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붕대 감기 ㅣ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짧은 분량에 비해 많은 인물이 나오는 책이다. 여기서 이 인물들로 이야기가 진행되나? 싶으면 그와 관련된 인물들로 또 퍼져나간다. 남자가 배제된 책. 같은 여성이지만 서로 입장과 처지가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
일이 너무 바빴다. 시부모님과 남편이 교회 수련회에서 눈썰매장에 갔다던 아이는 잘 놀았다는데 갑작스레 열이 나기 시작했고, 그대로 아이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지 못한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의 곁에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미용실에 와서도 단답형의 대답 외에 말을 하지 않고, 책만 보던 여자. 아이가 미용실을 시끄럽게 떠들며 다녀도 제대로 통제하지 않던 여자. 남들과 차별화 된 삶을 추구했던 여자인 은정은 그렇게 자신이 직장맘의 삶을 살았던 것을 후회하는 일이 발생한다.
고등시절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바른다는 이유로 소문이 돌고 왕따를 당했던 세연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진경이었다. 교련시간 서로 짝을 이뤄 붕대감기 실습과 시험을 봐야했던 시간. 자신의 짝이 되어준 아이. 잠시 관계가 끊어졌다가 페북을 통해 다시 만나 관계를 이었지만, 서로의 입장이 달랐다. 육아자와 미혼인 차이.
여성의 권위를 여성의 자리를 찾기 위한 시위대에 속해 있지만, 자신의 직업이 미용인지라 그 사이에서 괴로운 지현.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일이 잘못된 일인가? 그걸 지탄해야만 하는걸까?
-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지 못했다. 그것을 숙고하는 데 들일 시간과 집중력과 에너지가 없었다. 타인이 선택을 하고 먹기 좋게 만들어 입에 직접 떠 넣어줘야 소비를 했다. 8p
- 머리를 자르는 일, 단백질을 먹고 소화시켜 머리카락으로 바꾸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그 일 자체에는 잘못이 없었다. 그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외의 시술들이 갑자기 낯설고 이상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산업의 어디까지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여성을 아름다움에 억지로 묶어 자유를 빼앗는 일일까. 지현은 구분할 수가 없었다. 37p
-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69p
-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다가, 무언가를 하니까 또다시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연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미움이야. 가진 것이 다르고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고 해서 계속 밀어내고 비난하기만 하면 어떻게 다른사람과 이어질 수 있어? 그리고 사람은 신이 아니야. 누구도 일주일에 7일, 24시간 내내 타인의 곹오만 생각할 수 없어.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니? 너도 그럴 수 없는 걸 왜 남한테 요구해?
- 우린 이제 어른이잖아. 언제까지나 무임승차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최소한의 공부는 하는 걸로 운임을 내고 싶을 뿐이야. 어떻게 운전을 하는 건지, 응급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배워둬야 운전자가 지쳤을 때 교대할 수 있잖아. 너는 네가 버스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 우린 결국 같이 가야 하고 서로를 도와야 해. 그래서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 남자들에게는 하지 않는 기대를. 156p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사라지면 좋겠다.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으니 연대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서로 다름은 당연한 것이니 그걸 뛰어 넘는 공존의 힘이, 서로의 차이를 견디는 우정이 넘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