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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윤서 지음 / 더블:엔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 제공 도서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그림 감상할 때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그림 앞에 오래 머물면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는가' 에서
'나는 왜 지금 이 그림 앞에 서 있는가'로 시선이 옮겨간다.

희, 로, 애, 락. 네 가지 감정으로 바라본 중
첫 화가로 '그랜마 모지스'가 나왔다.
관절 통증으로 오랫동안 취미로 해오던
퀼트를 못하게 되면서 그림으로 방향을 바꿨다.
새로운 도전이라기 보다,
'포기하지 않기 위한 선택' 이라는 말처럼
들뜬 기쁨의' 희(喜)'가 아니라
하루를 건너가기 위한 방식이었다.

장 미셸 바스키아는 백인 중심의 미술사에
조심스럽게 들어오지 않고 '분노'로 밀고 들어왔다.
정면으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스키아에게 거리 미술은 단순한 표현 양식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에 가까웠다.
그 분노가 세상을 밀어내는 감정이라기 보다,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절규가 아니었을까.
오노 요코의 예술은 굉장히 신선했다.
그림이나 조각에 익숙했던 1966년에
사다리 하나를 본 관람객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누군가는 사다리를 끝까지 올라가지만
중간에 내려오거나 올라갈 생각도 안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YES'는 천장에 매달려 있던 게 아니라
움직이기로 선택한 사람의 마음 안에 있던 것이다.

고독이 묻어나는 그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3년 전 개인전에 다녀왔는데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많지 않았다.
그림에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어느 누구도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는 '고독'은 관계 안에서 익힌 침묵의 언어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고양이를 그렸지만,
정작 궁핍한 생활 끝에 낙후된 시설에서 지냈던 루이스 웨인.
비록 고립된 병원이었지만, 다행히도 말년에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고.
모빌을 창안한 알렉산더 칼더는 움직임으로 조각의 경계를 넓혔다.
표지 그림을 제외하고는 그림이 정말 없다.
큐알 코드를 통해 작가가 노션에 기록한 작품과 설명을 볼 수 있는데
책을 보다가 자꾸만 핸드폰을 잡게 되니 조금 산만했다.
대신, 그림을 보면서 읽는게 아니라서
더 집중하고 그림에 대해 상상하게 되는 장점도 있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수많은 페이지 중에서
내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남과 다르듯,
내 시선이 머무는 그 그림을 통해
나 자신의 상태를 들여다 볼 수 있다니
내 마음에 남았던 그림들을 다시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