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톺아보기는 생소한 말이였다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이였다  목차도 경기장으로 표현하는 독특함도 보였다  여덟 경기장으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어 속 숨은 뜻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미혼,청년,요즘 애들,정상 등을 정의하고 우리 일상 언어로 쓰이고 있는 현실에 깊은 생각을 하게 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제일 관심이 가는 것은 대통령 각하와 대통령님이었다  조선 후기와 근대에 이르러 대한제국은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기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일본에 의해 조선으로 개명되고  일본의 속국으로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일본 메이지유신 이후 고급 관료와 고위 군인에게 각하라는 칭호를 붙였다   조선총독은 일본 왕이 임명한 고급관료에 불과했기에 각하라는 불렸다  이 시기 미국과 프랑스에서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칭호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각하라고 불리게 되었다   조선에서는 국회의장, 대법원장에게도 각하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해방이 되고도 각하라는 호칭을 썼지만 시기마다 각하의 칭호에 대한 혼선이 생겼다   2대 대통령때 대통령에게만 각하라는 칭호가 허용되기도 하고 반드시 써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조선시대 양반으로 불리던 호칭이 근대에 와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표현이 아닌 각하라는 말 자체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면 절대로 부활해서는 안 된다   언어는 한 번 뱉으면 주워 담기가 힘든 만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각하라는 말 하나에 숨어 잇는 봉건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심각성이 적나라하게 담겨져 있다

 마치 조선시대 여인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머리에 가채를 더 크게 하다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도 있었던 것처럼 곁모습과 사회적인 채면을 우선시 해서는 절대 안 될것이다    지난 정권때 연예인의 입에서 각하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을때 정말 당혹스러웠다  촛불 대통령의 현 정권처럼 국민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 대신 수고하고 희생하는 자리인 것이다  대통령은 크게 거느리고 다스리는 사람이여야 한다  국민들을 보살피고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인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는 공자님처럼 백성을 품어야 한다  애민사상을 실천한 세종대왕처럼 국민의 고통을 덜어 주어야 한다  비민주적 표현에서 우리 사회는 많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요즘 어른다운 어른들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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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ddla 2018-11-27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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