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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쟁이 김건우
고정욱 지음, 소윤경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장 자끄 상페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처음 나왔을때 달려가 구입해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숨기고 싶은 모습이 사소한 일에도 빨개지고 마는 제 얼굴이었거든요. 사춘기 시절 어느 순간부터 얼굴이 빨개지더니 나중엔 성격마저 소심하게 변하더라고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충격을 하나씩 맛보며 마음도 단련이 되는건지 지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사실 요즘도 당황스러운 일을 마주할적마다 가끔씩 얼굴이 빨개지곤 합니다. 그냥 ’이게 나지’라는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요. 대인공포증, 사회공포증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꽤나 고역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건우가 단순히 책속의 등장인물로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저를 보는것 같아서 마음이 진심으로 아팠으니까요. 지금의 건우보다 더 어린 시절 겪은 작은 일이 건우에게는 참 아픈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했나요. 한 친구의 시샘에 건우는 마음을 다치고 힘겨운 생활을 합니다. 작은 몸으로 일상과 섞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스러움까지 느끼게 했습니다. 머릿속에, 마음속에 가득고인 말을 시원스럽게 내뱉지 못하는 답답함, 그런 자신의 모습에 풀이죽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함은 건우처럼 아직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어른들에게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잖아요. 다행히 건우의 곁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 따뜻한 아빠, 사려깊고 강한 엄마. 모두가 나서서 건우의 변화를 도와줍니다. 건우는 병원에서 상담 치료를 받고, 웅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죠. 친구 희재의 응원으로 학예회 오디션도 참여해보고 웅변 연습도 열심히 해요.
그런데 어느날 조금씩 나아지던 건우에게 다시 움츠러들게 하는 일이 생깁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살던 아파트를 팔고 반지하 연립으로 이사를 가게 되요. 게다가 건우의 소심함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할때 건우에게 어려움을 안긴 어릴적 친구 민욱이와 다시 만나게 됩니다. 건우는 이래저래 다시 힘들어집니다. 그런데요. 위기가 기회가 된걸까요. 건우는 어려움속에서 많은 걸 배웁니다.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갖고 있던 소중한 장난감을 버려야 했는데 건우는 아끼는 장난감을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갈무리하고 과감하게 버립니다. 그러고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어떤 용기가 생기는걸 느낍니다. 전 건우의 이 마음이 정말로 가슴에 콕 박혔어요. 아끼는걸 버릴 수 있는 용기. 그건 떨쳐버릴수 있는 용기라고 바꿔 말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소심했던 건우가 껍질을 벗고 한단계 성장하는 모습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더불어 고개 숙이고 작아지게 만드는 민욱이의 아픈 사연을 알게 되면서 두 친구는 용서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친구로 발전하게 되죠. 아프고 지친 건우는 용기와 용서와 격려를 배우면서 시나브로 강해집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서, 엄마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서 웅변대회에 참여하는 용기를 몸소 보여줍니다. 누구도 믿지 못했지만 건우의 변화는 그 만큼의 기쁨과 놀라움을 주는 일이였지요. 용기와 격려를 한껏 받으며 웅변대회에 나간 건우. 같은 반 인성이의 웅변하는 모습에 한 순간 용기가 꺾이지만 진심을 담아 외칩니다. 자신의 소심한 모습을 그 많은 청중 앞에서 고백하는 것으로요. 소심했던 건우에게 이 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던 적이 있을까요. 건우는........아! 건우가 제 옆에 있었다면 있는 힘껏 끌어안아 주고 싶던 순간이었습니다. 비로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건우에게 박수를 보내는 순간이기도 했고요.
고정욱 선생님은 건우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세요. 아픔을, 힘듬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노력을요.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보여주기 싫은, 마음을 찌르는 가시 하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우에게는 그 가시가 소심함의 탈을 쓴 사회공포증이었지요. 그 가시를 뽑아낼 적에는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가시를 뽑아내는 건 온전히 본인의 몫입니다. 아픔과 고통을 감수하고 가시를 뽑아내느냐, 매번 찔리며 피를 흘리는 고통을 감수하느냐 또한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엔 용기와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다를 뿐이고요. 저는 어른도 해내기 힘든 일을 마치고 환히 웃는 건우가 그래서 정말 예쁩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예쁩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절대로 그럴리 없는데 저절로 아물기를 기다리는 겁쟁이 아줌마는 건우가 진심으로 많이 부러웠습니다. 벅찬 기쁨으로 건우에게 한없는 칭찬과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