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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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보라 작가의 작품을 겁내하는 나는 아직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말 좋다. 아니 이렇게 심오한 이야기를 이런 유머와 함께 풀어낼 수가 있다고? 이 작가 천잰데???
분명 띠지에 자전적 SF소설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부분이 자전적인 이야기지? 의심을 품으려 읽어 나갔다. 작가의 프로필을 책을 다 읽고 있은 나 😅😅
책은 장애, 노동, 기후와 상태 등의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정규직 시간 강사이며 노동 운동을 하는 주인공과 노동 운동 중에 만나 부부의 연이 된 남편. 그들이 만나는 기이한 생명체들은 기후 위기를, 그 위기를 만들어 내는 인간들(특히 특정 나라들)을 암 투병을 하는 남편을 그 와중에 다친 시어머니의 돌봄, 바다를 평생의 일터로 삶의 장소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처한 현실 등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너무 유머를 가득 뿌려둬서 웃지않을 수가 없다.

🔖 문어
지구 - 생물체는 - 항복하라
새벽에 대학교 복도에 출현한 문어. 아 이렇게 싱싱한 놈을 대학 복도에서 만나다니~ 노동 운동을 하던 위원장은 자다 깨서 끓여 드셨다. 맛있게~ 그저 교육의 공공성 확보와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 해방과 지구 평화를 위해 싸우는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인데 어쩌다 그들이 끓여 먹은 문어는 지구의 정보를 빼앗으려 외계에서 온 생명체라는 것?? 이들은 영웅이 되는 것인가? 그런데 대접이 영…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의 정체는 !

🔖 게 // 개인적으로 너무 재밌었던 작품
수산 시장에서 만난 러시아어로 도와달라고 외치는 게!
푸시킨 소설에 나오는 ‘에브게니’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 게님. 하필 러시아문학 전공자인 주인공과 만났으니.. 이 에브게니는 사실 러시아에 고용된 노동대게로 바다 속 가스관을 건설하고 있단다. 이 건설에 협조하면 깨끗하고 추운 곳으로의 이주를 약속했다는데, 칩이 박힌 다리를 발견하고 추적하다가 잡혔다는데…
소주를 앞에 두고 노동 운동에 대해 전수하는 남편

중간에 낀 나는 죽을 지경이었다. 술 취한 호모사피엔스와 술 취한 러시아 갑각류에게 노동운동과 조직화에 대해 동시 통역을 해줘야만 하는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필 것이라고는 평생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몇 년 전에 검도 관련 술자리에 불려 나가 러시아인 검도 사범에게 러시아어로 신라의 화랑오계를 설명해달라는 한국인 사범님의 난데없는 요청을 받은 적은 있었는데 화랑오계가 뭔지 한국어로도 잘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내가 술을 마셨더니 일단 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그때는 그것이 러시아 전공자로서 내 직업 경력 최대의 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조금 더 심각했다. 62p

“쟈는 집에 안 가나?“
어머니가 다시 안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물었다. 나는 노동 문제에 대해 상담하는 중이라서 아마 좀 오래 걸릴 것 같다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노동 문제? 데모하고 그런 거가?“
”쟈(남편을 뜻한다)는 교수가 될 줄 알았는데 빨갱이가 돼가지고 데모하는 게 뉴스에 나오더니 이제는 게한테까지 데모하는 걸 가르치고 남세스러워서 원….“

🔖상어
필수 돌봄의 가치, 펜데믹의 병원, 막다른 길목에 선 사람들에게 ‘기적의 만병통치약’을 판매하는 것들! 잘 돌려보냈다는 에브게니? 다시 만났다? 러시아어를 하는 게님 또 등장

🔖개복치
“돌고래가 계속 밀치면 개복치가 어떻게 하는지 알아?”
“몰라.”
“그거 개복치 학명이? 몰라 몰라(Mola mola)

🔖해파리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로 파괴되었던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바닷물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오징어나 문어, 게 등이 잡혀야 할 해역에서 해파리만 잔뜩 잡힌다.

🔖고래
인류세(Anthropocene) 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지구 환경이 변화하는 지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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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p중반에서 시작된 한 문장은 17p 중간에서 마침표를 발견할 수 있다.
작가님 시어머니와 남편 분의 안녕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랍니다.
@rabbithole_book 출판사 단편집 기획자님과 나의 유머코드가 맞는건가? <화성과 나>도 이 작품도 완전 제 스타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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