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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방석 목욕탕 소원저학년책 5
성주희 지음, 박현주 그림 / 소원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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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방석 목욕탕』은 제목만큼이나 유쾌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진심이 담겨 있다.
“긴장만 하면 나오는 방귀”라는 소소한 문제에서 시작되지만, 이야기는 점점 아이들의 불안, 체면, 자존감, 그리고 ‘용기’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주인공 반석이는 방귀 때문에 놀림을 받고, 친구의 잘못까지 대신 덮어쓸 만큼 마음이 여린 아이다. 여기에 ‘목욕탕 귀신’이라는 소문까지 더해지며, 반석이는 점점 움츠러든다. 하지만 이야기는 무섭거나 어둡게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방귀 블랙홀 방석, 방석 도깨비, 탕 속 물기둥 같은 엉뚱한 상상들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아이들의 ‘진짜 고민’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고민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긴장해서 나오는 방귀, 사소하게 들릴지 몰라도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인 스트레스일 수 있다. 성인은 쉽게 넘기는 일이지만, 아이들은 그 작고 반복되는 불편함 하나로 친구 관계나 수업 참여에까지 영향을 받는다. 『돈방석 목욕탕』은 그런 고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럴 수도 있어”라고 말해 주는 이야기다.


또한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반석이에게는 아빠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자, 다시 용기를 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감정의 문턱이기도 하다. 방귀로부터의 자유뿐 아니라, 반석이는 목욕탕을 다시 마주하며 자신의 상처와도 화해한다.
이는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일이 단순히 말을 전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꺼내보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성주희 작가는 이전 작품 『걱정을 없애 주는 마카롱』에서처럼, 이번에도 ‘고민’이라는 감정에 귀엽고 엉뚱한 옷을 입혀 우리 곁에 데려온다. 박현주 작가의 그림은 그 상상에 생생함과 따뜻함을 더한다. 특히 목욕탕의 습기, 수증기, 수건 냄새까지 떠오를 만큼 현실적인 디테일은 이야기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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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양장)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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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아한 거짓말』은 한 소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뒤늦은 이해와 후회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중학생 천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언니 만지와 엄마는 천지의 일기, 털실,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천지가 겪었던 고통과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따돌림이라는 익숙한 사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보다 더 깊이 다가오는 건 ‘무심한 말이 남긴 흔적’과 ‘몰랐다는 것의 책임’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정말 몰랐던 걸까?" 그리고 "몰랐다는 말로 모든 게 용서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가장 강하게 다가온 인물은 천지의 언니, 만지였다.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지만,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천지의 흔적을 좇는다. 무책임한 친구들의 말, 꿰매지 못한 엄마의 침묵, 자신이 놓쳤던 단서들을 마주하면서 만지는 성장한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며 자기 합리화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지는 그 감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책임지고 이해하려는 쪽을 택한다. 그 용기와 태도는 단지 유가족의 애도가 아니라, 삶을 향한 정직한 응답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말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한 마디가, 어떤 이에게는 하루를 망치고 삶을 짓누를 수 있다. 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볍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관계 안에서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남겼을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작가는 ‘용기’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흔히 용기라고 하면 누군가를 구하거나 무언가를 해내는 행위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소설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꺼내어 보여주는 일, 그리고 누군가의 속마음을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가 진짜 용기라고 말한다. 그것은 천지가 생전에 필요로 했던 것이자, 결국 만지가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아한 거짓말』은 단지 누군가의 죽음을 조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 무심코 외면했던 얼굴, 흘려보낸 말, 놓쳐버린 진심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은 흔적을 남기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 그래서 이 소설은 말한다.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하라고. 조금 더 진심으로 들어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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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반 솜사탕 소원저학년책 6
김진형 지음, 홍그림 그림 / 소원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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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각 남은 솜사탕을 두고 벌어진 소동이, 이렇게 깊은 여운을 줄 줄은 몰랐다. 《반반 솜사탕》은 그저 "누가 마지막 솜사탕을 먹게 될까?"라는 가벼운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점점 감정의 깊은 결을 따라가게 만든다.

솜사탕 하나를 두고 친구들이 다투는 장면은 얼핏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작은 다툼 안에 얼마나 다양한 감정과 성격의 차이가 얽혀 있는지 알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우정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을 어떻게 말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고람이, 토리, 두비. 세 친구는 참 다르다. 고람이는 자기주장이 강해서 화를 내기 쉽고, 토리는 옳고 그름이 확실해서 융통성이 없다. 두비는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늘 조용하다. 이 아이들의 모습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다름을 탓하지 않는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긴 갈등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는지, 서로의 표현 방식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를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말이 없던 두비가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고민을 말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말하지 못한 마음을 혼자 얼마나 많이 삼켰는지, 그 장면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용기’라는 건 꼭 큰일을 해내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작은 조각 하나를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걸 참 따뜻하고 부드럽게 보여준다.


홍그림 작가의 그림은 이 이야기에 딱 어울린다. 폭신폭신한 솜사탕처럼, 아이들의 감정을 말없이 감싸주는 그림들이다. 숲속 벼룩시장도 정말 생생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져서, 마치 책 속 세상으로 들어간 기분이 들 정도다.


《반반 솜사탕》은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친구와 마음을 나누는 건, 솜사탕을 나누는 것처럼 달콤한 일이야.”
그 말은, 어쩌면 아이들보다 우리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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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정원 - 회복
지은 지음, 한요 그림 / 나비날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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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떤 위로도 쉽사리 들어오지 않는 시기가 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마음은 뒤처지고, 아주 사소한 일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나날.
『그 남자의 정원』은 그런 시간 속에 있는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책이다.


주인공은 한때 소설을 쓰던 남자다.
지금은 번아웃과 육체적 부상, 가족의 부재, 연인의 이별 등 삶의 여러 파도에 휩쓸린 채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그의 일상에 제주도에 사는 동생이 구해준 ‘도우미 할머니’가 들어온다. 그리고 할머니는 말없이, 그러나 정성껏 베란다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 정원에서 피어나는 초록의 생명들, 그리고 그 생명을 바라보며 조금씩 되살아나는 주인공의 감각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그 변화는 눈에 띄게 크거나 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림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괜찮아지기를 바라지만, 이 책은 말한다.
“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정원은 단순히 식물이 자라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잊고 있던 감정이 다시 피어나고, 오래된 그리움이 온기를 되찾는 회복의 장소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그 베란다 정원에 머무는 ‘시간’이 우리 마음에도 옮겨온다.


책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 하나 있다.
“나는 회복하는 중이야. 너는 괜찮니?”

그 문장은 단지 주인공의 독백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조용한 안부 같았다.

마치 함께 걷자고 손을 내미는 듯한, 그런 초대처럼 느껴졌다.


『그 남자의 정원』은 소란스러운 위로 대신,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봐주는 조용한 시선의 책이다.
지금 우리 곁에, 위로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책을 건네보길 바란다.

천천히, 천천히, 다시 피어나는 삶의 온기를 함께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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