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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 - 서른 살을 위한 힐링 포엠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4월
평점 :
‘좋은 시’란 빛, 깊이, 기쁨의 불꽃들로 충만한 시들이다.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시와 교감할 때 감정의 전이와 승화가 일어난다. 시는 느낌의 생동이요, 영감과 상상력의 생동이다. 그런 시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눌리고 찢긴 마음을 펴고 아물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책은 월간 <탑 클래스>에 지난 5년 동안 연재했던 글을 모아 놓았다. ‘외롬과 시림이, 식초보다 아프다. 꿈이 꿈을 떠나고. 노래가 노래를 잃었을 때. 진부하고 공소한, 그럼에도 현실.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전4장으로 구성 총47편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어찌 사는가/방에 불은 들어오는가/쌀은 안 떨어졌는가”(이병률, ‘시인들’), 스물 살이기 때문에 청춘이 아니라 꿈을 찾아 방황하기에 청춘인 것이다. 피로와 고독 속에서 제 불행의 지도를 넓히는 이들이 바로 방황하는 청춘들이다. 사랑을 잃고, 새로운 사랑이 오기 전까지,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빠진 청춘들은 “간짜장처럼 쏟아지는 어둠”을 비비면서 고작해야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박정대, ‘음악들’)라고 중얼거린다. “부평고등학교 교사 3개월의 계약서에/햇살처럼 도장을 찍고 돌아온 날/와와 흩어지는 소금 알갱이 가슴에 쓰리다(정진혁, ‘간잽이’)”라는 ‘바닥난 통장과 빚’은 신분이 불완전한 기간제 교사의 불가피한 그늘이다. 그런 가운데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사물의 명암과 윤곽이/더욱 또렷해진다//가을이다//아 내 삶이 맞는/또 한 번의 가을!//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해가 많이 짧아졌다(김종길, ‘가을’)을 발견했다. 참으로 노시인의 말씀이 가슴에 콕 와 닿는다.
시 쓰기는 언어로써 생불(生佛)이 되는 것, 그런 까닭에 어떤 경지에 다가갈수록 어려운 게 시업(詩業)이다. 시인은 범속한 삶의 구체성 안에서 그 귀함과 숭고함을 건져 올린다. 어쨌든 시인은 무엇보다도 간절하게 깨끗함을 사모하고 깨끗하게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던 사람이다. 깨끗한 이마와 서늘한 눈매, 눈웃음이 선량한 사람마다 겉보기로 한없이 온화한데, 그 온화함은 무른 내면의 징표가 아니다. 개결하고 단정한 선비의 풍모를 지닌 김사인(1955~)의 ‘장마’를 보다 그이가 낸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을 사서 보았다. 백석이 살아온 듯하다. ‘장마’는 긴 비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중생의 꿈을 그린다. 아무도 모르는 산사에 숨어 “늙은 부처님께 절도 두어 자리 해바치고” 그도 지치면 “작은 며느리라도 불러 (저물도록) 민화투나” 친다. 연이은 태풍에 나도 온갖 세속의 욕망들 내려 놓고 “수타사 공양주한테, 네기럴/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갈까”
시인은 누구나 내면에 저를 시인으로 키운 천형(天刑)을 안고 있다. 그 천형들은 대개는 치명적 결핍들이다. 시인들은 가난, 육체의 결손, 죄, 마약중독, 불행, 외모 콤플렉스 등과 같은 몸쓸 천형과 극한의 나락이 물리는 젖을 먹고 자라난다. 보들레르, 비용, 장 주네, 김소월, 이상, 노천명, 한하운, 김신용 등이 그렇다. 새벽 어판장 바닥에 막 쏟아낸 고기들은 살아서 파닥거린다. 배한봉은 그것을 ‘육탁(肉鐸)’이라고 한다.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는 것은 삶의 어떤 계기에서 얻은 시인 자신의 깨달음이다. 바닥을 친다는 것은 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상황을 가리킨다. 육탁은 온몸으로 바닥을 쳐서 제 살아있음을 알리는 일이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몸짓이다.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고, 절망도 극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뚜껑을 밀어 올리지 못한다.”(263쪽)
누구나 가슴에 벼랑을 하나쯤 품고 산다. 어떤 나무가 제 속에 도끼를 품고 번개를 품고 살듯이, 벼랑을 품은 삶과 그렇지 않는 삶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낫냐는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내는 것이다. “지상의 그늘들이 포개지는 저녁이 와도 내 산책은 저물지 못했는데. 나는 계속 덧나기만 했어요. 덧난 자리마다 부끄러운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다른 길로 무수히 갈라졌어요. 갈라져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이제 남아 있는 나는 아무 것도 붙잡을 수가 없어요.”(이수명, ‘생의 다른 가지’) 계속 덧나기만 하는 생. 부끄러운 그것마저도 차츰 줄어든다. 생은 줄어듦으로 우연과 시간 앞에서 우글거린다. 우연에 뺏기고 시간에 자발적으로 넘겨준 것, 그리고 남은 것이 남들과 인사말을 나누고 농담을 건네는 현재의 생이다. 그 생으로 길을 만들며 꾸역꾸역 간다. 그 길은 수많은 길들로 갈라지는데, 갈라진 그것들 위로 우리는 벼랑을 품은 생을 밀고 간다. 생의 안쪽은 텅 비고, 애초의 출발점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다 할지라도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