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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진정 자립을 한다는 것, 사람이 진정 어른이 되어 자기를 책임진다는 것은 간단하더라도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포함돼. 아주 중요한 요소지."
---- 239 p
요즘처럼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 적은 없었다. 너무나 공감가는 말!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나같은 경우, 저녁마다 음식 준비를 하는 요즈음의 나날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마다 내가 조금은 성숙해 보이고 이제 어른이 된 것도 같다는 야릇한 느낌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 초기에 이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면 나의 성숙은 조금 일찍 찾아와 주었을 것인데, 아이들을 포함한 식구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이때, 그것도 자의인지 타의인지 불명확한 상태에서 깨달아 늦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이제라도 알게 된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아, 가끔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깨달을 때의 그 신선함이 너무 좋아." ---238 p
와 같은 내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해놓은 문장도 만날 수 있다.
인터넷이 매우 발달해 왠만한 레시피들 어렵지 않게 검색해 시도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엄마가 해주는 그 음식이 먹고 싶어 엄마게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본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역시 신혼초부터 엄마에게 자주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는 했었다. 책에서 저자는 여러가지 간단한 레시피들을 딸에게 알려주며 따뜻하게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레시피들은 너무나 간단하고 쉬워서 벌써 몇가지는 따라서 해보았다. 나 또한 집안일에 엄청나게 매달려 화려하고 풍성한 식탁을 차릴 엄두도,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이기에 저자의 초간단 레시피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역시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 위로도 될 수 있겠고, 인생 상담도 될 수 있겠고 한 그 이야기들.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도 없는 휴일에도, 너 자신에게 가장 아름답고 좋은 옷을 입혀주거라. 드레스와 명품으로 네 몸을 휘감으란 말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알겠지? 무릎이 나오고 고무줄이 하염없이 늘어나는 낡은 트레이닝복은 이제 쓰레기통으로 보내거라. 그날의 네 일상에 알맞은 복장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고르고 양말까지 색깔 맞춰 신고 청결하게 하고 머리를 드라이어로 잘 다듬어라. 언제 어디서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몸을 돌보아야 해. 이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이것은 외모 지상주의가 아냐."
-- 35 p
이 책에서 공지영 작가는 마치 우리 엄마인냥 착각할 정도로 엄마와 비슷한 얘기를 많이 해준다. 엄마들은 다 비슷한 것일까? 화려한 작가 엄마도 기본적으로는 엄마인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집에서 있을 때도 깔끔하게 입고 머리도 드라이질좀해서 산뜻하게 하고 있으라는 것. 지금까지도 내가 참 많이도 듣는 이야기다. 올리브유 같은 좋은 기름을 준비해둬라, 매실 엑기스는 꼭 갖춰놔라. 쓸모가 많다. 하는 등등... 거의가 내가 엄마에게 듣던 낯익고 정겨운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으며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또한 내 딸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 어떤 삶의 가르침을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되었다. 나처럼 딸이면서, 동시에 엄마인 사람들에게 정말 의미깊은 책이 되어줄 것이다.
"명심해라, 이제 너도 어른이라는 것을. 어른이라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애정이든 배려든 혹은 음식이든.
너는 무엇을 엄마에게 받고자 했으나 받지 못했니? 네 마음은 뜻밖에도 너의 질문에 많이 울먹거리게 될 것이고, 너는 오늘 밤 오래도록 네 안에 사는 어린아이와 대화해도 좋겠구나. 오늘 밤은 충분히 기니까. 그리고 그 안의 아이가 훌쩍 아름답게 자라날 만큼 깊으니까."
-- 30 p
이 문장을 읽으며 슬픈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부모에게서 못 받았을까? 그리고 내 아이는 나에게서 무엇을 원했는데 못받게 될까?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제 그것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성숙이라는 것이 약간의 위안은 되어 주었다.
작가의 외적 조건이나 행보 등에 대해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텍스트로만 집중해서 읽었다. 그러한 고정관념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매우 훌륭한 가르침을 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