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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노인이 되어버린 연쇄살인자의 치매.
언뜻 생각해봐도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책에는 많은 얘기가 펼쳐져 있었다. 치매노인의 기록임에 걸맞게 짧게짧게 써져 있어 별생각 없이 읽는다면 금방 읽어낼 수 있는 분량이지만 책장을 덮고나니 오히려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았다. 다시 한번 읽어보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한번더 훑었다. 그러나 한번더 살펴봐도 역시나 전하는 메시지의 깊이가 나의 책읽기 내공 정도로는 만만치가 않게 깊어 어렵다.
더 완벽하게 잘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사라져 25년전부터 살인을 멈춘 연쇄살인자는 독특하게도 굉장히 문학적이다. 더 잘하기 위해, 뼈아픈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쓰는데, 문장 만들기가 힘들어 문화센터에서 시에 관해 배울 정도이다. 본인이 느낀 희열과 안타까움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어 더러운 기분이었다고 표현할 때는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외에도 내모습 같은 부분이 중간중간 있어 감정이입이 되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기도 했다. 이 사람은 살인자인데.... 어째서 나같은 거지??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러나 예전에는 문학적이고 지적 수준이 높았던 사람이었고, 현재는 치매에 걸려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일반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살인자임을 잊지는 못하게 상기시켜주는 섬뜩한 장면들도 많다. 살인자의 머릿속은 어떨지 그 깊은 속내까지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참으로 외로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살해로 시작하여 그 많은 살인은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이 혼자서만 해내야 하는 작업이었을테고,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공유할 수 없이 외로웠을 나날들. 이 부분에서 난 또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38쪽)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역시 기억을 잃고 사는 삶에 관해서일 것이다. 영화 <메멘토>가 떠올랐다. 아주 예전에 본 영화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일기를 쓸때마다 가끔씩 생각이 난다. 내가 기록해 놓은 기억을 먼 훗날 읽게 되었을 때 이대로 믿게 되겠지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내 느낌이나 감정을 제외한 사실만큼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적어놓으려 노력하지만 그것 역시 헛수고일 것이다. 기억이란 어차피 내 머릿속에서 한번 걸러지게 되어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기억마저 잃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삶일까?
잊지 않으려고 발악해가며 녹음기에든 일지에든 기록하며 노력하는 주인공. 그러나 치매라는 현실로 인해 정확성이 떨어지고 망상까지 섞여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 살아있는 평생을 괴롭히게 될 것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끝장을 덮으며 한숨이 나왔다. 미래 기억을 붙잡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진짜 문제는 다 끝난 거라고 결론을 내릴 수 없이 머릿속은 계속 혼란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치매노인이니 금방 잊어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려나? 하지만 난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