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판)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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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40주년 기념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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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의 맛! 지켜지면 좋겠습니다.

동대문의 시장 바닥에서 사장님 소리를 곧잘 들으며 지내다 감방 신세까지 진 경험이 있는 종술은 꼿꼿한 기세가 대단했다. 농사꾼에서 어쩌다 부를 이룬 최 사장은 사촌의 권유로 저수지를 양어장으로 만들어 운영 중 감시원 자리를 종술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의 막무가내 성격이 감시원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동네 이장인 익삼 씨를 통해 최 사장과의 만남에서부터 기세 하나 꺾이지 않는 종술은 완장이란 말에 감시원 자리를 수락하고 이곡리 일대를 온통 휘젓고 다니며 으스대기 시작했다. 완장으로 아비를 잃은 줄을 모르는 종술의 완장은 어미인 운암댁의 가슴만 불안하게 만들었다.

품팔이를 하며 아들과 손녀를 돌보고 사는 어미가 해주는 밥이나 얻어먹고, 그 밥 알맹이 곤두서지 말라고 옥골선풍 활량 행세로 낚싯대 담그고 방주까에 나 앉아 있던 종술이 완장 하나 팔에 차고 감시원으로 변신했다. 자신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막무가내로 익삼 씨를 패대기치던 과거는 과거일 뿐… 숨 한번 고르 쉬어야만 나오는 ‘공유수면관리법’을 외치며 관리자로 변신한 종술.

계속되는 가뭄에 농사꾼들의 속은 타고
마을에 있는 저수지는 사유지가 되고,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완장 찬 종술은 저수지를 목숨처럼 지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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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장은 원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만석꾼의 권력을 쥔 진짜 주인은 언제나 완장 뒤편 안전한 곳에 숨어 있었다. 그 엄청난 땅덩이를 혼자서 관리할 수도 없고 미천한 소작인들을 상대로 언성 높여가며 손수 도조를 거두러 다니기도 귀찮을 뿐만 아니라 체통이 안 서는 일이니까 중간에 마름을 세우거나 머슴을 부리는 형식이었다. 완장은 대개 머슴 푼수이거나 기껏 높아봤자 마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완장은 제가 무슨 하늘 같은 벼슬이나 딴 줄 알고 살판이 나서 신이야 넋이야 휘젓고 다니기 버릇했다. 139p

- 땅도 완장이었다. 없는 땅, 처자식 먹여살리는 데 턱없이 부족한 땅 때문에 여태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려왔던가.
“돈도 완장이고, 지체나 명예도 말짱 다 완장이여.” 191p

“잘 간수허소. 자네도 한번 맛을 들인 담부터는 완장이란 것이 어떤 물견인지 알게 될 것이네. 완장이 없으면은 어떤 놈이 권력 있는 놈이고 어떤 놈이 권력 업는 놈인지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그렇기 땜시 세상에서는 표시가 나라고 완장 같은 물견을 맨들어서 권력을 분간허게코롬 규칙을 정한다네. 똑같은 사람이면서 누가 누구 머리 우에 서고 누가 누구한티 큰소리를 친다는 게 그렇게 떡 먹딧기 쉬운 노릇은 아니니.“ 283p

”종술이는 듣거라. 본시 우리나라는 완장이란 게 없었느니라. 옐부터 우리가 팔에다 차는 게 있었다면 그것은 삼베로 맨든 상장 정도가 다였느니라. 상장이 어떤 것인지 너는 아느냐?“
”초상났다고 애고대고 곡헐 적에 요새도 많이들 찹디다요.“
”죄인이라는 증거다. 집안 어르신을 돌아가시게 맨든 죄를 만천하에 자복허는 뜻으로다가 사람들은 상장을 둘렀다. 죄인이 부정을 멀리허고 매사에 근신허게코롬 상장을 둘리워서 일반인 들허고 확연허니 구분을 지었다. 본시 우리가 조상님네로부터 물려받은 완장은 이렇게 미풍양속에서 시작된 것이니라.“
”완장도 여러 질이지요.“
”니 말이 맞다. 오나장도 완장 나름인 벱인디, 니가 시방 차고 앉었는 그것은 말허자면 왜놈들 찌끄레기니라.“ 346-7p

사투리의 맛
“모심을 적에도 기계로 덜덜덜, 추수헐 적에도 기계로 덜덜덜 밀어 제끼는 것이 농사냐? 새참이랍시고 빵쪼가리나 깨물고 우유 봉지나 쪽쪽 빠는 그런 것도 농사여? 차라리 오장육부 대신 뱃속에다 발동기를 들여앉히고 사는 편히 휘낀 실속 있겠다. 암톨쩌구가 수키와한티 개가헛딧기 사람이 그렇게 칫수도 안 맞는 기계허고 가차이 지내는 건 농사가 아니다. 거머리 떼한티 선지 빨려감시나, 논두렁에 앉아서 고봉밥 틉틉헌 막걸리 곁들여감시나 짓는 것이 진짜배기 농사니라.”

나의 완장은 무엇인가?
어떤걸 벗어던져야 하는가?
남의 눈에 가관인 완장 내려두고 겸손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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