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구 삼촌 산하작은아이들 18
권정생 지음, 허구 그림 / 산하 / 2009년 6월
구판절판


딸 아이와 제가 같이 좋아하는 어린이 동화작가 두 분이 있습니다.
고정욱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그분들 입니다. 이유를 말하자면 그 분들의 글은 소외받고 관심받지 못하는 존재들의 귀함을 조용히 알려 주기 때문이죠.

<강아지똥><비나리 달이네 집><몽실언니>등으로 깊은 울림을 전해 주신 권정생 선생님의 <용구 삼촌>을 며칠전에 읽었습니다. 이미 소개된 글이지만 저와 아이는 처음 접하는 글이라 그 설렘이 컸습니다.


어린 조카인 주인공 '나'를 통해 보여지는 용구 삼촌은 표현하자면 '정상적인 발달'을 하지 못했습니다.
'겨우 밥을 먹고, 뒷간에 가서 똥 누고 고양이처럼 입언저리밖에 씻을 줄 모르는 용구 삼촌' (용구 삼촌 13쪽 9~10줄),
서른살이 넘었지만 건넛집 다섯살배기 영미보다도 못한 그 용구 삼촌이 어느날 소와 함께 나가 해진 저녁에 소만 들어오는 일이 생깁니다.
용구 삼촌을 찾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나서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 '나'의 삼촌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쏟아집니다.
두 길이 넘는 못둑을 헤매며 혹시 물에 빠지지는 않았을까 싶어 두려운 마음이 들고 양지산 골짜기를 헤매며 살아만 있어달라고 울며 기도하는 어린 주인공'나'를 통해 가족의 끈끈한 사랑를 흠뻑 느끼게 됩니다.

벙어리처럼 말도 없고 좋은 것은 언제나 조카들에게 주고 스스로 낮은 곳을 찾는 용구 삼촌을 주인공 '나'는 바보라서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용구 삼촌 22쪽 6~9줄)고 말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찾은 바보 용구 삼촌은 다복솔 나무 밑에 웅크리고 토끼와 함께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주인공 '나'는 허탈하고 원망스럽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용구 삼촌을 껴안고 흐느껴 울고 말지요.

짧은 단편 동화 하나를 읽고 고백성사후의 죄 사함을 받은 것같은 마음이 들었다면 심한 비약일까요. 세상 근심, 저를 찾는 사람들의 걱정은 제 일이 아니라는 듯 초월하여 토끼마저 편안하게 함꼐 할 수 있는 평화 그 자체의 용구 삼촌은 별아기처럼 이 세상에 잠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한동안 눈을 감았더랬습니다. 짧은 글인데 그 안에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먹먹함이 있었거든요. '아, 이것이 글이구나.' 세상에서 가장 낮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혜안을 가르쳐주시는 권정생 선생님의 글은 어두운 곳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호롱불 같습니다.
어쩐지 착해지고 싶은 밤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