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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마더스
도리스 레싱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4편의 중편들이 모여있는 책이다.
먼저 <그랜드마더스>
제목이 무슨 뜻일지 생각해봤다. 할머니 두명이 등장하니 그랜드마더에 에스가 붙었나보다. 영화 <투 마더스>의 원작 소설이라는데 할머니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어머니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할머니가 됐든 엄마가 됐든 이야기는 두 소녀에서부터 시작한다. 새로 전학온 학교의 낯선 상황에서 쌍둥이처럼 친밀하게 자란 두 소녀. 그들은 나란히 결혼을 하고, 바로 옆집에 붙어 살고 사이좋게 아들도 하나씩 낳는다. 둘의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한 남편은 떠나고, 한 남편은 죽고 그렇게 넷이 나란히 살던 그들은 각각의 아들과 연인 관계가 된다. 각자의 집에서 서로의 아들과 침대를 쓰면서도 친구로서 인생의 동반자로서 여전히 함께 하는 두 여자.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런 그들만의 세상이 행복하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회의 통념앞에서 결국 아들들은 젊은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함께 봐주는 할머니로서의 삶. 며느리가 그들의 관계를 눈치채면서 소설은 끝이 나는데... 제 아무리 일반적인 삶의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도 각자 마음속에 비밀 하나씩은 간직하고 살고 있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고, 그러리라 기대하지도 않는 그런 비밀. 난 이들의 관계가 그리 이상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뭐가 무서워 젊은 여자들과 굳이 결혼을 했는지, 그게 안타까웠다. 그렇게 안했어도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행복했을텐데.
그 다음은 <빅토리아와 스테이브니가>
빅토리아는 흑인 빈민 아이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모가 갑자기 아파 병원에 실려가자 부유한 스테이브니가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게 된다. 자신의 평소 삶과 너무나도 괴리가 컸던 그 하루가 그녀의 성장 과정에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를 잡고, 그 뒤 다시는 그 집에 가보지는 못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빅토리아는 아름답고 반듯한 숙녀로 자라난다. 그러다가 우연히 스테이브니가의 아들과 관계를 맺어 미혼모가 되어 딸을 키운다. 딸의 존재를 그 집에는 숨기고 지내다가 여덟살이 된 딸을 스테이브니가에 소개시키고 거기서 딸이 그들의 사랑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도록 점차 놓아주는 과정.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인생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부유한 중산층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훌륭한 성인으로 자라는 것만이 길인가. 돈이 없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거기서 행복을 찾으며 살면 어떤가. 그것은 꼭 비참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그것의 이유>는 패스.
뭔가 지금 사회를 풍자하는 우화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러브 차일드>
가장 분량이 많고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영국의 젊은이 제임스. 책을 좋아하는 그 청년은 전쟁에 휘말려 수백명의 군인을 태운 수송선에서 그야말로 처참한 열악한 환경의 항해끝에 케이프 타운에 도착한다. 거의 병자가 되어 배에서 내린 군인들은 나흘간 케이프 타운에 머물며 그 곳 주민들의 집에서 환영잔치를 맞이한다. 거기서 꿈결처럼 아름다운 유부녀를 만나 사랑을 하고 떠난다. 목적지인 인도에 도착하여 더위와 먼지와 권태에 휩싸인 막사 생활 동안 오로지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하나에 의지하며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며 버티는 제임스. 수소문 끝에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제는 오로지 아이 생각만을 하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나간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온 그.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여자를 잊지 못해 다시 케이프 타운을 찾지만, 꿈에도 그리던 그녀는 그를 만나길 거부한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만나는 여자와 사랑은 더욱 간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막다른 상황에서 동아줄처럼 붙잡고 있던 사랑이 진짜일까, 현실에서의 아내와의 사랑이 진짜인 것일까. 사랑이라는 것의 씁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