카락을 지닌 17세 소녀 카루는 평범한 학생 생활과 키메라(괴물)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 이중생활 중이다.

빼어난 재능을 가진 카루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환상적이고 독특한 생김새의 키메라-다정한 성품의 뱀 여인 이사, 역시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앵무새 부리와 인간의 눈을 한 야사리, 주체하기 힘든 긴 기린 목을 가진 트위가, '위시멍거'로 불리우며 소원 거래를 하는 거대의 양뿔을 지닌 브림스톤이다. 그들은 카루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를 거두어 길러준 가족들로, 분명히 실존하지만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존재들이다.

동물들의 이빨과 사람들의 치아를 두고 거래를 하는 브림스톤의 부름을 받아 거래에 나선 카루는 포털을 통해 모로코 마라케시로 향하고, 그곳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위협감을 느낀다. 몸을 사리던 와중에 드디어 마주한 범인은 다름 아닌 천사 아키바. 왠지 모를 끌림으로 그녀의 뒤를 쫓던 아키바는 카루의 손바닥에 새겨진 눈 모양의 함사스 문신을 보고 공격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적군인 키메라의 브림스톤과 관련된 자임을 알아채고 그랬던 것.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다 큰 상처를 얻고 겨우 도망친 카루는 그날밤, 브림스톤과의 약속을 어기고 절대 열어보면 안된다는 금단의 문을 열고 만다. 이를 알게 된 브림스톤은 격노해 약속을 어긴 죄로 만신창이인 카루를 인간세계로 쫓아내버린다. 다친 몸과 버려졌다는 비참함으로 절망에 빠진 그녀는 다시금 키메라 가족과 만날 날을 소망하지만, 얼마 못가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천사들이 미리 표시해두었던 포털들을 파괴하고 불태워 영영 그들과 만날 수 없게 된 것이다. 포털 파괴 전 브림스톤이 간신히 보내온 메세지(위시본)은 분명 그가 여전히 그녀를 아끼고 있다는 뜻이었기에 더 큰 슬픔을 주었고,마침내 카루는 복수를 결심한다. 

하지만 다시 만나게 된 아키바와 카루는 서로가 분명한 적군이자 원수임을 알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껴 혼란에 빠진다. 자신이 '무엇'인지 궁금한 카루와 키메라인 그녀를 두고 마음이 흔들리는 아키바. 둘 사이에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과 끊임없이 흐르는 이 감정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 결코 끊어지지 않을, 인연의 끈이 있음이 분명했다. 

 

 

(이 내용이 중후반까지의 이야기다. 뒤에 그 '인연의 끈'이 무엇인지 설명되지만 1권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기 때문에 줄이기로... 직접 읽을 때의 재미가 조금 반감될 거 같아서.)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세계적 열풍과 대단한 성공 이후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온 비슷한 느낌의 판타지 로맨스형 YA소설들 때문일까. 사실 독자로서 이 이야기의 소재가 아주 신선한 편은 아니었다. 인간 또는 뱀파이어, 늑대인간, 추락천사, 불사자 등등. 다른 종족 간의 비극적이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따른 기쁨과 슬픔이 그 많은 책들의 주제였으니 어찌 익숙해지지 않을 수 있겠나. 게다가 원수간의 사랑에선 '로미오와 줄리엣'이, 각종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조합으로 이뤄진 키메라의 외모와 음울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는 영화 '판의 미로'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릴로지의 서막을 연 이 책이 꽤 흥미롭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펜을 쥐는 이가 누군가에 따라 낙서 또는 작품이 나오고, 같은 재료를 두고도 어떤 이가 조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의 음식이 나오는 법이다. 저자인 레이니 테일러는 쉽게 수렁에 빠질 법한 익숙한 재료를 가지고도 기존의 것들과는 좀 더 색다른 맛을 내는 완성품을 내놓았다.

 

 

그 색다른 맛이자 독자로서 마음에 들었던 점들을 몇 가지 꼽자면.

일단은 여주인공이 로맨스물에 흔히 등장하는 '공주형'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거다. 유리같이 연약하고 누군가 보호해줘야만 하는 판에 박힌 이미지 대신, 카루는 결단있게 움직일 줄 아는 소녀다. 거침없이 뛰어들어 스스로 쟁취해야 함을 아는 캐릭터는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다. 때문에 캐릭터 성격답게 로맨스가 차지하는 비율 만큼이나 카루의 성장담 또한 적지 않게 다뤄지고 있는데, 로맨스로 인한 주인공의 성장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이 나아감으로서 사랑 또한 깨닫는 편에 가깝다.

또 하나는, 이야기가 남녀 주인공의 애달픈 사랑에만 국한되어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 그저 '거들어주고 동조해주는' 역할로 소모되기 쉬운 조연의 캐릭터들 모두 각자의 뛰어난 매력을 지니고 있어 극에서 살아 숨쉬는데다, 인간계와 다른 세계를 오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 스케일이 작지 않은 편이다. 때문에 특정 인물 위주의 전개나, 한 가지 주제만을 심도있게 다를 때에 생길 수 있는 단점인 '더 이상 흥미롭지 않고 질리는'현상이 보다 덜하다.

 

 

프라하를 배경으로 파란색 필터를 낀 채 세상을 보는 듯한 분위를 주는 이야기는 잔잔히 흐르는 초중반을 지나서야 제 힘을 발휘한다. 뒤로 갈수록 흡입력이 높아지는 편이어서 개인에 따라 처음엔 지루하다 느낄 수도 있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허나, 촘촘하게 세워진 설정들과 세심한 감정 표현의 묘사가 뒤로 갈수록 내용에 몰입할 수 있게끔 큰 도움을 준다. 이 점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인 부분은 남녀 주인공 사이의 '인연의 끈'이 무엇인지 설명되는 순간. 천사인 아키바와 키메라의 심부름꾼인 인간 소녀 카루가 드디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인정하며 다가서는 부분이다. 그 외에 주조연들이 감정을 주고 받는 순간 역시 마찬가지.



"때론 기쁨보다 고통의 힘이 더 강렬하다는 것.

우주를 통해 무언가 받을 때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소원빌기(마법)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이 필히 재료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

소원과 같은 마법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건 결국 희망이라는 것.

그 희망이란 건 상징적인 물건을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고 존재하며 힘을 발한다는 것."

 

 

이야기 속에서 카루가 브림스톤의 가르침과 갖은 경험들을 통해 마침내 깨닫는 내용들이다. 재밌게도 판타지가 아닌 책 밖의 세상, 우리의 현실에서도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이야기들 아닌가.뻔하고 교과서적인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게 바로 책 읽기의 묘미이지 않을까 싶다. 아는 내용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다시금 스스로에게 일깨우는 것.

히트작으로 팬 베이스가 두터운 이 시리즈는 총 3권으로 영화화 작업 중이란다. 좋은 원작에 비해 실망스러운 영화가 적지 않은 편인데 아무쪼록 무사히 잘 나와 읽는 재미만큼이나 보는 재미 또한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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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세계를 스칠 때 - 정바비 산문집
정바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여름이다. 날이 갈수록 열기는 더해지고 끈적거리며, 몸과 정신은 한 없이 늘어지는 그런 시기. 

호흡 긴 장편소설에 푹 빠져 시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이번엔 에세이다. 비교적 호흡이 짧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끊어 읽기' 신공이 가능하단 장점이 아주 매력적인.

살던 곳을 훌쩍 떠나 타지에서의 새로운 환경과 맞닥뜨린 이후 속내를 읊던 여행 에세이와는 또다른 맛이었다. 

 

엠피에 언니네 이발관과 가을방학의 노래 몇 곡을 두고 종종 들으면서도 저자인 정바비, 그에 대해선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뮤지션이고 글을 쓴다' 정도. 그리고선 읽기 시작.

 

읽고나서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위트와 재치가 있다는 것.

굳이 꼽자면 '생일과 하이힐'이나 '불편의점의 점장이 되고 싶다'와 같은 부분이다. 분명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글로 써내려면 이상하리만치 풀리지 않는 경험이 있을 거다. 이런 식으로, 비슷한 식의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센스 있게 말로 풀어내지 못하던 감성과 이성, 그 어딘가의 것들을 참 흥미롭게 '잘' 풀어냈다.

우리 대부분은 위트와 재치를 사랑하고, 보다 꾸밈 적은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는가. 이 짧지만 속마다 나름의 뼈 있는 여러개의 글들이 마음에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중 '루비치 터치'를 두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에른스트 루비치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아우라를 뜻한단다.

혹자가 이를 두고 '겉은 바삭하지만 씹으면 보드랍고 달콤한 슈크림빵'에 비유했다는데, 읽다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끝내주는 표현이었다. 그리고선 드는 생각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그의 글 또한 루비치 터치같은, 정바비식 터치가 존재하며 비슷한 느낌으로 저만의 아우라가 있다는 거다. 

돌직구처럼 느껴질 만큼 숨김 없지만 그 속에 고뇌 또한 존재하는 그의 문장들. 게다가 제 나름의 로맨틱도 존재하고.

그의 글들 또한 분명 '슈크림빵'과 닮아 있었다.

 

이 외에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부분은 역시 이성, 사랑, 성과 같은 이야기를 다뤘던 부분이다.

이성간의 감정적 연계, 차이는 물론이고 섹슈얼한 방면에서 나름의 고찰까지 담겨 있다. 사람에 따라 '야한 이야기'로도 분류될 수 있는 이 솔직 담백한 구절들이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론 이런 주제가 대화중 '금기'로 치부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툭 까놓고 아무때나 논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만도 않은지라 거침없는 그의 문장을 읽을 때 참 신선했다.

 

그의 글은 온전히 동감하지 못하고, 아닌 것 같은 때에도 묘하게 수긍하게끔 하는 힘이 있다. 흔히들 '말려든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식의 과정이 읽는 내내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것이다.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진 않지만 스스럼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재주 또한 큰 매력이다. 

이 점들이 에세이의 (개인적으론) 최대 장점인 끊어 읽기 신공마저 무너뜨리고 줄기차게 읽게끔 한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그의 생각과 감성에 동의하는 건 그다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저 이야기하고, 나는 듣는 척 읽었다. 굳이 상대와 동화되지 않아도 충분히, 아니면 적당히 즐길 수 있는 게 에세이를 읽는다는 행위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적당한 온도와 제 특유의 속도로 쏟아지는 그의 생각과 말들은 '낯선 이와의 부담없는 진솔한 생각나눔'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싶다.

 

읽는 내내 그와 한껏 대화한 기분으로 마무리했지만 조만간 다시 또 읽게 될 것 같다.

손 닿는대로 아무 장이나 펼치고 이번엔 '끊어 읽기' 신공 또한 잊지 않으며 천천히 다시 볼 생각이다.

여름 휴가로 여행할 지인들한테 추천해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다. 

 

*그가 활동하는 그룹, 음악의 색깔을 기대하고 보기보단 그저 한 사람으로서의 '정바비'를 기대하고 보는 게 더 많은 만족과 재미를 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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