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양장)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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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아한 거짓말』은 한 소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뒤늦은 이해와 후회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중학생 천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언니 만지와 엄마는 천지의 일기, 털실,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천지가 겪었던 고통과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따돌림이라는 익숙한 사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보다 더 깊이 다가오는 건 ‘무심한 말이 남긴 흔적’과 ‘몰랐다는 것의 책임’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정말 몰랐던 걸까?" 그리고 "몰랐다는 말로 모든 게 용서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가장 강하게 다가온 인물은 천지의 언니, 만지였다.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지만,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천지의 흔적을 좇는다. 무책임한 친구들의 말, 꿰매지 못한 엄마의 침묵, 자신이 놓쳤던 단서들을 마주하면서 만지는 성장한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며 자기 합리화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지는 그 감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책임지고 이해하려는 쪽을 택한다. 그 용기와 태도는 단지 유가족의 애도가 아니라, 삶을 향한 정직한 응답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말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한 마디가, 어떤 이에게는 하루를 망치고 삶을 짓누를 수 있다. 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볍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관계 안에서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남겼을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작가는 ‘용기’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흔히 용기라고 하면 누군가를 구하거나 무언가를 해내는 행위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소설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꺼내어 보여주는 일, 그리고 누군가의 속마음을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가 진짜 용기라고 말한다. 그것은 천지가 생전에 필요로 했던 것이자, 결국 만지가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아한 거짓말』은 단지 누군가의 죽음을 조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 무심코 외면했던 얼굴, 흘려보낸 말, 놓쳐버린 진심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은 흔적을 남기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 그래서 이 소설은 말한다.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하라고. 조금 더 진심으로 들어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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