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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찬와이 지음, 문현선 옮김 / 민음사 / 2025년 5월
평점 :
개인적으로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만나는 일을 좋아한다.
우산 혁명 :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15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1997년 중국(덩샤오핑 시절)에 반환된다. 중국의 특별 행정구로 자체적으로 나라가 운영될 것으로 약속되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간선제 예정//친중파 당선이 용이한 구조)를 주민 투표로 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가 2014년부터 시작됐다. 최루탄과 과도한 진압을 우산으로 막은 것을 두고 우산 혁명이라 불리게 된다.
1997년 6월 25일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일주일 전. 탄커이는 처음으로 실연을 맞본다. 하지만 곧 극복한다. 바로 그날 12살 차이 나는 동생 탄커러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탄커러가 좋았다. 당시엔 몰랐지만 엄마의 산후 우울증으로 동생을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탄커이가 할 수 있었다. 아빠의 사진 덕분에 둘의 사진이 많이 남았다.
엄마가 꽤 오랜 기간 산후우울증을 앓다 회복하여 탄커러를 제대로 돌보게 되며 질투심을 느낀다. 부모는 자주 싸웠다. 그런 순간 커러는 내 품을 달려왔다. 하지만 커이도 때론 엄하게 굴었다. 그런 모든 일들은 커러에게 상처가 되었던 것일까?
아빠는 외삼촌과 함께 연 약국으로 바빠졌고, 생각보다 돈벌이가 잘 되면서 엄마까지 바빠졌다. 커이는 대학에 진학하며 독립했고 엄마 아빠와 벌어진 사이를 좁힐 기회가 없었다. 커러는 우리 집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하는 커이와는 달리 부모는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끝없는 잔소리를 퍼부었다.
커러는 학교가 아닌 시민광장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커러가 걱정이 된 커이도 애드미럴티에 더 자주 나가게 됐다. 일과 시민과장을 오가며 사는 일.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일이었다. 그렇게 더 자주 커러와 함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커러는 더 이상 커이 곁에만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부모에게서 일찍 떠나온 커이가 부모에게 품은 감정과 커이와의 감정에도 온도차가 있었고, 대학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떨어져 있었던 시간만큼의 커이를 다 알 수는 없었다.
다 막고 있는 줄 알았다. 커이만큼은 나쁜 것을 보고 듣지 않고 바른 아이로 자라라는 훈육을 잘 받아들여 자란 줄 알았다. 부모의 싸움, 이혼, 그 와중에도 바름을 가르치는 엄격한 누나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격동기인 나라에서 성장했던 커러는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앓고 있었다.
매일 죽음과 싸우는 나날
지독한 우울증과 버티는 하루하루
그건 홍콩 그 자체였고,
커러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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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는 빙빙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맞지만, 사랑이 없는 솔직함은 이기적인 행동에 불과하다. 관계 속에 책임만 남아 모든 논쟁이 공평한지 아닌지만 따지게 되면 전부 잿더미가 될 뿐이다. 99p
유치원에서 배운 일들을 잊지 마. 시간 보는 법과 서로 다른 지폐와 동전 구분하는 법.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남들과 장난감을 다투지 않고 공유하고 친구한테 ❝미안해. ❞, ❝고마워. ❞, ❝사랑해. ❞라고 기꺼이 말하는 것. 그게 뭐겠어? 그게 시간이고 돈이고 사랑 아니겠어? 133p
120시간에 불과했지만 홍콩은 이미 예전의 홍콩이 아니었다. 엄마는 놓친부분을 영원히 만회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엄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조각을 잃어버렸다. 그걸 놓친 사람들은 군중이 직접 체험한 흥분과 경이를 평생 상상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 작은 섬에서 15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니까. 그 닷새로 사람들은 각기 다른 홍콩에 사는 것처럼 갈렸다. 168p
처음에는 그냥 아무려면 어떠냐는 생각이었어. 어차피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까 너무 따지지 말자고. 어쨌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좀 편안하게 만들어 주자고. 그게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어. 거리의 사람들은 좀 봐봐. 하나같이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잖아. 그래, 여기는 홍콩이니까. 하지만 조금 전 아주머니만 해도 여전히 남한테 웃어 주잖아. 나는 사람 기분을 달래 주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찌푸린 사람들이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야. 기분을 잘 맞춰 준다기보다 장난을 좋아한다고 할까. 나는 이미 카뮈의 『 이방인 』 속 마지막 부분처럼 “세상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지경에 이른 것 같아. 설령 지더라도 소위 말하는 현실과 운명을 비웃고 싶어. 27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