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16쪽, 달려라, 아비)

   어머니와 나를 치열한 삶 속에 남겨둔 채로 멀리 달려간 아비, 내 손에 책  한 권 쥐어주고는 사라져버린 아비, 훗날 수족관 유리 밖으로 나타나  내가 아닌 내 등 뒤의 거북에게 '사랑의 인사'를 보내는 아비, 객처럼 지나가다 잠시 머물면서 밤새 TV를 켜놓아 수면을 방해하는 아비, ... 무능력하고 자신의 삶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아비를 둔 '나'는 그러나 내 삶을 연민하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 방법을 가르쳐준 어머니의 모습에서 뭔가 난, 바로 이거야, 하고 생각한다. 현실이 바뀌지 않고,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은 연민하지 않는 것.

   어려서 공원에 버린 자식, 그러나 성장한 그가 아닌 그의 등 뒤에 헤엄치는 거북에게 인사를 보내는 아비와, 영어를 몰라 잔디를 깎았다는 부분을 가르키며 '엄마가 예뻤데'라고 번역해주는 딸, 그리고 그 부분을 손으로 쓰다듬는 엄마의 모습 등 여러 부분 마음을 적시지만, 소설은 스스로 연민에 빠지지 않고 순간 순간 유머로 아픔을 치유한다.

   모든 단편을 참 재.미.나.게 읽었는데, 그 유머는 그저 피식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유하기 위한 것,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애잔해지는 그런 것이었다.

   왠지 씩씩하게 사는 방법을 배운 것 같고,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유쾌해지는 것이 해답이라는 것을 배운 것 같은 그런 상쾌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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