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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 ㅣ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25살의 작가가 출간한 첫 소설집.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 상황.
작가의 나이에 맞춰 작품을 써 나간다는 게 재밌고 신기하다. 20대의 김애란 작가는 조금 발랄했구나. 20대의 김애란은 20대의 사회를 잘 표현했구나. 이 작품이 저자의 작품 중 청각이 가장 자극되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2년 후 발표된 <침이 고인다>를 읽고 나서 판단해야겠지만.
그 시대 그 나이를 대변하는 작가라고 표현해도 되겠구나.
총 8편의 작품. 작품 전반에서 어머니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스카이 콩콩
전파상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의자에 구부정히 앉아 잘 닦이지 않은 안경알 너머로 기기들을 살피며 사느라 허리가 굽었다. 그런 아버지가 키가 큰다는 믿음으로 아이에게 스카이 콩콩을 선물한다. <과학 동아>를 보며 열심히 메모하는 형은 어부지리로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그 덕에 눈이 나빠진 것을 깨닫게 된 아버지는 집에 티브이를 없앤다.
📍달려라, 아비
어머니는 나를 어느 반지하 방에서 혼자 낳았다. 반지하 안으로 햇빛이 들어오던 어느 여름날 잡을 손이 없어 가위를 쥐고 방바닥을 내리찍으며 자기의 목숨 대신 탯줄을 잘라 나를 세상에 내놓았다. 아버지는 그때에도 지금도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어머니를 위해 한 번도 뛴 적이 없다는 아비는 단 한 번 아비가 가여운 생각이 들어 엄마가 몸을 허락하고자 했던 그날 밤 피임약을 사기 위해 달렸다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내 꿈속을 달렸고, 엄마는 택시를 타고 달리며 인생을 살아갔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복어에는 말이다.
사람을 죽이는 독이 들어 있다.
너는 오늘 밤 자면 안 된다. 자면 죽는다.
나는 어른이라 괜찮다.
“근데 왜 나한테 이걸 먹였어요?”
네가 어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어릴 때 이걸 먹고 견뎌서 살아남았다.
// 정월 대보름에 자면 눈썹 하얘진다의 다른 버젼인가 😂
📍사랑의 인사
<세계의 불가사의>를 옆구리에 끼워주고 동네 의자에 앉혀두고 아버지는 ‘잠깐만’이라 말하고 사라졌다. 미아 찾기 방송이 들릴 때면 ‘멍청한 것들 같으니라고!’라고 고개를 젓기까지 하면서 기다렸다. 사무실에 들어가 아버지를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아버지가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
블루월드의 5월은 매우 바쁘다. 그날도 잠수복을 입고, 공기통을 메고, 부력조절기와 진압게이지 등 장비를 점검한 뒤 수조에 들어가는 어려운 일을 했다. 투명한 유리벽 사이로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중년 남자를 만났다.
📍영원한 화자
내가 어떤 인간인가 자주 생각하는 사람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인간에게 망각은 정말 필요한 요소구나. 후회할 일이 이리 많을 수가..
이번엔 아버지가 아닌 딸이 티브이를 볼 수 없게 한다. 티브이는 잘못이 없는데..
📍노크하지 않는 집
서울의 한 대학가 근처의 주택단지 내 건물. 반지하와 1.5,2.5층으로 돼 있는 건물의 가운데엔 5명의 여성이 산다.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공동생활을 유지한다. 화장실도 세탁기도 건조대도 5명이 공유해야 하는 조건. 서로의 동선을 소리로 포착하고, 타자의 사용 흔적으로 서로를 판단하며 살아가는 다섯.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 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편의점에 간다. 그곳에서 나는 깨끗한나라 화장지를, 이오요구르트를, 동대문구청에서 발매한 10리터용 쓰레기봉투를, 좋은 느낌 생리대를, 도브 비누를 산다. 그들은 내가 어떤 것을 먹는지, 생리 주기는 어떤지, 성 생활까지도 포착이 가능하다. 그런 그들이 친한 척을 한다면?
📍종이 물고기
고심하고 고심한 문장으로 온 집을 도배했는데 집이 무너졌다.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단편소설추천 #20대의이야기 #20대의김애란 #단편장인 #한국문학추천 #북스타그래 #한국대표작가
지하철이 막 출발하기 전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도에 관심있는 자’에게 잡혔을 때 대꾸 않는 사람인가 웃으면서 사양하는 이인가, 나는 지구에 외계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이인가, 나는 콩이 들어간 밥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이인가 대답을 지닌 나에게 이제 막 출발하려고 하는 열차는 그냥 보내야 하는 대상이었다. 129p
그녀는 사람들이 A를 그냥 A라고 말하지 왜 C라고 말한 뒤 상대방이 A라고 들어주길 바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73p <— 요런 화법 남자들이 참 어려워하죠. 🤣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종종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난다. 밤마다 자기 방에서 엠티라도 여는 듯한 4번방 여자의 소음. 내가 공용 보일러 온도를 내릴 때마다 다투듯 온도를 다시 올려놓는 3번방 여자의 이기심. 빨래 걷어주는 건 싫어하면서 자기가 걷는 것도 아닌 2번방 여자의 게으름. 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너무 커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5번방 여자의 덜렁댐. 그러면서도 그 누구도 항의하지도 변명하지도 않는, 사실은 눈과 귀를 모두 열어놓고 사는 1,2,3,4,5. 우리는 너무 가까이 살고 그러므로 너무 멀다. 19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