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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전심 - 마음과 마음이 시로 서로 통할 때
정끝별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지금은 없어진, 2006년 겨울부터 청소년계간문예지 ’풋‘에 연재했던 원고를 책으로 묶었다. 시를 읽는다는 것, 특히 ’교과서에 실린 시‘를 읽는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로서의 시 읽기를 넘어서야 한다.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조차 두 편 이상의 시를 제시한 후 작품 간 공통점 및 차이점을 중심으로 시를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표현 능력까지 묻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5장 40편의 시를 골라 묶은 시인의 시안이 유독 돋보인다. 학교 수업시간을 염두하고 선정한 시들도 있다. 매 편의 말미에 ‘그리고 여기’를 덧붙여, 앞서 읽은 시와 연관성 깊은 또다른 시를 제시하고 있다. 좋은 시와 의미 있는 시를 가려내기를 바라는 저자의 주문 또한 챙길 일이다.
습작이지만 한 주 한 편씩의 시를 써가려는 쓴이 역시 시를 짓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힘든 일임을 깨닫는다. 요즘 푹 빠져있는 김사인의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외간 남자가 되어’를 읽을 때면 무릇 저이처럼 하고픈 이 시대 남성상의 꿈틀거림을 또 한번 느낀다. 늦잠과 노름과 술과 농(담)과 담배와 병으로, 폐인처럼 세월을 탕진하고 아무런 회한 없이 한 생을 보내고 싶은 방탕에의 유혹, 생의 헛된 보람 없이 망가진 필부로 늙어보겠다는 배짱, 이런 넉살 맞은 사랑과 날건달의 삶을 어느 남잔들 꿈꾸어보고 싶지 않겠는가? 현실이 답답하고 무겁고 각박하면 할수록 더욱 말이다.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 되겠는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라는 마지막 두 행 덕분에 이 시는 위악(僞惡)이 되고 해학이 되고 현실이 아닌 꿈이 되고 있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사는 삶과,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박목월)’의 길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시인의 약력에 이어 시 이론, 시 해설, 엮어읽기 순서로 이어지는 필자의 글쓰기의 맛은 제법 흉내내기에 썩 좋을 성 싶다. 작년 국어 수행평가로 자신이 읽었던 시 가운데 친구에게 소개하고 싶은 시 한 편과 그 이유를 가상공간에 남기게 했다. 아이들은 정말 기대 이상으로 과제를 성실히 잘 해(?) 냈다. 굳이 이건 비유, 상징 등 시 이론을 끄집어다 풀어 쓸 게 아닌 ‘먼저 읽어라, 느껴라, 상상하라, 그리고 궁금해하라.’ 그러면 열린다니…….
여타 평론가와 다른 시각에서 한 편의 시를 접근하는 시력(詩歷)이 대단하다. 깊이와 여백, 그리고 미의식으로 중무장한 사유의 바다! 그 끝점에 ‘말로 하는 절집’(詩)이 있을까 보다. 그 절집에 가서 “공양주한테, 네기럴/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갈까.”(김사인, ‘장마’ 중에서)
마음과 마음이 시로 서로 통할 때 그 진자리, 마른자리에 문학동네가 있으리라. 잘 익은 홍시감마냥 ‘십오 촉(최종천)’ 전구를 켜고 있으려나. 험난한 시 읽기에 좋은 안내서 하나 챙겨 본 것이 큰 수확이다. 어떠한 시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천하무적 시 읽기’가 가능할까 내심 궁금하다. 그러나 ‘시’는 여전히 어려운 녀석이다. 가만 보고 있으면 그저 웃음만 나오는…….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명지여고,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문학사상』 신인상 시부문에「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에「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이 당선되어 시쓰기와 평론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와락 』, 시론 평론집『 패러디 시학』,『천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시선 평론 『시가 말을 걸어요』, 『밥』,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등이 있다. 유심작품상과 소월시 문학상 수상한 바 있다. 현재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