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인어공주의 숙명을 지녔다."고, 인터뷰 작가 김혜리는 말했다. "예술은 돌려 말해야 한다. 욕망과 사랑을 대놓고 발설하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태생이 벙어리 냉가슴일 수밖에 없는 예술을 통역하고 위무하기 위해 비평가가 존재한다"(진심의 탐닉, 씨네북스)는 것이다. 사실 현대의 예술이 과연 벙어리 냉가슴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좀 들긴 하지만(스스로 발언을 하는 경우도 많으므로....그리고 요즘 언뜻 본 어느 CF에서는 인어공주도 왕자에게 분명히 말을 하더라. 내가 당신 목숨을 구했노라고.ㅋ ), 비평가의 존재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비평을 통해 예술의 의미가 풍요롭게 다가오고 그에 매혹되는 실제적 경험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전문지 [월간 포토넷PHOTONET]에 연재했던 “한국현대사진의 새로운 탐색”을 묶어 단행본으로 펴냈다는 평론가 박평종의 사진 평론집 <매혹하는 사진>은 이러한 비평의 역할에 대체로 충실한 책이다. 저자의 통역을 따라 사진을 읽어가면 불분명했던 의미들이 드러나고, 모호하던 사진의 맛과 재미가 두둥~ 수면위로 떠오르는 느낌이다. 저자가 선별한 22인의 젊은 작가들의 리스트도 흥미롭다. 책에 실린 다양한 '태도'와 '실천'을 보여주는 작품들에서, "중요한 것은 한 작가가 세계에 대해 취하는 태도의 문제"라는 저자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노순택, 구성수, 한성필, 천경우, 이원철, 방병상, 손승현, 권순관, 김옥선, 난다, 박진영, 박형근, 백승우, 윤정미, 이강우, 이선민, 이은종, 이정록, 이혁준, 정연두, 조습이 그렇게 선별된 작가들이다.

책에 따르면 근대가 낳은 제도와 공간에 대한 구성수의 작업은 자기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던 우리 근대 역사의 결여를 메워 나가 결국 자기 극복을 꿈꾸는 시도이고, 이옥선의 작업은 인간의 확장을 말하고 있으며, 난다의 근대의 재현과 모던걸의 등장은 오늘의 현실이 근대로 퇴행하고 있는지를 묻는 작업이다. 노순택은 한국 사회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지점을 포착하고 그 폭력이 작동하여 우리 사회를 끝없이 동물성과 야만의 상태로 몰아가는 모습을 드러내는 작가로 소개된다.

"노순택이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폭력의 장치와 권력이 미치는 범위를 들추어내는 작업에는 예민한 후각을 지닌 동물적 본능과 차분한 반성적 사유가 공존한다. 그것이 중요한 덕목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근저에는 폭력을 멀리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것이 진정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애원이 있다. 그것이 작가를 집요한 현실주의자로 만드는 힘이자 실천의 윤리이다."

박진영은 한국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갈등 구조와 분열의 양상을 드러내 보여주고, 손승현은 문명사의 진행과정에서 은폐되어 온 희생의 역사에 주목하여 문명의 야만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선민은 여성의 주체적 삶의 가능성을, 조습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온 야만과 폭력의 문제를 패러디로 보여주는 작가로 제시된다.

이 밖에도 이전에도 관심이 갔던 작가들의 작품은 보다 큰 '매혹'으로 반갑게 다가왔고, 잘 몰랐거나 왜 좋은 건지 이해가 안되었던 작가가 새롭게 보이는 장도 있었다. (형상과 관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는 천경우의 사진은 인상적이었고, 실재와 재현, 진짜와 가짜 같은 지각의 문제를 다루는 한성필의 사진도 재미있었다. ) 뭐 저자의 친절한 통역으로도 여전히 아무런 매혹이 되지 않는 작품들도 있긴 한데, 나의 취향이니 어쩔 수 없다. 저자가 작가 선정에 있어 취향과 가치관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처럼.

표지며 내지의 디자인이 좀 안타깝지만(이미지를 다루는 것인데 좀 신경 좀 쓰지...) 실린 사진도판들은 나쁘지 않고 빼곡한 텍스트도 꽤 재밌고 맛나게 읽히니, 애초 선정적이라 생각했던 제목도 고개가 좀 끄덕여지긴 한다. 그래, 매혹을 꽤 하기는 하지... 어떤 건 매혹을 하는 주체가 사진 자체인 것인지, 저자의 독해로 드러난 사진 속 세계인 것인지 살짝 모호하기도 하지만.... "한국 사진의 미래를 걸머지고 나갈 젊은 작가들의 지위를 탄탄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다."는 의도가 살짝 드러나는 대목도 종종 눈에 띄지만... 미학 전공자로서 한국사회에서 이 땅의 삶에 밀착된 사진예술을 고민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저자의 책이 이끄는 대로 사진에 매혹당하는 경험은 즐겁고, 사진예술에 대한 안목을 - 교양이 아니라 - 갖추고 싶다면 꽤 신뢰가 가는 참고서-교과서가 아니라-가 되어줄 것 같다. 위대한 탄생의 김태원의 표현을 빌자면 "두께가 있는" 책 되겠다. 물리적으로도 좀 두껍긴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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