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안보윤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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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개를 돌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힘들고 더러워요. 개의 상태에 따라 갑자기 야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물리거나 긁히는 일도 자주 있을 겁니다. 죽어가는 개들을 매일 들여다보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죠. 비위는 좋으신가요? 체력은요? 마음은 건강합니까?
44p

구원장은 그렇게 물었고, 나는 어떻게든 이 일을 하고 싶었다. 페이가 높았으니까.

나 전수영의 삶의 현실은 3년 동안 쿠팡에서 미친 듯이 일한 덕에 어깨의 인대가 끊어져서 잘렸다. 그렇게 모은 돈은 전세 사기를 당해서 몽땅 날린 상태다. 그리고 진짜 미친 인간이 분명한 전수미가 사람을 죽였단다.

언제나 상상 이상의 사고를 치는 인간인 전수미는 전수영의 연년생 언니다. 생물학적으로 언니가 맞지만 주로 씨발 것이나 수미년 정도로 부른다. 언제나 삶의 중심에 자신을 넣어야 만족하는 전수미가 행하는 짓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런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기에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수미를 향한 분노가 언제 수영을 향할지 알 수 없었다.
부모는 수미 하나를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수영은 그냥 조용히 살아가야 했다.

구원장이 차린 돌봄 센터는 늙은 개, 늙고 병든 개, 늙지는 않았지만 병든 개 열 마리를 돌봄과 치료를 병행하는 반려견 호스피스다. 수의사가 상주하는 노견 케어 시스템. 24시간 CCTV 여섯 대가 천장에 가동되는 곳. 이 얼마나 믿을만한 곳인가?

개들은 모두 조용하고 안전하게 죽는다.
사랑하는 주인의 품에서
대부분 금요일 밤에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주어지는 주말 전 금요일.
개들은 그 시간에 죽음을 맞는다.
딱 주인이 안타깝게 애도할 감정이 남아 있는 정도에서,
충분히 병원비를 지불할 능력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이번에도 조용히 살아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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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내주고 싶어서 일부러 센터에 돈을 내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개가 너무 오래 살아서 돈이 부족해지면, 곤란한 마음도 들지 않겠어요? 개는 계속 늙고 더 많이 아프고 케어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언제까지인지도 모를 긴 시간 동안 계속 돈을 지불해야 한다면요. 그만하면 너도 나도 할 만큼 했다. 이제 그만 건너가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게 되지 ㅇ낳겠느냐고요.”
“그럴까?”
“긴병에 장사 없다잖아요. 진저리 치게 될 때까지 좌두는 것보다 이게 훨씬 인간적인 방법일지도 몰라요. “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그러니까 인간적이기만 한 선택이다. 인간적이라는 건 이기적이라는 뜻이니까. 그 선택 속에 개의 입장은 당연히 없다. 57p

나는 매일같이 노력했다. 전수미와 살면서 유일하게 배운 것은 그것뿐이었으니까. 3월에는 벚꽃을 9월에는 보름달을 12월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려 넣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살았다. 악착같이 버티는 사람이 제일 참담하게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전수미에게서만 벗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전수미가 있었다. 나는 세상 모든 곳의 뒷면이었다. 온 세상이 내게 전수미였다. 117p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사는지 알아? 나는 인터넷도 안 하고 씨발년들이 술을 따라주는 주점에도 안 가. 노래방도 안 간다고. 내가 다시는 그러지 않으려고, 와이프는 도망갔고 아들 새끼는 나를 인간 취급도 안 하니까 내가 진짜 이번에는 똑바로 살려고 기를 쓰고 있는데, 꼭 너 같은 년이 나타나서는!“ <—— 전수미도 전수미지만 이 새끼 진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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