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의 10살 가족휴가는 이상하리만큼 완벽했다. 엄마와 아빠의 일이 잘 풀렸고, 혜진이(동생)과 내가 아프지도 않았다. 호텔도 날씨도 식당도 모래놀이도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날 평소처럼 혜진이를 잠시 주인공에게 맡겨두고 부모는 잠깐 둘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게임에 집중하느라 혜진이의 심심함을 무시했던 잠깐의 순간에 혜진이가 사라졌다.
그렇게 현수네 집은 6살 혜진이를 잃은 그 순간에서 멈췄다. 모든 일을 멈추고 혜진이를 찾는 일에 몰두하던 3년이 지나고, 허름한 집과 알콜중독이 된 엄마 일용직으로 돈벌이를 하러 다니는 아빠, 그리고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그 먹은 것마저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현수로 버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투명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현수에게 보통의 어른에게서 듣기 힘든 말을 던지는 서프라이즈 광팬 센터장과 자꾸 현수의 삶에 개입하는 수민이, 센터 앞에 버려진 시한부 ‘개’가 현수 곁에 있다.
그 존재들 덕분인지 현수는 혜진이 이름을 말하게 되고, 서서히 슬픔을 찾기 시작한다.
- 소소한 것들, 작고 하찮은 것들, 그때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것이 전부였다. 모든 것이 거기에 고여 있어다. 친밀, 애정, 일상, 기억.
- “난… 전단지에 붙은 얼굴들을 주의 깊게 보는 어른이 되고 싶어. 혼자 걷는 아이에게 부모님은 어디 있냐고 묻는 어른이 되고 싶어. 슬픈 기사에 악플 대신 힘내라고 댓글 다는 어른이 되고 싶어.”
- 문득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피터츠 속 등장인물들이 다 조금씩 이상해서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 “Nuts’가 ‘제정신이 아닌’과 ‘미친 듯이 사랑하는’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알려 줬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는 미친 듯이 사랑하는 감정과 닿아 있다고. 어쩌면 선생님은 미친 듯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나는 슬픞ㅁ의 할당량을 진작 다 채웠을 테니 기쁨만이 남은 것이다. 무근거, 무논리의 이론이었지만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 타인의 슬픔에 위안을 하지 못할 때엔 침묵하자.