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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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1955~)의 제2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이 19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백석(1912~1996) 시를 옮겨 놓았나. 일전에 불교방송을 통해 눙친, 다소 어눌한 목소리를 익히 들은 바 저 산골짝에 사는 사람 정도로 알았다.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코스모스 전문)에 고스란히 소소한 일상을 토해 냈다.

익히 이성선(1941~2001)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 부분을 빌려다 쓴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은 가히 절창이라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을 불러놓고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줄 수 없냐'고 물어본다.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갈까/ 패랭이꽃 보러 갈까/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수타사 요사채 아랫목으로/ 젖은 발 말리러 갈까/ 들창 너머 먼 산이나 종일 보러 갈까/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비 오시는 날/ 늘어진 물푸레 곁에서 함박꽃이나 한참 보다가/ 늙은 부처님께 절도 두어 자리 해바치고/ 심심하면/ 그래도 심심하면/ 없는 작은 며느리라도 불러 민화투나 칠까/ 수타사 공양주한테, 네기럴/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로 갈까/ 긴 긴 장마('장마' 전문)를 볼 때면 그만 숨이 멎는다. 어쩌면 이리 감칠맛나게 긴 장마를 옮겨 놨을까.

명인(1946~)의 '너와 집 한 채'에서 차운한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는 그의 자잘한 용기를 그려 놓았다. 무릇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라는 계획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으련만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다'니 그의 과작치고 시가 있는 마을에서는 두고 두고 회자될 만한 절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껏 2권밖에 상재하지 않았지만 그가 꼭꼭 숨겨 놓은 아름다운 시들이 많이 있을거라 생각된다. 어서 빨리 세상 빛을 보았으면 한다. 시원한 가을 아침공기 속에 나 또한 지난 여름에 끄적거린 '친구'를 보인다. 이런 걸 시라고 하면 그이에게 뺨이나 안 맞을지 모르겠다.

 유치원에 다녀오던 두 녀석이 싸움이 붙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죽은 매미를 보고 “아가 -, 이 매미는 너-머 많이 울어서 죽은 거여.” “아녀, 이 바보 멍충아. 으띃게 울다 죽은 매미가 있다냐.” “그라믄 여그 죽은 매미 눈구녘 한 본 바 - 봐야. 펑펑 흘른 눈물 자국 안 보이냐.” “아따 -, 그건 울어서 그런 거이 아니고 염전에서 소금가마 지고 오다 흘른 땀 아닌 가배.” “한사코 그건 아니랑게 그래쌌네.” 집이 어른 흉내 내다 갈 생각 잊었다. 이런 싸움 30년 뒤에도 했으면 좋겠다.('친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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