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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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그녀가 물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중략)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네가 이미 나를 살린 적 있다는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120p

시사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승준은 최근 아이가 태어나 육아 휴직 중이다. 또 다른 세상을 알려준 지유를 돌보는 일상 중 선배로부터 인터뷰 한 꼭지를 부탁받는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여성을 인터뷰하여 책을 엮는 프로젝트 중 하나를 맡아달라는 것. 아내는 그런 승준의 일을 반대하고 나선다. 아이에게 좋은 것만 채우고 싶어 하는 마음에 승준까지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말하기를 원했다.

승준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단지 반장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오래도록 결석하던 한 아이의 집에 방문하게 됐고, 웅크리고 있는 그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노력? 은 아니었지만 하교 후 한동안 아이의 집에 방문하게 됐다. 아이의 부탁은 딱 하나.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학교에 알리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승준은 자신의 집에서 먹거리 등을 챙겨 아이의 집에 여러 번 방문했었다. 그중 아버지 소유의 카메라도 한 대가 포함되었다.

카메라는 권은을 일으켰다. 결국 카메라로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하며 살게 됐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 우연히 둘은 성인이 되어 인터뷰 자리에서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승준은 당시 권은을 분쟁 지역의 기록을 하는 사진 기자. 딱 그렇게만 알고 있었고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시리아에서 다리를 잃은 사진 기자. 그 기사를 보고 병원에 찾아간 승준. 자신이 건넸던 사진기가 그녀의 다리를 잃게 한 것은 아닐까?

다리를 잃고 분쟁지역에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된 권은은 한 영국인의 도움으로 영국에 거주 중이다. 드레스덴 폭격이 있을 당시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와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쟁의 무용함을 적극 알리려는 오빠를 둔 애나의 도움이었다. 영국에 거주 중인 권은과 승준은 이메일로 소통하게 되면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임산부 나스차가 무사히 출산할 수 있게 도와줄 인연들을 연결하게 된다.

남편과 이웃을 두고 출산을 위해 홀로 떠나야 하는 나스차, 분쟁 지역에서 무사히 탈출하지만 타국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살마, 전쟁에 참전해서 고통스러웠던 삶을 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평생 화해하지 못하는 오빠를 둔 애나, 홀로 남겨진 은에게 아버지의 냉정함에 치를 떨던 아내에게 다정함을 건넨 승준, 이스라엘 시리아 등의 분쟁 지역의 상황 등이 펼쳐지는 답답하고, 아프고, 다정하고, 고통스럽고, 따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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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는 아버지가 군인으로서 범한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뒤에 조작되고 의도된 아버지의 무지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건 아이었을까. 알마마이어가 게리와의 이너뷰에서 한 말 - 무지를 무죄로 활용한 사람들을 향해 천진한 기만이라고 했던 그 말을 들으며 게리는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110p

가령 미국의 폭격에 많은 국민을 잃은 이라크는 다른 곳에서는 쿠르드족을 죽였다. 삼백 년 넘게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은 인도네시아는 약국의 슬픔을 어느 나라보다 잘 알 텐데도 동티모르를 공격했고 인구의 사분의 일 이상을 학살했다. 이십 세기 들어 가장 처절한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들은 테러릿트를 차단하고 솎아낸다는 명목을 내세워 그 위로 고압 전류가 흐르는 팔 미터 높이의 장벽을 세웠고 가자기구에 주기적으로 폭탄과 미사일, 로켓을 투하해왔다. 무기에는 테러리스트와 민간인을 식별할 능력이 없는데도,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을 한 명이라도 죽이는 게 꿈인, 고작 그런 것을 꿈이라고 믿는 소년과 소녀들을 키워낼 뿐인데도, 그들 중 일부는 몸에 폭탄을 두르고 이스라엘 군인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테러가 아니라 신앙이라고, 아니, 사랑의 경지라고, 자신의 몸이 신전이 되어 순교할 기회를 얻은 것뿐이라고,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177p

김하나 작가의 추천 글에 적극 공감한다. 어쩜 이렇게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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