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 A Peta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원작의 문체와 시점 변화를 영화에서는 어떻게 처리했나?

   원작의 문체 : 광주민중항쟁이란 거대한 주제를 한 미친 소녀의 내면 독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서정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섬세한 문체는 일면 거대한 서사를 표현하는 것으로는 부적절해 보인다. 살육의 현장을 낱낱이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실존의 문제에 더 치중한 듯도 하다. 이런 낯설음으로 독자들과의 간격 좁히기에는 실패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상징과 치밀한 문체로 소설의 형식미학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독자들은 소녀의 내면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어차피 살육의 현장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조각그림을 맞추듯, 독자들의 능동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원작의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소녀의 내면 시점, 우리들의 시점이 혼재되어 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독자들에게 소녀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독려하고 있다. ‘우리들 시점’은 그것을 통해 역사적 비극을 바라보게 하고, 그것을 추적하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여야 함을 일깨운다. ‘소녀의 시점’에서는 자신을 미치게 하고 계속해서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한다.

  영화의 문체 : 영화는 시종일관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광주항쟁을 보여준다. 이 기법은 광주의 상처가 영화 속의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강조하고 있다. 화면처리도 독특하다. 영화의 주인공인 소녀의 ‘지금’과 광주의 ‘그날’은 각각 칼라와 흑백으로 구분되어, 미친 소녀의 파편화된 의식처럼 자주 교차한다. 또한 이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소녀의 꿈은 에니메이션 기법으로 처리하여 그 불가해함을 강하게 나타내었다. 

  영화의 시점 : 원작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장씨와 소녀의 서사. 우리들의 서사. 소녀의 내면에 존재하는 개인적 문제     


 절름발이 사내 ‘장’의 캐릭터 분석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 ‘장’은 절름발이로 나온다. 이는 소녀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설정인 듯하다. 장은 소녀의 아픔과는 다르지만 그 나름으로 아픔이 많은 생을 견뎌온 것 같다. 미쳐버린 소녀를 보며 장은 차마 미쳐버리지도 못하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그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거울처럼 자기의 아픔을 낱낱이 비추는 소녀를 폭행하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소녀의 내력을 제 나름으로 짐작하게 된 장은 결국 소녀에게 따뜻하게 대하는데,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으로 볼 수도 있겠다. 특히 김 오르는 물에 소녀를 씻기는 장면에서 그런 점은 두드러진다. 너무 거창하고 멀리 나갔는지는 모르나, 세례를 주고받는 종교의식과도 같은 느낌을 나는 받았다.

영화에 나타난 아이러니와 그 효과

  국기 강하식 : 저녁 6시에 맞춰 국기강하식이 진행되고 ‘국기에 대한 맹세’가 확성기에서 흘러나온다. 시장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 선 채 애국심을 다지고. 소녀는 사람들 사이를 무표정하게 뚫고 간다. 국기를 내리는 시간을 정해 놓고, 국민에게 일제히 애국심을 표하는 몸짓을 하도록 정한 국가와 그것에 길들여진 국민들의 엄숙한 표정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국가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미쳐버린 소녀의 가로질러가는 행동에 의해 국가가 통째로 부정된다.

  석가 탄신일 : 무장한 군인들이 비무장한 국민들을 무차별로 난타하는 광주의 금남로에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찢겨져서 날린다. 살육의 현장이 되어버린 곳에 자비로움과 살생을 금하는 부처의 탄신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날리는 것은 극명하게 대비되며 살육의 현장을 더욱 비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버스 광고 문구 : ‘80만의 질서 활기찬 광주’라는 버스 광고판의 문구가 눈에 띈다. 무질서하고 무법천지로 변해버린 아비규환의 광주가 더욱 강조된다.

  간첩 신고소 : 시장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소녀를 주시하는 장이 서 있는 건물 벽에 ‘간첩 신고소’라는 패가 붙어 있다. 노동자들의 대화 중 광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국의 간첩이 모여 난동을 부렸다는 대목이 나오고, ‘자네들 빨갱이 아니여’ 라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국가가 거짓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광주 오월’을 대하는 소설가와 감독의 태도에 관해


  소설가 최윤 : 역사를 소재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그 역사적 사건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에 역사의 중심에서 비껴서 있는 인물들의 내면에 역사적 의미가 깊이 새겨지는 방식을 통해 역사 속에 처한 인간의 내면 변화를 정밀하게 그려냈다. 이 같은 역사와 인간의 우회적인 결합방식은 형상화의 힘을 얻어 역사적 사실의 직접적인 재현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역사의 본질적인 측면을 밝혀준다. 역사에 대한 간접적인 형상화를 거치면서 역사적 사실은 인간 본연의 내면문제로 귀결된다. 역사라는 외부세계의 체험은 억압과 고통의 역사라는 시대적 의미를 넘어서서 한 개인으로서 가지는 존재론적 문제로 심화된다.

  감독 장선우 : 원작자와 달리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사회 고발을 하고 있다. 5월 광주 항쟁의 기록물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삽입하고, 소녀가 강간당하는 장면에 군복을 클로즈업하는 따위의 장치로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국가와 당대 사회에 만연해 있던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맹렬하게 퍼붓는다. 이는 원작자가 프랑스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광주항쟁을 접한 것과 달리, 감독 장선우가 항쟁의 현장에 있었으며 운동권 출신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죄책감의 층위에 대하여 - 소녀, 사내 ‘장’, ‘우리’

  소녀 : 구멍 뚫린 엄마를 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덩이같이 뜨거운 엄마 손을, 자기 손을 꽉 잡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던 엄마의 팔을, 발로 짓뭉개고 도망친 것에 대한 죄책감. 어쩌면 엄마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자기가 그렇게 하면서 비겁하게 도망친 것 때문에 엄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결국 엄마는 자기가 죽였다는 죄책감. 개인이 개인에 대한 죄책감.

  사내 ‘장’ : 아픔을 견디다 못해 미쳐버린 소녀를 강간하고, 무시로 폭력을 가한 것에 대한 죄책감. 좀 더 따뜻하게 보살펴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죄책감. 사회의 개인에 대한 죄책감.(‘장’을 내세워서 장과 유사한 부류, 이를테면 소녀를 강간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죄의 층위를 드러냄)

  ‘우리’ : 친구에 대한 연민과 도리로 소녀를 찾아다니기는 하나 좀 더 적극적이지 못함에 대한 죄책감. 지식인이나 정부기관, 국가가 약자인 개인에 대해 가져야 할 죄책감.

 ‘검은 휘장’의 상징성에 대해 

  견디지 못할 고통을 은폐시키려는 소녀의 마음이다. 자기의 죄책감과 그 죄책감을 불러일으킨 사건을 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고개 돌려버리려는 마음의 상징이다. 결국 검은 휘장으로도 어쩔 수 없어 소녀는 미쳐버린다. 하지만 미쳐서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걸음 더 나가 보면, 국가가 국민에게 거짓을 알리는 것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인부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광주 항쟁의 사실이 얼마나 왜곡된 채로 항간을 떠돌아다녔는지가 잘 드러난다. 광주 항쟁의 실상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검은 휘장 저 너머의 일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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