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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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의 글은 참 여운이 길어요. 이번 책은 얇은데 여운은 역시나 깁니다. 글을 어떻게 이렇게 쓸 수가 있을까?읽을 때마다 감탄하는 작가의 글.

둘째 미연이 7살쯤 다른 여자와 살러 집을 떠난 아버지. 정연과 미연을 키우느라 인천에서 기사식당을 했던 엄마는 미연의 대학 입학 후 자신의 고향인 작은 마을 J읍으로 돌아가 칼국수집을 운영하며 지냈다.
작년 늦봄 딸들에게 자신이 갖은 동부동산 등에 대한 정보를 주며, 췌장암 환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자신들의 생업과 가족이 있는 상황이라 엄마에게 필요한 돌봄은 외부 인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른 비용은 엄청났는데 엄마가 들어둔 사망 보험금을 염두하고, 나머진 두 자매가 감당하자 합의했다.
엄마의 병이 깊어지자 가족이 없이 가벼운 정연은 일을 그만두고 엄마 곁을 지키기로 한다. 고작 두 달 그것도 온전히 간호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오른건 엄마를 떠나보낸 장례식장에서였다.
두 아이와의 삶이 있는 미연은 정례식 후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고 정연은 엄마의 집에 남는다. 세상에 남긴 것은 두 딸이면 충분하다는 엄마의 유골의 한 줌이 뭍힌 모과나무를 바라보며 지내는 나날.
술이 떨어져 외출을 하던 날. 엄마의 가게에 붙은 메모를 발견한다. 엄마가 키우던 강아지 ‘정미’의 집이 완성되었으니 찾아가라는 글이었다. 연락처도 적히지 않은 단순한 두 줄. 그 메모의 출처를 찾아 목공소를 방문한 정연은 엄마가 투병 중에도 틈틈이 칼국수집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칼국수 재료를 사서 엄마의 가게에 들어선다.
엄마가 떠나고 처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며, 목공소에서 만난 사장이 말했던 ‘담백한 포만감‘을 느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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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심이 없는 사람이 야심 없이 이룩해놓은 곳, 어쩌면 목공소 안에 엷게 퍼져 있는 냄새 때문에 그런 인상을 받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기도 원한도 업이, 독성을 배우지 못한 채, 그저 뿌리 내리고 생장하다가 잘려서 운반된 나무들의 냄새가 무해하게 느껴졌다. 64p

“정연 씨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영준 씨는 짐짓 무게감 없는 말투로 물었지만, 내게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몇 마디의 말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79p

- 저는 나무가 좋더라고요. 나무는 죽어서, 그러니까 합판이나 블록 형태로 가공돼서 목공소로 오는데 그걸 자르고 이어 붙이고 조립해서 실용적인 뭔가를 만들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거든요. 실제로 원목 가구나 소품은 습도와 온도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반복해요. 꼭 숨을 쉬는 것처럼요.” 81p

“그런 마음은 참 좋은 거야.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 말이야.“ 112p

- 집으로 걸어가는데 바람 끝에 둥글고 나른한 온기가 배어 있는 게 느껴지긴 했다. 겨울에서 봄 사이의 국경을 지나가는 기차 안의 승객이 된 것만 같았다. 기차는 느리게, 그러나 쉬는 일 없이 규칙적으로 달릴 것이고 겨울 나무와 봄 나무가 섞여 있는 기차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주머니 안을 뒤적이면… 131p

-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132p

생명이 갖은 것들이 주는 위로와 용기.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인가?
돌봄의 과정을 가난과 외로움의 관계에 대해 깊이 들어가게 하는 작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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