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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결심 - 내 삶의 언어로 존엄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5년 9월
평점 :
프랑스인과 결혼해서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에세이스트다. <서재 이혼 시키기>로 만난 저자의 글이 좋아, <지지 않는 하루>를 찾아서 읽었었다. 암과 싸우면서도 자신의 일상을 지키고, 글을 쓰는 일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는 저자는 자기 전 몽테뉴를 늘 펼쳐본다고 한다. 저자의 모든 책에 아마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시어머니와의 이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말기암과 중증질환도 아니었던 시어머니는 스위스에서 조력사를 선택했다.
이 무겁고 어려운 일 앞에서 멈칫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조력사, 안락사의 문제에 앞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다정함에 방점이 찍힌 책이다.
친구 없이,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깔끔하게 유지했던 사람에게 닥친 낙상 사고.
그 일은 한 사람의 삶을 주어가 아닌 목적어로 변화시켰다.
눈이 흐려지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삶.
이젠 눈으로 책을 읽을 수 없고, 흐려진 청력에 의존하여 오디오 북을 들어야만 했다.
그것도 내가 원하는 책을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기에 남은 책의 분량을 확인하며 지내야 했다.
시어머니는 고통받는 육체가 타인에게 짐이 되는 삶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선택한 존엄의 방식이었다. 194p
❝넌 이걸 알아야 해. 너를 보는 모든 순간이 나에겐 순수한 기쁨이라는걸… ❞ 136p
시어머니는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서 마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이를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의 고부.
그녀를 돌보러 가는 날. 목요일. 딱 하루로 정해두고 함께 샴페인을 마시는 사이.
누군가의 도움이 필수인 사람이 그들에게 요구한 날은 하루였다.
그렇게 곁에서 보필하는 건 아들 내외였다.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삶보다 자신의 은퇴 후 휴식을 우선으로 놓고 시골에서 휴양 중인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조력사에 대한 이야기를 남매들이 진행하며 저자에게 막판 통보를 하게 된다.
계속 맘을 쓰고, 아파하고, 분노하는 모든 것은 저자의 몫이었다.
이는 문화의 차이인 것인가? 이 남매의 문제인 것인가? 내내 궁금했다.
아마도 시어머니의 깔끔함을 진화해서 물려받은 것인가? 싶기도..
이해가 충분히 되는 그녀의 선택.
하지만 죽음 앞에서 쉽게 이해가 답이 된다는 말을 꺼내기 어렵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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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이란 삶에 대한 맹목성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구차하거나 숭고하거나, 인간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 47p
타인과의 관계는 요구하기, 주기, 받기, 거절하기로 이루어진대. 55p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삶을 밀도 있게 만들지만, 잊을 수 있는 능력, 망각할 수 있는 능력,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속성인지도 모른다. 125p
죽음은 순간이지만, 삶은 과정이다.
슬픈 건 고독한 죽음이 아니다.
어쩌면 외로운 삶이다. 18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