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울컥 눈물이 나려했던 부분이 세 군데 정도 되었다. 책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경복궁이 일본군에게 공격당할 때 군졸들에게 반격할 필요가 없다는 고종의 명을 전하자, 이것은 나라가 아니라며 총기를 부수며 절규하는 군사들의 모습에서 한 번, 전봉준이 군사들을 모아 떠나며 마지막으로 딸 갑례에게 밥상을 받으며 나누는 작별 인사에서 한 번, 전라감사와 전봉준이 이별하는 장면에서 또 한 번.
전봉준 장군과 흥선대원군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된 큰 계기가 되준 소설이다.
"정석희는 온몸이 굳어 손끝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전봉준이 입을 열어 논설을 펴매 함께 있던 자들의 눈매가 잡아먹을 듯 번득거리니 이들은 빼앗긴 세곡이나 되찾자는 단순한 무리가 아니었다. 알지 못할 신념에 들려 벌써 춤추는 칼에 반쯤 목을 걸친 자들, 서적의 무리가 아니라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하고 확고한 뜻을 세운 자들이었다." (67쪽)
동학농민운동은 단순히 탐관오리의 수탈에 지친 농민들의 봉기 정도가 아니었다. 전봉준은 조선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형세를 꿰뚫고 있었고, 정치를 하여 나라의 행정을 바로잡아 조선의 앞길을 열어갈 일을 도모하던 큰 꿈을 꾸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알던 동학농민운동의 모습과 다른 점이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시절의 일들, 그러니까 임오군란 이라던지, 갑신정변, 갑오개혁 같은 일들을 시험과목으로만 달달 외우던 것에서 더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통해 바로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바라보듯 피부로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흥선대원군에 대한 나의 오해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쇄국정책으로 일관하여 나라를 파국으로만 몰고간 위인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읽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왕족으로서의 입장은 갖고 있었으나 민중의 힘을 믿고 그들과 손잡을 줄도 알았으며 외세의 힘을 등에 업고 권력을 쟁취하는 것에만 목적을 둔 다른 세력들과 달리 진정으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더더욱 이 시대의 일들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관심이 생겼다.
또한 전라감사 김학진은 전봉준과 적대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동학 사람들과 함께 경영을 나누어 맡는 궁량까지 지닌 멋진 관리였다. 이철래라는 검서관 역시 마찬가지. 동학이 봉기할 적 발표한 글들을 읽으며 백성들의 앞서나감에 감동하고 가슴뛰어 하던 사람. 결국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여 갖은 고생을 하며 생사여부조차 불확실하게 된 사람이다. 이 두 양반을 보며 그 때 이런 사람들이 좀 더 많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좋은 문장을 만나는 기쁨도 누렸고, 전봉준의 아픔과 고독, 외로움을 느껴가며 읽었던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