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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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 전에 일본 문호들을 캐릭터화하여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문호 스트레이 독스'가 한창 인기였을 무렵, 그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던 내 친구 몇명이 신나서 나에게 인간 실격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학생 때였으니 아마 길어봤자 2년 전 일일 것이다.(나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다) 당시에는 아무런 흥미도 생기지 않았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해 학업 스트레스라는 것에 정통으로 맞아버린 지금, 갑자기 인간 실격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다 읽고 나면 삶에 희망이라고는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는 평을 받는 책이기에 꼭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책이 반대로 힘이 되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간 실격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인간의 나약함을 훌륭하게 표현해낸 작품이라는 평과, 변명으로 가득찬 책이라는 평이다. 내 감상은 전자에 속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되려 비평을 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궁금해졌다.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고 100% 행복으로 가득찬 사람은 없을 텐데 왜 인간 실격에 공감하지 못했을까?


  주인공 오바 요조에게 완전히 녹아들기 위해서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우리가 인간 실격에서 읽어내야 하는 것은 요조의 정신적인 고통이지 무언가 인생에 도움이 되는 교훈이 아니다. 확실히 그의 행동은 윤리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아픔만은 불완전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안쓰러운 마음이 사라지지를 않았고, 기승전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손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빨리 요조의 남은 인생을 보고 싶고, 그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랐다. 이 책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보통 인간 실격에 대해 논할 때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라는 문장을 가장 먼저 입에 담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 마음을 깊고 길게 울린 것은 마지막 문장이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오랫동안 그 문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저 그 문장을 계속해서 쳐다보면서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여운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자이라는 인간에 대한 평가는 좋게 내리기 힘들고, 그런 그의 인생을 기반으로 써낸 작품이기에 호평을 내리기 조심스럽지만 오로지 작품성만을 고려하였을 때 이 책은 훌륭한 책이다. 유명한 작가의 책이라는 사실에 색안경을 끼고 무조건 좋다고 칭송하는 게 아니냐,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배제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호불호가 갈리는 책이니 만큼 아무나 붙잡고 읽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으나 한번쯤 죽을 만큼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책을 펼쳐보기를. 어쭙잖은 위로의 말보다 삶의 고통이 담긴 책 한 권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훌륭한 위로의 한 마디였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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