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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처음으로 알바라는 걸해서 내 손으로 돈을 벌었을 때, 20여 만원 남짓한 돈을 쥐고 가장 처음 간 곳이 속옷 가게였다. 나는 속옷 세트가 그렇게 비싼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 아빠 속옷을 사고 나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동생이 좋아하는 빵을 사들고 집으로 갔다. 두둑했던 지갑이 금세 비쩍 말라붙었지만 나는 그때 퍽 뿌듯했었다. ‘이야, 내가 이제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가만, - 돈을 벌었다. 속옷을 샀다. 빵을 샀다. - 이 중에 내가 한 ‘사람 구실’은 무엇이었을까? 가끔 그때 생각을 하는데 그때마다 아리송해 진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 내가 아는 A양. 아니, 그래 그냥 우리 언니 얘기다. 언니는 좋은 직장에 다닌다. 월급도 많이 받는다. 그 많은 월급으로 자기 차를 사고 아빠 차를 바꿔드렸다. 해마다 비싼 콘도를 예약해서 고모, 형부네까지 모두 모아 여름휴가를 간다. 내년에는 고모, 형부네까지 모두 모아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궁리중이다. 몇 년 전부터 얼마씩 적금을 부었다나 어쨌다나.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주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언니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10시에 귀가한다. 8시에 퇴근하는 날에는 좋다고 헤헤거리며 들어온다. 바쁜 시기에는 일주일 내내 12시 가까이 돼서야 집에 들어오기도 하더라. 나에게는 ‘언니,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해?’라고 물어볼 용기가 없다.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사람 구실’을 하고 사는 사람이니까.

 

동물원에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 해도 돼. 솔직히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 난 거의 없다고 봐.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내가 그랬잖아. 사는 게 코미디라고. 자, 한잔해. 어때, 여기 죽여주지? - 214쪽

 

대기업 출신 조풍년씨는 말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동물원에 왔다고. 공무원 시험만 5년째 준비했던 앤은 말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나도 묻고 싶다. 사람답게 산다는 건 어떤 건가요?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고된 건가요? 나는 아직 딸린 식구도 없고 부양해야 할 만큼 부모님이 연로하시지도 않은데도 그런 생각한다. 내 어깨에는 이미 무언가가 지워져 있다고. 그리고 그 무언가는 내가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으며 살아가면서 더욱 비대해져서 나를 질식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 그래서인지 차라리 세렝게티 동물원은 낙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사람답게 사는 일이 무거워지고 괴로워지면 차라리 전부 훌훌 털어버리고 콩고에라도 떠나버릴 수도 있으니까. 뭐 선택하는 것은 동물 탈을 쓰고 앉아있는 ‘사람’의 몫이지만.

 

사실 아주 황당한 이야기다. 말 그대로 코미디. 고작 삼십대 중반에 백수가 된 가장 영수는 마늘 까기부터 시작해서 학알 접기, 종이학 접기, 곰 인형 눈 붙이기 등의 온갖 부업으로 생활을 연명한다. 그러다 부업 브로커 돼지엄마의 소개로 나름의 피나는 노력을 더해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공무원이나 다름없는 일자리, 세렝게티 동물원에 마운틴고릴라로 취업한다. 세렝게티 동물원에는 고릴라가 네 마리나 있다는데, 12미터 높이의 철제골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부저를 누르지 않으면 성과급이 나오지 않는다나 뭐라나. 그래서 세렝게티 동물원의 고릴라들은 바나나를 씹으며 12미터 높이의 철제골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열심히 오르내린다는 고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고릴라’였다는 여행사 직원이 나타나 야생으로 돌아간 탈 쓴 동물원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남파간첩 ‘고릴라’ 만딩고는 결국 그의 꼬드김(?)에 넘어가 콩고로 떠나고, 후에 그가 걸어온 전화에 동물원에서 ‘동물’로 일하며 살아가고 있던 이들이 동요하게 되고, 하나 둘씩 동물원의 동물들이 사라지기에 이른다.

 

만딩고가 그렇게 떠나고, 조풍년씨도 앤도 각자의 이유로 고릴라 탈을 벗어던지고 동물원을 나선다. 우리의 주인공 영수는 홀로 우리 안에 남아 ‘우후우후’ 포효하며 가슴을 두드리고 관람객이 던져주는 바나나를 씹으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오른다.

 

세렝게티 동물원’에는 마운틴고릴라가 한 마리 있다. 한 마리뿐이라 좀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바나나를 던져줘보시라. 사양하지 않고 받아먹는다. 또 여러분은 1시간에 한 번씩 마운틴고릴라가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는 명장면도 보실 수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기어오르는 마운틴고릴라의 모습은 여러분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면을 선사할 것이다. 지금 그런 마운틴고릴라 한 마리가 ‘세렝게티 동물원’에서 여러분을 기다린다. - 343쪽

 

어떤 이는 우리를 떠나고, 어떤 이는 우리에 남았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릴라 탈을 벗어던지고 콩고로, 새로운 직장으로, 동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이나 여전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내리는 사람이나 누구하나 말해주지 않는다. 왠지 그들은 이전보다는 조금 더 ‘행복’해 지지 않을까 하는 묘한 여운을 남기며 이야기는 끝이 나 버린다. 사실은 너무 어려운 질문이 아닌가. 사람 구실이라는 것, 사람답게 산다는 것 말이다. 딱히 답을 구하면서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금 허한 마음이 들더라. 사실 이 책은 저자가 아주 작정하고 웃기려고 쓴 글이다. 그래서 생각 없이 읽으며 킬킬 댔는데 마지막장에 가니까 정말 울컥 하더라. 언니야 사람답게, 살고 있어? 나는 사람답게 살고 있는 건가? 사람답게 살고 계신가요? 어쩌면 누군가는 여전히 우리 안에 있고, 누군가는 뛰쳐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허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던 마무리는 조금 성에 안차지만 나를 웃기고 센티하게 만들어버린 작가의 글빨은 정말 인정!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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