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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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친님의 스토리에서 보고 이건 사서 읽어야하는 책이다. 책 구매를 망설이고 있었는데 고민 싹!

기자라는 말보다 기레기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리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이런 글을 만나면 다시 기억하게 한다. 기자라는 직업군의 역량을! 세상의 문제에 눈과 귀가 열려 있고, 좌로 우로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시선에서 간명하고 적확한 단어로 사실을 전달하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글도 감정적이지 않다. 논리적이고 사실적이며 직설적으로 느껴지는 글이지만, 가슴을 울리는 힘도 갖는 글을 쓰는 사람들. 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 역시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글들.

이 책 17년 기자로 글로 돈을 버는 일에 아주 적임자임을 증명하는 글 솜씨에 세상을 향한 다정하고 따스한 시선을 갖은 한 인간이 좌충우돌하는 자신의 삶을 아주 용기 있고 솔직하게 드러낸 뭐 하나 빠짐없는 호박이 넝쿨째 들어있는 책이다. 거기에 보너스로 유머까지 얹었다.

아직 3월이지만 올해 best 중 하나일 책임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단언했는데 바로 이어 읽은 책의 글도 만만치 않다.. 올 상반기 책들 다 어마어마햐;;;;;;;


개인적으로 에세이 장르의 책을 읽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 나의 맘을 쏙 홀린 에세이라니!!!!
이렇게 멋진 글을 읽으면 리뷰를 쓸 자신이 없어진다. 감히 내가 어찌 이런 책에 리뷰를 남길 수가 있을까? 하지만, 알려야지. 이렇게 좋은 책을 나만 읽을 수는 없다.

한 예술가가 모든 장르에서 최고인 경우는 없는 것처럼, 인간도 모든 장르의 용기를 다 갖추고 있는 경우는 없다. 그저 나의 장르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면 된다. 137p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분투를 통해서만 고귀해진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천부 인권으로서의 존엄과 달리 인간의 고귀함은 획득형질이다. 200p

옳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보상 때문도 아니고, 곤경에 처한 타인을 향한 동정 때문도 아니다. 그저 그 일이 옳기 때문이다. 203p

슬프게도 늘 잘하는 사람은 끝내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에게는 치고 올라가는 반전의 동력이 확보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잘하기 위해서는 못해야 한다는 것. 행복하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시시해야 한다는 것. 이런 생각은 우리에게 놀랍도록 큰 해방감을 준다. 213-4p

웃음은 감정적 거리두기에 기반해 있고, 타인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행위다. 울 때는 혼자 울지만, 웃을 때는 함께 웃는다. 이 집단적 거리두기가 웃음이라는 행위의 수동공격성과 비겁성의 원천이다. 스스로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내부에 설정하지 않는 웃음은,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봉쇄한다. ‘이상한 사람’을 지적하는 동안 자동으로 획득되는 ‘멀쩡한 사람’의 지위에 사람들은 중독돼 있고, 이 사람들의 가장 앞자리에 기자와 교수, 논객 같은 이 사회의 논평가들이 있다. 구조이 바깥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만 드글거리고, 구조 안에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보려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무런 모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 수동 공격적 웃음이 사회에 너무 팽배해 있어서 변화의 동력이 축적되지 못한 채 산산이 흩어진다. 정치의 만성적 예능화, 가혹한 뒷담화와 가학적인 조리돌림 문화가 이 웃음과 연관돼 있다는 오랜 의심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두 팔 걷고 어떤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결연한 투지 대신 웃음으로 농치고 마는 문화, 그래서 싸우자고 덤벼드는 사람들을 더욱 외롭고 슬프게 만드는 이 풍토를 어쩌면 좋을까. 247p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 / 칸트 묘비명
그 무한의 숭고, 영겁의 공포를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여기에서 그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낙담하지 않는 것이다. 알량한 도덕군자로 명랑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장래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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