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의 인사 소설, 향
장은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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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 씨, 냉장고를 부탁해. 화분도. - 세주

세주는 일 년 전에 헤어진 여자 친구였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던 것이 이런 사태를 불러왔다. 내일부터 시작될 여름휴가를 집에서 여유롭게 보내려고 문을 열었는데 그를 기다리는 건 산타클로스 복장의 빨간 냉장고였다.
세주 집에 있을 때엔 술장고로 사용되던 냉장고. 그리고 실내 공기를 맑게 해준다는 문샤인 산세베리아. 그녀는 왜 이걸 침대 옆에 두고 간 것일까? 그녀의 친구를 통해 자신뿐 아니라 세주의 친구들도 세주의 물건과 화분 하나씩을 선물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맡겼으니 잘 보관해야겠지! 화분에 물도 듬뿍 주고, 햇살 가득 받으라고 화분을 밖에 내어두었다. 덕분에 하루 사이에 입이 노랗게 변했다.. 😳
휴가 내내 집에서 뒹구르르 하리라는 결심을 깨고 근처 꽃 가게로 향했다. 물을 자주 주어서도 안 되고, 햇살을 직접 받게 해서도 좋지 않다고 했다. 드물게 아이보리빛 꽃을 피우기도 하는데 꽃말은 ‘관용’이란다.
침대 옆에 자리 잡은 화분과 냉장고 가득 채워진 세주의 가장 아끼는 물건인 책들을 읽으며 휴가를 보내는 세진은 책을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지만, 금방 책에 빠져들게 됐다.

냉장고와 책, 화분을 맡기며 급하게 남긴 메모의 끝에 ㅁ은 무엇이었을까?
몹시 보고 싶어.
#멀리떠나도다른건없다

세상의 끝을 보고 돌아와 화분을 맡긴 친구네 집을 돌아다녔다. 누군가는 너무 열심히 누군가는 그냥 방치해서 건강한 화분으로 남아있는 것은 마지막 동하네가 유일했다. 건강하게 쑥 자란 화분과 자신이 가장 아끼던 책은 동하가 친 밑줄이 더해져 있었다.

만약 갈 데가 없으면 모레까지 지내. 지방 출장이 있거든.
#머물게해줘서고마워.
#문득세계의끝을보고온너의눈이궁금해졌어
#먼훗날에라도보여줄수있기를
#무엇이있을까세계의끝에는
#모든세계의끝에는시작이있어

ㅁ으로 시작된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메시지로 화분을 다시 돌려달라는 글을 만나 놀라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서로의 다름의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헤어진 둘은 뒤늦게야 서로의 아픔과 다름에 대해 듣게 된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 둘. 서로의 아픔을 서로의 다름을 왜 그때는 얘기하지 못했을까?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신간도서추천 #아픔을감추고사는사람들 #냉장고책장이라니 #중편소설추천 #젊은작가추천 #한국문학 #가독성좋은도서 #북스타그램


동하가 밑줄 친 문장만 계속 찾아서 읽었더니 세주는 마치 새 책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해서 여러 번 읽은 책인데도 이런 문장이 있었나 갸웃할 정도로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삶이 고단할 때마다 몸을 기댔던 책이었는데. 별것도 아닌 문장 한 줄에 삶이 정당해지기도 했는데. 전부라고 생각해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는데. 제자리에 머무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듯 특별하고 소중했던 것들도 결국은 잊히고 평범해져서 낯선 곳으로 흘러간다. 67p

나는 시간의 힘을 믿는다. 믿기 위해서는 먼저 지키고 아껴야 한다 시간은 운명을 바꾸고 인연을 변화시키니까. 1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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