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루는 6남 3녀의 장남인 고이치의 아들이다. 선생이고 대가족의 장남. 융통성 없고 보수적일 것이라는 추측이 자동이지 않은가? 엄마도 선생님인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학교와 도저히 가까워지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가 태어나 자라고 있다. 배 속의 거품이 점점 더 많아지고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가오루를 막내인 가네사다에게 보내기로 한다. 러시아어를 안다는 이유로 더 혹독한 시베리아 포로 생활을 경험해야 했던 가네사다. 살아 귀국했을 때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 그를 가족들도 외면했었다. 이제는 그저 가정의 큰 행사 때나 얼굴을 보고 지내는 정도의 아주 느슨한 관계인데 어떠한 이유로 부탁을 하는 것일까? 바다가 있는 간사이 지역에 살아서?솔로라서?월급쟁이가 아니라 자영업자라서?가네사다는 온천과 해수욕의 도시, 사리하마에서 재즈카페 ‘오부브’를 운영하고 있다. 오전 11시 반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닫는다. 유일한 종업원인 오카다는 가게를 열면 바로 나타나고 교대 시간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내내 가게에 머문다. 50대까지 혼자 운영했던 이 가게였는데 이제는 가네사다보다 오카다가 가게의 대부분의 일을 많이 넘기고 은퇴한 듯한 마음으로 지낸다. 오카다는 오 년 전 여름의 끝자락에 머리카락도 수염도 오래도록 정리하지 않는 모습으로 온 손님이 이젠 가게의 주요 인물이 된 샘이다. 말수가 적고 센스가 있고 손이 야무진 오카다와 가네사다는 서로의 삶에 대해 말한 적이 없어 어떻게 살아왔는지 서로 알지 못한다. 그냥 오부브에서의 삶이 그들이 서로를 아는 전부다. 그런 담백한 관계 속에 들어간 가오루는 오전엔 바다에 갔다가 오후에 오부브에 들러 잔심부름을 하며 지낸다. 학교에선 무언가 배우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래도 이 가게에선 무언가 ‘배우는 것’을 해보게 된다. 뭔가를 익힌다는 것은 반복 앞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복하는 동안에 발견이 있고 수정이 있다. 발견과 수정에서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시간의 흐름, 경과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연히 몸에 밴다. 가오루는 반복이 싫다. 싫다기보다 잘하지 못했다. 시간의 흐름을 쫓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보고 있는 오카다의 움직임은, 가오루에게 뭔가를 전해온다. 힘들이지 않는 반복도 있어. 그것이 바로 자기를 해방시켜주지 않을지라도, 이렇게 보고 있으면 지루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을뿐더러 강렬하게 매료된다. 자기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151p 도쿄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를 잘 찾아가겠지?당신은 어떤 거품을 품고 있나요?배가 아플 만큼 거품이 가득 차면 어떻게 해결하나요?거품이 당신에게 고통을 주기 전에 조금씩 버려내는 일을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