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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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책은 나에겐 무조건이라 요건 초판본으로 사서 읽었으니 거의 20년만에 재독이다. 재독이라고 하기도 뭐한 시간이 지났다. 세세한 부분은 이미 다 휘발되고도 남은 시간.

한국전쟁 전후가 시대 배경이다. 전쟁으로 많은 남자들이 죽었고, 가족이 남과 북으로 갈리던 시절. 주인공도 학업을 중단했고, 오빠와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갔고 소식이 끊겼다. 집엔 아녀자들만 남았다. 그 남자네는 달랑 모자만 남았다. 형과 아버지는 좌익으로 월북했고, 누나들은 이미 출가해서 큰 집에 단촐한 식구만 남았다. ‘누나’라 부르는 그와 만남을 지속하지만 어쩐지 그의 교양과 나의 관심은 맞물리지 못하고 지루해졌다.
그래도 배운 사람이라 미군 부대에 괜찮은 자리에 취직한 나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편하게 말을 건내는 남자를 만났고, 때마침 미군 부대의 이전으로 일자리까지 잃게된 그녀에게 시집을 가는 시기가 딱 적절했다.
추운 극장에서 장갑을 발에 끼워주는 남자. 꽤 올바르고 배려심이 있는 남자와 그녀는 결혼을 결정하고 그 남자에겐 무심하게 결혼을 통보한다. 그리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나 했지만, 그들은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지는데 …


- 만일 그 남자를 못 만났더라면 그 시절을 어떻게 넘겼을까. 그 살벌했던 날, 포성이 지척에서 들리는 최전방 도시, 시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도시, 버림받은 사람만이 지키던 헐벗은 도시를 그 남자는 풍선에 띄우듯이 가볍고 어질어질하게 들어 올렸다. 황홀한 현기증이었다. 이 도시 골목골목에 고인 어둠, 포장마차의 연탄가스, 도처에 지천으로 널린 지지궁상들이 그 갈피에 그렇게 아름다운 비밀을 숨기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남자의 입김만 닿으면 꼭꼭 숨어 있던 비밀이 꽃처럼 피어났다. 그 남자하고 함께 다닌 곳치고 아름답지 않은 데가 있었던가. 만일 그 시절에 그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뭐가 되었을까.

+ 과람하다 : 분수에 지나치다.
+ 열적다 -> 열없다. : 성질이 다부지지 못하고 묽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은 각 집안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힘듦이 있구나. 사람 사이의 감정이라는건 시대와 상관없다. 그들의 묘한 감정을 따라가다보면 요즘 말하는 남녀간의 감정들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결혼 후 과감하게 시도하는 일탈까지..
너무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읽은 후의 감정도 흐려졌지만, 결혼 생활을 경험하고 있어서인지 전보다 더 깊숙이 빠져들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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