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책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엄마는 다섯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출산을 앞두고 3째인 주인공은 친척집에 보내진다. 그 친척집에서 여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작가는 중편에 가까운 이 소설을 단편이라고 규정한다. 사실 소설을 읽어보면 아주 축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 길게 쓸 수도 있었을텐데 작가는 최대한 간결하게 책을 썼다. 이 작품에 대해 아주 최소한의 단어로 최고의 작품을 썼다는 평을 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원서로 읽어 그 느낌을 제대로 느끼지 못함에 아쉽지만, 번역본으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다섯째 아이를 임신하고, 집안일과 밭일까지 신경 쓰느라 늘 지쳐있는 어머니와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일은 자신의 일이 아님을 당당하게 표하고 자신의 머리 속에 생각나는 말들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툭툭 내뱉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던 아이가 먼 친적집에서 보살핌을 받기 시작한다. 첫 날 긴장으로 오줌을 싼 실수를 습기 탓으로 돌리며 함께 매트리스를 수습하는 아주머니, 아이에게 우편물 가져오는 심부름을 시키며 달리기 시간을 재 주는 아저씨. 이런 돌봄을 따스함을 처음 느낀 아이의 기분은 어떨까? 그리고 다시 북적거리고 어수선한 자신의 존재가 말썽피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을 느끼는 기분은? 이 책에서도 말조심을 모르는 어른에 의해 아이는 친척의 상처를 알게 되지만, 그 일로 인해 아저씨에게서 들었던 말을 실행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들리는 다양한 말들은 공중에 흩어져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 남아 아이의 삶에 묻어나게 된다. 작가는 아주 간결한 문장들로 행간의 호흡과 느낌 분위기를 더욱 깊게 느끼게 한다. 천재적이다. 아이에게 부모의 울타리 안의 세계가 정말 커다랗다고 느껴지게 해주는 작품이다. 마지막 아빠와 아저씨가 모두 등장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외치는 ‘아빠’라는 말이 어쩐지 생물학적 아빠가 아닌 아저씨에게 향하는 말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나뿐만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