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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방귀 ㅣ 네버랜드 우리 옛이야기 30
이상교 지음, 나현정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4월
평점 :
방귀쟁이 며느리로 알려진 우리 이야기가 <며느리 방귀>로 다시 태어나 우리 곁에 왔습니다.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옛이야기 서른번째 이야기입니다. 잘 알려진 이상교님이 글을 다시 쓰셨네요.

제 머릿속에 이 이야기는 엄청나게 쎈 방귀를 뀌는 며느리라는 재미있는 내용으로 남아 있습니다. 갓 시집온 수줍음 많은 며느리에게 방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지요. 그 상반되는 두 이미지에서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이미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전부터 웃음을 짓게 됩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했던가요. 며느리의 고충도 한갓 귀여운 애교 정도로 헤아린 시아버지는 넓은 아량으로 며느리의 방귀를 허락합니다만, 그것이 보통 여염집 아낙의 그것과는 절대 비교 불가의 것이었으니 한마디로 괴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온 집안을 들었다 놓은 대단한 방귀를 뀌는 며느리는 급기야 소박을 맞고 친정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지요. 며느리와 시아버지는 길을 나서고 고된 길에 만난 배나무는 약올리듯 시아버지를 유혹합니다. 방귀 한 번 뀐 죄밖에 없는 착한 며느리는 그 죄가 되었던 방귀로 배를 떨어뜨려 시아버님의 갈증을 해갈시킵니다. 꿀처럼 달게 배를 잡으신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방귀가 처음으로 기특해지지요. 아이러니하게 며느리는 다시 방귀를 뀌어 왔던 길을 되돌아 가게 됩니다.
책을 읽어주니 우리 아이들은 정말 즐거워합니다. 역시 며느리와 방귀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주면서 희극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풍풍, 방방, 뿌르르릉, 피식피식, 삐이익 등의 의성어는 며느리의 방귀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그림도 참 예뻐서 첫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겉표지 사각을 둘러싼 모란꽃이 프레임처럼 며느리를 깜싸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며느리는 활짝 핀 모란꽃으로 표현되고 있으니 내용과도 잘 어울립니다. 며느리의 기다랗게 찧어진 눈과 선명한 인중, 도톰한 입술은 우리네 미인도를 연상케 하면서도 복스러움을 담아냅니다. 요렇게 참한 며느리가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꽉 쥐면서 방귀를 뀌는 장면과 게다가 날아가는 집안 문을 부여잡은 가족들의 생생한 표정에선 아이들은 물론 저까지도 눌렀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며느리의 이불이며 한복 치마, 굽이 굽이 그려진 산 봉우리들과 격자 무늬 방문속에 숨어 있는 우리 문양도 그냥 넘기기엔 아쉬운 예쁜 그림입니다. 내용에 맞는 해학과 우리것의 아름다움이 잘 살아있습니다.
* * 그러나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된 어른인 저에게는 어릴적엔 보이지 않던 이면이 보입니다. 며느리와 방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 이것이 며느리의 생활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와도 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비약일까요. 시댁과 이웃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복덩이로 불리면서 며느리는 점점 자신의 평범함을 감추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동네에서 칭송받는 며느리에게 방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였을거구요.
* * * 이 이야기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후덕한 며느리라는 칭송에 걸맞는 체면과 며느리들의 감추어진 고된 생활을 하소연 할 길 없었던 옛 여자들의 억눌린 감정의 표출이 바로 집도 날려버릴 파워 있는 방귀입니다. 냄새나고 쎈 방귀를 시원하게 한 판 뀌는 것으로 시댁을 들었다 놓으면서 쌓였던 속상함과 고민을 날려보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어려움속에서도 작은 즐거움으로 위로 받을 줄 알았던 지혜가 엿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