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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 - 하응백 연작소설
하응백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9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음의 미학... (소설집, '남중'을 읽고)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국산도 여러 질’ 이라는 말도 오래 전부터 회자되어 왔다. 이춘재 같은 악질도 5천만 중에는 가끔 씩, 돌연변이로 나타나 선량한 우리들에게 공분(公憤)을 넘어 살의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공중 목욕탕을 가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내밀한 부위를 공공 장소에서 노출하기 싫어서든, 그냥 남들 앞에 자신의 벗은 몸매를 드러내는 게 마뜩잖아서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루틴을 거부하는 마이너리리티도 분명,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반면에, 극소수의 변이(變異)들은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특정의 성(性) 앞에 드러내기도 한다. 그들은 ‘바바리 맨’ 이라는 꽤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길지 않은 60여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관찰해온 인간이란 동물은 기본적으로,
부끄러워 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이중적인 혹은 모순된 개체인 것 같이 보여진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이 하는 행위 중의 많은 부분은 그 동인(動因)이, 보상 심리와 인정 욕구라는, 두 수레 바퀴에 의해 굴러간다고 감히 단정을 내린다.
어제, 한 권의 소설을 읽었다.
소설 책을 완독해 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독서욕, 지적 욕구 만큼은 제철 공장의 용광로처럼 평생 식지 않을 거라고 여겼지만
그것도 이젠 온도가 내려가고 있다.
특히, 소설은 “그래서, 결론이 뭔데?...” 라고 스토리 텔링만을 찾아가는, 내 인내심 부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독서 장르가 되고 말았다. 그만큼 하늘 아래 새로움을 찾고자 하는 열정도, 他者에 대한 관심도 바래지는, 노인성 무감각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해야겠다.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저자와의 개인적인 연을 핑계 삼아, 작심(?)하고 완독에 도전해, 서너 시간만에 마지막 장을 넘겼고, 그 소회를 남기게 되었다.
두텁지 않은 책의 질감이 부담을 줄여주었고, 내 나름, 저자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드라이하게 소설 속으로 빠져 보려고 노력하였다.
아래는 그 결과물을 간단히 정리한
독후감이 되겠다.
우선,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때로는 이성이 감정을 누르기도 하지만 인간은 아주, 자주,
감정에 자신의 결정이나 판단을 내 맡기는 허약(?)한 미물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붉은 색은 색맹인 투우가 아니라 투우장 관객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기 위한
코스프레라는 걸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다.
붉은 색의 이 책 표지가 왠지 이 연작 소설 속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거란 기대감을 안고 책을 들었다.
홍등가라는 단어와, 정육점의 붉은 조명을 떠올리면서...
출판사의 의도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 지레 짐작하면서...
소설집의 제목인 남녘 남(南)에 가운데 중(中)자가 내포하는 뜻을 헤아리기는
처음부터 무리인 채로...
1편, ‘김벽선 여사 한평생’
“내가 살아온 걸 소설로 써도 몇 권은 될 끼다” 생전의 모친께서 하신 말씀이다.
소설 속의 화자(話者)인, ‘나’의 모친으로 등장하는 ‘김 여사’의 삶 또한, 그러하다.
백데레사(나의 모친)든, 김여사든, 한국 전쟁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어머니들 거개는 질곡이 깊은 인생 여정을 보내셨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하지만, 김여사의 그것은 조금 더 특별해 보여서 소설 끝까지 긴장(?)감을 주며 읽게 만든다.
2편, ‘하 영감의 신나는 한평생’
2편은 소설 속 ‘나’의 아버지인 ‘하 영감’ 이야기다. 일부일처제(monogamy)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부하며 살았던 조선 땅 아버지들의 삶을 ‘하 영감’ 또한 보여준다 (그는 19세기, 1800년대에 출생하였다!).
지구 상 모든 포유류 중에 일부일처를 ‘지향’하는 건 3%에 불과하다는 통계는
많은 수컷 바람둥이들에게는 ‘진짜 뉴스’로 받아들여진다.
남성 독자든, 여성 독자든, ‘영감’의 인생을 보는 건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3편, ‘南中’
드디어, 이 소설 집의 제목이 등장한다. ‘남중’의 뜻은 직접 이 소설을 읽고 알아보기 바란다.
세 편의 연작 소설 내내 등장하는 ‘나’의 이야기 이자, ‘김남천’ 이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보고서(?) 이기도 하다.
굳이 저자가, ‘나’와 ‘김남천’을 등장 시킨 이유가 뭘까?
소설은 당대의 사건도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이 소설집이 ‘팩션’이란 걸 강하게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추천인의 글과 저자의 발문을 읽고 책을 덮는다.
빙산의 일각, 사람을 대하는 나의 원칙적 태도이다. 모든 개인의 삶은 宇宙 史에 한 획을 긋는 일이다. 한 번 이상, 소통의 연을 맺었던 지인들을 바라보는 이런 태도는 장려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저자와 알고 지낸 여러 년 수가 있다고 해서 내가 그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이런 ‘자전적 성격’의 소설을 통해 그를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된 기회는 살면서 흔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무척이나 유익하다.
내 주위에서 公轉과 自轉을 하는 모든 知人들은 나에겐 ‘살아있는 化石’이다.
그 화석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싶지는 않지만, 보기 좋게 ‘박물관’에 진열해 놓은 것 만으로도 나는 저자가 고맙다.
주어진 생명을 기꺼이 후대에도 잘 乾飼하신 ‘하 영감’과, 그리고 당신의 유일한 혈육인 외 아들 곁을 평생 지켜주신 ‘김 여사’에게
‘위조하지 않은 표창장’을 드린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