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조국이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고-
‘칸느’가 2006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선택하였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그것도 왕가위를 비롯한 심사위원단 아홉 명의 만장일치로. 나는 내 또래 중에서는 비교적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대해 남보다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비평가들의 영화평이나 미리 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서 읽어보고, 어떤 영화를 볼지를 결정할 때가 허다하다. 그런 터라 수상에 관한 기사를 읽는 순간 꼭 봐야 할 영화목록에 이 영화를 기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 하나, 제목을 보는 순간, 그것은 내 마음 안으로 바람에 떠밀린 듯 들어왔다. 아마도 그때 김수영의 ‘바람보다 풀이 먼저 눕는다’라는 구절이 내 속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러면서 보리밭 속에 뭔가가 숨어서 꿈틀거리는 듯, 내 속에서 호기심이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제목은 대단한 무엇의 은유이지 싶었다.
기다리던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끝끝내 이 도시의 휘황찬란한 개봉관에서는 개봉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참 다행하게도 딱 하나 있는 예술영화전용상영관에서 개봉을 하였다. 난방도 시원찮고 의자도 낡을대로 낡아 딱딱한 곳에서 말이다. 난 기꺼운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이전에도 봐야할 영화목록에 적어놓고 기다리다가 결국 보지 못한 영화가 여럿 있는데, ‘잭슨 폴락’도 그 중 하나다. 운이 좋아서 이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보기는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영화의 대중성과 예술성의 삐걱거리는 아귀를 보는 듯하다.
영화는 운명의 바람 앞에 흔들리는 두 형제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삶 중에서도 특히 신념과 그 신념에 따른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1920년 아일랜드, 젊은 의사 데이미언(킬리언 머피 Cillian Murphy)은 런던의 병원에 일자리를 얻지만, 영국군의 횡포에 친구 미하일이 죽는 사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이 사건은 이전까지 저항에 무관심했던 그가 저항군에 가담하는 동기가 된다. 결국 데이미언은 의사의 꿈을 포기하고. 그의 형 테디(패드레익 딜레이니 Padraic Delaney)가 이끄는 IRA(Irish Republican Army)에 가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다. 영국군의 무기를 탈취하는데 성공한 그들은 어느 날 내부자(크리스)의 밀고로 잡히게 되고, 형 테디는 뺀치로 손가락이 잘리는 호된 고문을 받는다. 이를 지켜본 아일랜드계의 보초병이 이들을 풀어주어, 그들은 그 보초병과 함께 탈출한다. 밀고자가 크리스임이 결국 밝혀지고, 밀고자를 단죄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데이미언은 크리스를 총살한다. 사실 그 둘은 오랜 고향의 선후배 사이이다. 의사였던 데이미언은 울면서 크리스의 심장에 정확히 총구를 겨누는데, 그때 그가 한 말이 “조국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거겠지”라는 것이다. 크리스는 자기가 단죄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또 받아들이는 듯했다. 홀로 계신 엄마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라는 데이미언을 향해 크리스는 말했다.
“엄마가 글을 읽지 못하므로 편지는 소용이 없어요. 대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세요.”
함께 앉아 얘기를 나누었던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겠다며 자기 가슴에 총구를 겨누는 데이미언에게 크리스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형, 무서워!”
마침내 그들이 염원하던 영국과의 평화조약이 체결된다. 그 와중에서 아일랜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혼란에 휩싸인다. 평화조약이 아일랜드의 반쪽(저항이 거센 남부)만 자치를 허용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다. 두 형제의 의견도 서로 엇갈린다. 우선 조약을 받아들이고,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자고 하는 형 테디에 반해 데이미언은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조약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투쟁을 계속하자고 한다. 결국 형제는 자기의 신념에 따라 각자의 길을 간다.
결국 저항을 계속 하던 데이미언이 잡히고, 형 테디가 그를 총살한다. 처형 전날 밤, 테디는 데이미언을 회유하려고 갖은 애를 다 쓴다. 그러나 데이미언은 밀고보다는 죽음을 선택한다. 그 어린 크리스를 밀고자라는 이유로 총살한 바로 그 자신이 밀고자가 될 수는 도저히 없어보였다. 형은 기둥에 묶인 동생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고는 쓰러져 널브러진 동생을 안고 오열한다.
아일랜드의 상황이 우리 민족의, 우리 조국의, 지난날과 너무 흡사해서였을까.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는 장면이 여럿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데이미언이 크리스의 심장에 총을 겨누는 장면과, 형 테디가 데이미언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장면에서는 눈을 감고, 감은 눈을 두 손으로 덧가렸다. 내 속에서 이상한 덩어리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 덩어리가 목구멍을 치밀고 솟아나올 것만 같았다. 데이미언에게 그만 밀고를 해 버리라고, 목숨을 구걸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대신 처형을 실행해 주겠다는 부하의 제의를 거절하고 끝끝내 자신이 총을 겨누는 테디에게도 외치고 싶었다. 제발, 총을 부하에게 건네라고! 부디 형이 동생을 죽이는 것만이라도 피하라고!
감독은 내 간절한 바람을 끝끝내 저버리고 자기 식대로 밀고 나갔다. 동생의 식어가는 몸을 안고 통곡하는 형을 보는 동안, 내 눈에는 크리스를 죽인 후 괴로워하던 데이미언의 얼굴이 오래도록 겹쳐서 보였다. ‘형, 무서워!’ 라고 말하면서 최후를 맞이하던 크리스. 크리스의 죽음을 전하는 데이미언과 함께 아들의 무덤을 찾아가면서, 그 긴 시간동안 끝끝내 침묵하던 크리스의 어머니. 그녀가 무덤을 돌아본 뒤 데이미언에게 건넨 단 한 마디, ‘다시는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구나’. 그 말을 툭 내던지듯 내뱉던 그녀의 허허로운 얼굴도 겹쳐서 보였다. 그들 모두는 조국을 위해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그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체념인 듯도 하였다.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은 1920년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특수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면 1916년 4월, 부활절 기간 동안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일어났던 무장봉기가 있다. 예이츠의 시 「1916년 부활절」이 생각났다. 집에 와서 그 시를 찾아 다시 읽었다. 영화를 보기 전과는 사뭇 다른 아픔을 느꼈다. 아일랜드의 이 일련의 사건들은 아일랜드의 특수한 사건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1922년 12월 아일랜드 자유국이 탄생하지만, 이 사건은 과거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캔 로치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 역사는 언제나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중요한 테마이며. 이 영화가 현재의 이라크전과 같은 사건들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