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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빨리요, 빨리!”
“싫어요. 전 안 돌아가요.”
“당신들 세 사람 사이에 어떤 사정이 있는진 몰라도 그 아들은 지금 죽을지도 몰라. 그래서 만나고 싶어하니까 찾으러 온 게 아냐? 그냥 돌아가. 평생 후회할 거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숨이라도 끊어지면 어떡할 거야? 고집부리지 말고 깨끗이 잊어버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오해하고 있어요.”
“당신이 도쿄로 팔려 갈 때 배웅해 준 오직 한 사람 아냐? 가장 오래된 일기에 맨 먼저 써 놓은 그 사람의 마지막을 배웅하지 않는 법이 어디 있나? 그 사람 목숨의 맨 마지막 장에 당신을 쓰러 가는 거야.”
“싫어요, 사람이 죽는 걸 보는 건.”
일본어로 읽어야 설국의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일까?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인물과 힘을 툭 빼고 사는 인물 사이의 감정을 오가기가 쉽지 않았다.
(둘을 섞으면 참 좋겠구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3지역을 가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눈의 고장인 북쪽을 다녀온 적이 없어 나의 상상력은 전적으로 ‘오겡끼데스까~’를 떠올릴 수 있는 <러브 레터>를 떠올려야 했다.
일단, 중심인물인 시마무라. ㅋ ㅑ 인생 참 부럽네!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사람.
도쿄에 집이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
서양 무용에 대한 글을 쓴다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읽지 않았으면~ 하는 책을 쓴다니..
무직!이 체면상 그래서 하나 얹어둔 정도랄까…
눈의 고장 온천마을 단풍으로 유명한 기차역이 있는 이 마을에
정기적으로 들르는 시마무라.도쿄에서 게이샤로 지내던 고마코와 만나게 된다.
한 남자의 요양비를 벌기 위해 팔리듯 도쿄에 가서 게이샤가 되고
지금도 여전히 게이샤의 신분으로 돈을 갚는 삶을 살아가는 여인.
치열하게 빨리 갚고 털어낸다는 생각보단
좀 천천히 적당히 워라밸(?)을 유지하며 갚아나갈 생각이란다.
게이샤로 팔려 요양비를 보탤 누군가가 아니라
이 지역에 여행차 오가는 시마무라를 향한 그녀의 애정.
과하게 업이 되기도, 차분해지기도 하는 이 여성의 내면은 어떤 상황인 것인가?
기차에서 만난 기묘하게 아름다운 눈을 갖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은 요코.
꼭 엄마가 아들에게 하듯 헌신적으로 병자를 돌보는 모습과
동생을 걱정하는 당부를 거듭하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요코는
고마코와 함께 그의 마음에 자리한다.
각자의 방법으로 돌보던 사람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고마코는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며 시마무라를 배웅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몸을 팔아가며 돌봤던 자의 죽음은 고마코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요코가 맑고 투명함으로 그려졌다면
고마코는 그와 대비적인 이미지를 갖기도 같은 이미지를 갖기도 한다.
결국 떠나려는 마음을 먹은 시마무라 앞엔
여러 가지 의미의 ’안녕‘이 놓인다.
요코가 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니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부르리가 왠지 꺼려졌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닿았다. 그는 코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이러한 모습을 무심히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코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110p 가을이 쌀쌀해지면서 그의 방 다다미 위에는 거의 날마다 죽어 가는 벌레들이 있었다. 날개가 단단한 벌레는 한번 뒤집히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벌은 조금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걷다가 쓰러졌다. 계절이 바뀌듯 자연도 스러지고 마는 조용한 죽음이었으나, 다가가 보면 다리나 촉각을 떨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들의 조촐한 죽음의 장소로서 다다미 여덟장 크기의 방은 지나치게 넓었다. 113p (다시 읽으니 마지막과 이어져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