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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질링 - Changeli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단발머리 여고생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 그 여고생은 동해안의 자그마한 마을에서 대구로 유학을 온 소녀였다. 전교생이 일천오백명 정도 되는 규모의 중학교에서 거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아이였다. 해서 아이의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대구로 고등학교를 보냈다. 아이는 외교관이나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는 처음에는 주춤거렸지만, 이학년이 되면서는 우등생 대열에 합류하였다. 본고사가 있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대학입시에만 열중이던 삼학년 때의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은행에 입사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으셨다. 전교석차 5등 이내의 성적이 되는 학생만 지원이 가능한 성적우수자 특별채용이었다. 선생님은 은행에 취업하면 얻게 되는 이득들을 여러 번 강조하며 권하셨다. 이러저러, 망설임과 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면접과 신체검사마저 통과하였다. 여름방학에 연수를 받고 이학기가 시작되는 구월 중순에 한 지점 근무를 발령받았다. 본점에서 사령장을 받을 때 아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전자계산기가 한 지점에 달랑 한두 대 있던 시절이었다. 모든 계산은 주산이 감당하였다. 소녀는 이제 어엿한 여자가 되었다. 여자는 주산부터 배워야 했다. 포기한 대학은 은행일에 능숙해진 뒤에 야간대학을 가리라 마음먹었다. 10시에 은행업무가 시작되던 시절이었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도시락을 사서, 새벽 단과반 강의를 듣고 학교에 갔다가, 밤 열 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던 날들에 비해, 출근시간은 너무 늦었고 퇴근 시간은 너무 빨랐다. 여자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여세로 은행 일을 열심히 배웠다. 주산실력도 제법 늘었다.
첫 달치 월급을 받아든 여자는 기쁨에 앞서 너무 놀랐다. 함께 연수를 받고 한 날, 한 장소에서 사령장을 받은 입사 동기인 남자의 월급과 여자의 월급이 차이가 났다. 결코 적은 차이의 액수가 아니었다. 여자의 한달치 본봉이 칠만육천몇백원이었다. 여자가 선배에게 물었다. 뭐가 잘못된 게 아니냐고? 왜 차이가 나느냐고? 차이의 원인이 뭐냐고? 여자의 입사 성적은 결코 남보다 뒤지는 성적이 아니었다. 선배는 성적이 아니라 성기의 차이라고 했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 그제서야 여자는 입사시에 적었던 '결혼각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았다. 결혼과 동시에 퇴직을 하겠다는 '결혼각서'를 적으면서도 아직 학생의 신분이었던 그때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가 혼몽하였다. 그저 절차상의 요식행위인 양 건성으로 적었다. 그렇게 시작된 성기의 차이는 막강하고 방대하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급여의 차이는 각도기처럼 벌어졌고, 몇 가지의 업무는 아예 담당해보지도 못했다. 세금 따위를 받는 업무나 예금을 담당하는 업무가 주로 여자들이 하는 일이었다. 남자들은 자기들이 대단히 복잡한 은행의 중추업무를 담당하고 있노라며, 목과 어깨에 무형의 깁스를 하고 다녔다.
여자는 너무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내내 공학으로 다녔는데, 여학생이라고 차별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여학생은 전교 1등을 하면 안된다거나, 등교를 남학생보다 더 일찍해서 학교청소를 남학생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거나, 하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여자기 때문에 '결혼 각서'를 쓰야 하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결혼을 하면 여자가 바보가 되는 것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보통 여자들이 25세 전후가 되면 결혼하던 시절이었다. 은행에는 나이 많은 처녀가 거의 없었다. 결혼을 하면 퇴직을 하겠다는 각서에 따라, 퇴직하였으므로. 24세에 실질적인 결혼을 한 내 동기가 있었다. 비밀결혼이었다. 몰래 결혼을 하고 동거를 시작하였으나, 서류상으로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말짱 미혼의 상태로 남아있었다. 친정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처녀가장이었으니, 달리는 방도가 없어 보였다. 어떤 선배는 29세가 되도록 결혼을 미루고 연애만 하고 있었다. 약혼자가 고시준부를 하는 중이어서 그 선배가 당분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여직원들은 조금씩 꿈틀거렸다. 전국의 금융권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이 함께 뭉쳤다. 한마음으로 서명운동부터 시작하였다. 주동자들은 오지의 지점으로 발령을 받거나, 그와 유사한 불이익을 받았다. 그런 불이익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아마도 잘 지내던 책임자들의 질시를 받는 것이었을 것이다. 질시와 학대를 견디다 못해 퇴직을 한 선배들도 여럿 있었다.
그렇지만, 한 번 몰아치기 시작한 바람은 점점 더 거세졌다. 가는 물줄기도 여러 개가 합해지면 큰 물줄기가 된다. 물줄기는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마침내, '결혼각서'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근무환경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졌다.
90년대가 되어서는 여자 과장이 간간이 가물에 콩나듯이 돋아났다.
90년대 중반에 여자는 과장이 되었다. 누구나 선망하는 놀라운 상을 받으면서 나름대로는 승승장구하면서 버티다가 98년 말에 명예퇴직하였다. 명예퇴직에 관한 여러 일들은,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계신 바와 같다. 무엇에 대한 명예인가? 내 한 몸을 던져 회사를, 은행을, 나라를 구하는 명예? 그 몸 던지는 일을 할 때 왜 연약한 여자들을 최전방에 내세우는지? 총알받이? 논개의 후예들이어서?
1920년대 미국의 L.A에 한 여자가 있었다. 아니다. 한 엄마가 있었다. 아니다.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억척같고 악착같은 아주머니. 여러 남자가 치를 떨고 고개를 절래절래 내어흔들게 한 아주머니.
영화' 체인질링'의 크리스틴(안젤리나 졸리)
억지와 무식과 무기로 무장한 경찰 수뇌부의 구조적인 폭력. 그 폭력의 존재를 모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그 폭력의 집단에 기댈 수밖에 없는 약자들, 그리고 아주머니.
영화에서는 코드12로 분류되는 정신병원의 여자들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코드12로 분류되어 정신병원에 감금된 남자들도 있었을까? 영화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약자들 중에서도, 특히 여자들이 받는 대우는 미국이라고 해서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인공 아주머니는 전화국에서 일을 하는, 이혼녀이다. 영화에서 남자 상사가 하던 말이 인상 깊었다. <교환수들을 관리하는 팀장에 크리스틴을 추천한 사람이 자기인데, 그 역할을 잘 해줘서 고맙고 다행이다.>라고 격려하던 말. 그 상사는 크리스틴에게 여자로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으로 짐작건대, 그 시절에는 미국에서도 여자 책임자는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크리스틴의 아들 월터가 실종되던 날, 크리스틴은 쉬는 날인데도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타로 출근을 했다. 크리스틴은 잠시의 휴식도 반납한 채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월터의 실종 사건에 가려져 있지만, 조금만 눈길을 모로 돌려서 보면, 크리스틴의 업무 태도와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 보인다. 나 역시 미국보다는 50~60년 이후이지만 그런 상황을 보고 또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명예퇴직이 한창 진행되던 어수선한 시절에 우리 지점의 차장은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은행의 수뇌부가 되면 25세가 넘는 여자들은 모두 집으로 보내겠다고. 그 말을 듣고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내가 한 마디 물었다. "차장님도 딸만 둘 두셨는데, 그 아이들이 25세가 되어 직장에서 쫓겨오면 어쩌죠?" 차장님 왈, "그때쯤엔 세상이 확 바뀌어져 있겠지 뭐." 그럴까? 불과 몇 년 사이에. 차장과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이 세상이. 그냥 저절로?
어쨌거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내가 근무한 은행에서도 90년대를 지나면서 여자 과장이 듬성듬성 뿌리를 내렸다. 나는 95년에 과장이 되었는데, 나보다 더 앞서 과장이 되었던 여자 선배들은 정말 몸이 부서져라고 일을 했다. 거의 악을 써댔다고 해야 맞는 말이리라. 맨 처음에 진급을 했던 선배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랬다. 남자들은 당연히 근무연수가 차면 되는 일을 여자는 악바리, 혹은 마녀, 마귀할멈 소리를 들을만치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다. 승진을 하고 나서도 두 어깨는 지점 하나를 혼자 짊어진 것보다도 더 무거웠다. 자기가 어떻게 역할 수행을 해 내느냐에 따라서 후배 여직원들이 계속 승진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매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켜 보니 신통찮더라, 하는 말이 나올까봐서였다. 어, 시켜 보니 생각보다 성과가 좋아, 하는 말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여자 관리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고, 이제는 지점장의 수도 여럿 된다. 남자에 비해 숫자라고 할 것조차 없을 정도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사람은 각자 자기의 내면의 거울로 세상을 본다. 나는 권력 집단의 구조적인 폭력을 고발하는 영화 <체인질링>을 보면서, 모두가 한 방향으로 보는 그것 외에 위에 적힌 것들을 더 봤다. 20년간 은행에 출근하는 동안 쌓이고 쌓인 피해의식 때문이리라. 성적의 차이가 아니라 성기의 차이라고 하던 선배의 충고 때문이리라. 서명운동을 주도하며 은행에 항의하다가, 결국 사표를 써야 했던 선배의 얼굴이 내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중도에 폐기처분되었던, 입사 서류에 첨부했던 <결혼각서>가 내 안에서 아직도 숨쉬고 있기 때문이리라.
감독 클린트이스트우드는, <체인질링>의 화면과 화면 사이에 참으로 많은 말들을 숨겨놓은 것 같다. 시인이, 행간에 더 많은 말들을 숨겨놓은 것처럼.
나는 이 영화를 감독의 이름을 보고 선택하였다. 졸리가 아니라 클린트이스트우드라는 이름 때문에. 클린트이스트우드는 이제 꽤 나이가 많다. 나는 하마 안타깝다. 부디 오래 건강해야 할 텐데. 우리를 일깨우고 권력과 폭력의 뒤통수를 치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야 할 텐데. 그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것들을 부디 오래 많이 해내어야 할 텐데.
<체일질링>을 보면서 영화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빗물처럼 스며들어 천둥처럼 내 속을 뒤흔드는 부드럽고 광폭한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