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세계를 스칠 때 - 정바비 산문집
정바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여름이다. 날이 갈수록 열기는 더해지고 끈적거리며, 몸과 정신은 한 없이 늘어지는 그런 시기. 

호흡 긴 장편소설에 푹 빠져 시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이번엔 에세이다. 비교적 호흡이 짧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끊어 읽기' 신공이 가능하단 장점이 아주 매력적인.

살던 곳을 훌쩍 떠나 타지에서의 새로운 환경과 맞닥뜨린 이후 속내를 읊던 여행 에세이와는 또다른 맛이었다. 

 

엠피에 언니네 이발관과 가을방학의 노래 몇 곡을 두고 종종 들으면서도 저자인 정바비, 그에 대해선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뮤지션이고 글을 쓴다' 정도. 그리고선 읽기 시작.

 

읽고나서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위트와 재치가 있다는 것.

굳이 꼽자면 '생일과 하이힐'이나 '불편의점의 점장이 되고 싶다'와 같은 부분이다. 분명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글로 써내려면 이상하리만치 풀리지 않는 경험이 있을 거다. 이런 식으로, 비슷한 식의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센스 있게 말로 풀어내지 못하던 감성과 이성, 그 어딘가의 것들을 참 흥미롭게 '잘' 풀어냈다.

우리 대부분은 위트와 재치를 사랑하고, 보다 꾸밈 적은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는가. 이 짧지만 속마다 나름의 뼈 있는 여러개의 글들이 마음에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중 '루비치 터치'를 두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에른스트 루비치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아우라를 뜻한단다.

혹자가 이를 두고 '겉은 바삭하지만 씹으면 보드랍고 달콤한 슈크림빵'에 비유했다는데, 읽다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끝내주는 표현이었다. 그리고선 드는 생각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그의 글 또한 루비치 터치같은, 정바비식 터치가 존재하며 비슷한 느낌으로 저만의 아우라가 있다는 거다. 

돌직구처럼 느껴질 만큼 숨김 없지만 그 속에 고뇌 또한 존재하는 그의 문장들. 게다가 제 나름의 로맨틱도 존재하고.

그의 글들 또한 분명 '슈크림빵'과 닮아 있었다.

 

이 외에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부분은 역시 이성, 사랑, 성과 같은 이야기를 다뤘던 부분이다.

이성간의 감정적 연계, 차이는 물론이고 섹슈얼한 방면에서 나름의 고찰까지 담겨 있다. 사람에 따라 '야한 이야기'로도 분류될 수 있는 이 솔직 담백한 구절들이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론 이런 주제가 대화중 '금기'로 치부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툭 까놓고 아무때나 논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만도 않은지라 거침없는 그의 문장을 읽을 때 참 신선했다.

 

그의 글은 온전히 동감하지 못하고, 아닌 것 같은 때에도 묘하게 수긍하게끔 하는 힘이 있다. 흔히들 '말려든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식의 과정이 읽는 내내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것이다.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진 않지만 스스럼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재주 또한 큰 매력이다. 

이 점들이 에세이의 (개인적으론) 최대 장점인 끊어 읽기 신공마저 무너뜨리고 줄기차게 읽게끔 한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그의 생각과 감성에 동의하는 건 그다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저 이야기하고, 나는 듣는 척 읽었다. 굳이 상대와 동화되지 않아도 충분히, 아니면 적당히 즐길 수 있는 게 에세이를 읽는다는 행위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적당한 온도와 제 특유의 속도로 쏟아지는 그의 생각과 말들은 '낯선 이와의 부담없는 진솔한 생각나눔'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싶다.

 

읽는 내내 그와 한껏 대화한 기분으로 마무리했지만 조만간 다시 또 읽게 될 것 같다.

손 닿는대로 아무 장이나 펼치고 이번엔 '끊어 읽기' 신공 또한 잊지 않으며 천천히 다시 볼 생각이다.

여름 휴가로 여행할 지인들한테 추천해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다. 

 

*그가 활동하는 그룹, 음악의 색깔을 기대하고 보기보단 그저 한 사람으로서의 '정바비'를 기대하고 보는 게 더 많은 만족과 재미를 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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