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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가 들려주는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정지아 지음, 박정은 그림 / 마이디어북스 / 2024년 5월
평점 :
아이들을 키우며 읽게 된 <강아지 똥>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따스함을 잊을 수가 없다. <몽실 언니>와 같은 작가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강아지 똥의 작품이 너무 좋아 친구와 이야기하다 작가의 말년 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주 가난했고, 아픈 몸으로 평생 교회의 종을 치던 사람이라 했다. 나에게 권정생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작가의 생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인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작가 정지아 작가가 들려준단다. 좋은 형용사를 다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기쁨인 거다.
1937년 일제 강점기에 5남 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정생. 마음이 따스하다 못해 투명한 그에게 이 시대의 삶이 어떠했을까? 살자고 일본으로 가족이 떠나며 함께하지 못한 둘째 형 목생의 죽음. 해방 후 다시 조국으로 돌아올 때 헤어진 두 형. 언제나 이별과 아픔. 부당함과 고통에 놓인 이들을 흔히 만나던 시절. 그 시절을 관통하며 헤어짐에 죽음에 마음이 시리던 정생은 강아지 똥을 보고도 위안을 찾는 사람이었다.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똑똑했던 정생은 초졸을 마지막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가난은 언제나 그들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었기에 .. 먹지도 제대로 쉬지도 씻지도 못해서 그랬을까? 정생과 같은 마을의 젊은이들 여럿이 폐결핵을 앓다 죽는 경우가 흔했다. 정생도 이른 나이에 폐결핵으로 평생을 고생한다.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하나 남은 동생의 결혼을 위해 가정을 떠나야만 하는 정생. 아픈 몸으로 집을 떠나는 그 심정은 어땠을까?
한시바삐 죽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절.
가난했고, 아팠고, 슬펐고, 고통스러웠지만 따스했던 사람.
그 다정함이 이 땅에 남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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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본 사람도 조선 사람도 똑같은 사람인데 왜 누구는 높아지고 누구는 낮아지는 걸까? 해방이 된 다음 날부터 일본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에게 비굴하게 굽신거리고, 조선 사람들은 기가 살아 씩씩해졌다. 정생은 비굴한 일본 사람도 씩씩한 조선 사람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생에게 사람은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54p
“저, 집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만두겠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정생은 몇 달간 일한 구멍가게를 떠났다. 주인은 남을 속여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지만 정생은 그런 주인보다 깜빡 잊고 돈을 기어이 다시 갚으러 온 가난한 아주머니가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가난이 고달프다는 것을,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 것인가를, 정생은 그 누구보다 뼈저린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난해도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자기 몸을 떼어 가난한 사람을 도운 저 행복한 왕자처럼. 80p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낙엽도 거지도 하다못해 개똥도. 정생의 얼굴에 맑은 미소가 번졌다. 병과 함께해 온 보잘것없는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 아픔과 슬픔이 정생의 마음속에서 썩어 거름이 되어, 민들레 꽃을 싹 틔운 개똥처럼 수많은 사람을 웃고 울리는 이야기를 싹 틔웠다. 정생은 평생 자기 몸을 갉아먹은 결핵균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었다. 결핵균 덕분에 정생은 한없이 자기 몸을 낮춰 못나고 가난하고 불쌍한 것들을 품을 수 있었다. 181p
서평도서
도서 지원 받아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